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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n 16. 2023

그럼에도 사랑할

K-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우리

그럼에도 사랑할

슈퍼스타K, K팝스타, 위대한 탄생, 쇼미더머니,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트릿 맨 파이터, 프로듀스101, 프로듀스48, 아이돌학교, 방과후설렘, 걸스플래닛999, 보이즈 플래닛… 셀 수도 없이 많다. 포털사이트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검색하면, 한국의 콘텐츠만 해도 11페이지에 달한다. 모두 방영되는 족족 화제를 몰고 다녔던 K-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한국은 왜 이렇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일까? 국민 프로듀서라느니, 스타 크리에이터라느니, … 때로는 우리의 손에 그들의 모든 운명이 달린 것처럼 마음을 쏟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익숙해져 있던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도. 전쟁보다 더 전쟁 같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어, 무의식 중에는 동질감까지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경쟁 속에서도 재미를 찾고 있던 것일지 모른다. 부추기는 재미 혹은, 그들의 승패에 내가 한몫할 수 있다는 재미.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에디터 널리, 나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등교하자마자 너 나 할 것 없이 최애 참가자의 포스터를 만들어 돌리고, 점심시간이면 문자 투표를 부탁할 100원짜리 동전을 위해 집에서 가져온 현금을 손에 꼭 쥔 채 부리나케 학교 아래 은행에 달려갔던 일. 엎치락뒤치락하는 순위에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고, 세상이 떠나가라 통곡을 하기도 했던 일.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면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TV 앞에 앉아있던 일.

1등만을 주목하는 이 각박한 세상에, '내 새끼'를 당당히 내보이고 싶었던 어린 널리의 치기 어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내가 좋아했던 참가자가 전혀 데뷔 순위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나의 친구들은 무대 위 화려한 모습도 물론 좋아하고 또 바랐지만, 등수와는 상관없이 그저 무대 아래서 진한 사람 냄새를 풍겼던 그들의 서사에 더 깊은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더,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꿈을 우리 역시 간절히 응원했던 것이 아닐까. 1위였든, 우승이었든, 데뷔조 합류였든,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나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결과는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만이 '진짜' 성공은 아니라는 것이다. 혼-, 1인-, 나만의-, … 이렇게나 개인이 중요해진 사회인데, 왜 아직도 삶의 기준은 개인에게 있지 않은 걸까? 사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경쟁의 결과는 경쟁 대상에 따라 언제든 상대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다. 우리네 삶을 축약한 듯한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에서도, 조금 더 주목하고 싶어지는 사람 사이의 이야기들이 많다.


다행히도 요즈음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그리고 팬들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도 집중하는 경향이 꽤나 있는 듯하다. 그래, 결과 이외의 것에도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 크고, 간절한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결과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는 열정과 애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리가 공유했던 희열과 아쉬움은 우리의 추억이 된다. 지금 잠시 넘어졌더라도 꼬옥 잡고 일어나 다시 나아갈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그래서 진짜 진짜 실패해도 괜찮은 거다. 왜냐하면 그게 '진짜' 실패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 속에서 나눈 우리의 사랑을 기억하자. 네 꿈을 향한 너의 사랑이든,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든! 소수의 자리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지는 말자. 그걸로 나 자신을, 우리를 너무 채찍질하지도 말자. 차가운 현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느끼고 싶어지는 온기가 어디에든 있기 마련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이 두 가지를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살자던 엄마 말씀이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저마다의 속도로 바쁘고 또 치열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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