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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May 31. 2023

영화관을 향한 애호가의 S-O-S

스크린 골프장부터 클라이밍 짐, 그리고 유명 작가의 전시회까지 즐길 수 있는 곳.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하며 다채롭게 꾸며진 이곳은 다름 아닌 ‘영화관’이다.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비 트렌드가 대폭 변화한 영역 중 하나다. ‘영화는 영화관에서’라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 스포츠 경기나 아이돌 콘서트를 생중계하고, 인기 예능의 단체 관람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영화관은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관’의 재정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음을 방증해 준다. 무엇이 영화관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코로나19 이후 영화 티켓비가 만 오천 원이 넘게 오르고, OTT 중심으로 미디어 시장이 변화하며 ‘영화관’은 위기에 봉착했다. ‘책’을 너머 문구와 잡화의 영역을 넓힌 서점과 비슷한 양상이다. 서점이 도서 매대가 아닌 판매 구역을 넓히듯, ‘영화관’ 또한 ‘영화’보다 이외의 콘텐츠를 수급하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영화관을 비롯해 전반적인 영화 시장이 매우 어려워졌지만, 2021년 씨네21이 주최한 캠페인의 말마따나 ‘영화는 계속’되고 있다. 에디터 히든 역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가 많은 관객과 함께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바람으로, 우리가 영화관에 가야 하는 몇 가지의 이유를 전달해볼까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의 가치관이 변해 있듯, 이 글을 읽고 난 당신이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게 관람할 수 있길 바라며.




-영화를 재생시키면, 그 안에서 당신은 몇 번이고 살아나.

영화 <바빌론> 中

영화는 멈출 수 없는 유일한 매체다. 나는 영화를 ‘시간의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드라마, 책, 게임 그 무엇이 됐든 내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할 수 있지만, ‘영화관’ 속 영화만큼은 한 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다. 하나의 영화관 내 관객들은 모두 동등한 시간을 가진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대사를 놓치든, 잠시 팝콘을 먹느라 화면을 보지 못하든 간에, 한 번 지나간 장면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재차 영화를 감상할 땐 그 장면은 나에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테니, 순간순간의 장면들은 나에게 단 한 번뿐인 순간이다. 그렇기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가 함께 녹아들어 있다. 모든 것이 내 손안에 통제되는 뉴미디어 사회 속에서 ‘영화관’은 역으로 나를 통제하게 하는 독특한 매체다. 다양한 자극에 빠르게 노출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자극이 차단된 장소, 그리고 단 하나의 콘텐츠만을 보는 것. 영화 시작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관’이라는 공간. 영화관은 우리 현대 사회에 필요한 긍정적인 자극이다.



-인생은 영화가 될 수 없어. 

-그럼에도.

영화 <파벨만스> 中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든, 영화를 보면서 내 인생과 빗대어 위안받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영화는 사실 이상한 사람들의 연속이다. 문제 또한 끊임없이 발생한다. 등장인물들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느냐, 혹은 해소하지 않느냐에 따라 관객 또한 끊임없이 추궁하고, 몰입한다. 영화를 통해 이 세상에 ‘문제’를 가진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나의 시련보다 더한 인물의 시련을 보면서 얻게 되는 안도감. 나의 이상함이 곧 보편적이었다는 것에서 영화는 정서적 해방감을 안겨준다. 당신이 처한 현실의 상황이 좋든, 아니든 영화를 보는 이 시간만큼은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영화에 몰입하면 된다.



-언제나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어.

영화 <콘택트> (1997) 中

영화는 프레임 밖 모든 것들이 생략되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이 시간이든, 앵글이든 간에 영화 밖 모든 것은 상상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영화를 보더라도 영화 속 공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물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에 대해선 모두가 다르게 상상한다. 이것이 한 영화에 명대사와 명장면을 저마다 다르게 꼽는 이유이며, 영화와 교감하며 느끼는 자신만의 감정은 스스로를 단단히 결속시킨다. 영화는 본 관객 수만큼의 장르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 정답은 없고, 정답 없는 매체 속에서 자신만의 주관을 확립해 나갈 수 있다. 영화에 대한 해답이 다르더라도 ‘틀린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변하지 않아,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지.

영화 <봄날은 간다> 中

영화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 양상만 변했을 뿐. 아무리 뉴미디어가 발달한 사회라도, 영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영화는 ‘종합 예술’로서 수백, 많게는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정성을 쏟는다. 이렇게 생명을 얻는 영화는 단연코 빛날 수밖에 없다. 그 시대에는 사회 전체를 움직일 정도의 강력한 ‘빛’이었지만 이제는 수많은 뉴미디어에 밀려 올드 미디어로 전락해 버린 빛의 공간, 영화관. 그럼에도 영화가 주는 여운은 ‘영화관’에서밖에 느끼지 못하리라.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자신만의 보석을 발견할 때 비로소 영화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캄캄한 영화관 속에서 함께 몰입하던 그 빛나는 순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관을 전해줄 마지막 세대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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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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