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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n 08. 2023

한국과 일본,
문화에 경계는 없으니까

한국인에게 일본 문화란 어떤 의미일까

‘스즈메의 문단속’, ‘슬램덩크’, 일본인을 패러디한 캐릭터 다나카 등..

일본 문화는 한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호황기를 맞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No Japan’ 운동을 벌였을 때와는 달리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도 많아졌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과거사, 지속 중인 외교적 문제 등을 두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본 문화 열풍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이들은 한국 내 일본 문화가 이렇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도 말한다.


일본 딱지 하나가 주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나 역시도 일본산 제품이나 일본 문화를 소비할 때, ‘얼마나, 어디까지 소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보게 되니까. 한국인으로서의 도덕적인 감정과 사람 개인으로서의 즐거운 감정 사이에서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 문화를 즐기면서도, 어딘가 죄짓는 기분이 들어 썩 유쾌하게 소비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 문화가 유행하고 있는 이 상황이 정말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에디터 도리는 지난 1월에 떠난 일본 여행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여행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에 대한 시선을 뒤집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이미 일상에 녹아든 일본 문화

에디터 도리가 여행을 떠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일본이 이제 막 해외여행 규제를 풀었던 시기라, 일본으로 떠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공항에 가득했다. 동행하는 친구는 평소 ‘오피셜히게단디즘’, ‘아이묭’ 등의 J-POP을 즐겨 들어서 “이번에는 꼭 타워레코드에 가보고 싶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에 반해 내가 가고 싶던 곳은 디즈니랜드뿐. 그러고 보니 나는 일본 문화랑 별로 안 친한 것 같은데. 그냥 가끔 귀멸의 칼날을 정주행 하고, 이자카야에서 오코노미야키랑 시원한 하이볼을 시켜 먹고,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아사히인 정도인데…

어라, 생각보다 이미 일본이랑 많이 가까운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서공예 교복 같다며 신기해했던 스쿨룩
팜플렛에 적힌 '한국스타일 교복'이라는 글자 / 서공예가 맞았다

여기가 한국이야 일본이야

하라주쿠, 신주쿠 등 주요 도심지를 돌아다니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다른 풍경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K-POP이 온갖 가게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한국어와 한국 연예인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관광객의 성지’라고 불리는 일본 돈키호테를 갔을 때는 한 층 전체가 한국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일본 MZ가 많이 찾기로 유명한 편집샵 ‘WEGO’의 한 코너였다. 어딘가 낯익은 스쿨룩이 있길래 친구와 “이거 한국 교복 같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차, 바로 밑에 한국어로 ‘한국 스타일 교복’이라고 쓰여있는 팜플렛을 발견했다. 정말 한국 교복이 맞았던 거였다.


프리큐라 꾸미기 화면 / 잘 보면 '사랑해', '꾸안꾸' 한글이 보인다
디즈니랜드 직원분이 적어주신 '감사합니다' 문구


일본에서의 한국인 체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친구와 프리큐라를 찍기 위해 수많은 포토부스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들어갔다. 사진을 다 찍은 뒤 꾸미기 부스로 이동했는데, 스탬프에 ‘꾸안꾸’, ‘다욧트 중’ 등등의 한국말이 쓰여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포토부스 이름을 확인해 보니, ‘꾸안꾸 프리큐라’였다. ‘꾸안꾸’라는 말이 일본어로 쓰여있어 몰랐을 뿐, 어쩌다 보니 또 한국 문화를 만나게 되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일본인 직원분께서 “한국 분이세요?”라고 말을 걸어주셔서 한참 동안 한국어로 대화하기도 했다. 일본 간다고 나름 일본 말도 공부해 갔는데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었던 거다. 왜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시냐고 묻자, 본인은 한국 음식과 문화를 너무 좋아하고, 특히 요즘 NCT에 빠져서 올해 여름 즈음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첫 방문 기념 스티커에 직접 한글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써주셨다. 심지어 너무 예쁜 글씨로..



우린 남이 될 수 있을까

문화는 국경과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에디터 도리가 일본 여행을 통해 일본 내에 한국 문화가 많이 스며들었다는 걸 체감했던 것처럼, 한국에서 일본 문화가 퍼져나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왜색이 퍼진다’며 일본 문화를 규제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타국의 문화에 물들여지는 약한 존재가 아니다. 시대상도 달라졌다.


물론 앞으로의 건설적인 관계 수립을 위해서는 과거 청산과 갈등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 문화에 갖는 1차적인 ‘경계’ 필터는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일방향적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적으로 흐르는 것이니까. 우리가 타국 문화를 소비하는 것만큼, 어딘가에서도 한국 문화를 소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서로 너무 많이 닮아서 애정하기도, 때로는 증오하기도 하는 나라 일본. 이제는 일본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의 문화를 온전히 향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라도 이 글이 일본 옹호라며 불편했던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돌아보시길. 정말 한 번도 히사이시 조의 노래를 듣지 않았는지, 최근 새로 출시된 ‘아사히 슈퍼드라이’에 눈길이 가진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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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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