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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n 29. 2023

언젠가는 사라진대도,
매 순간 빛나게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기가 반가운 이유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의 흐름 속 한국 패션업계가 움직이고 있다. 익숙하고 무난한 브랜드가 아닌 개성 넘치고 특별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눈에 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나의 눈에 ‘한국의 유행’은 조금 유별나 보인다. 인생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보낸 내가 두 나라의 문화 차이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부분은 식(食)도 주(住)도 아닌 의(衣)에서였다.


위 사진은 ‘지하철 범고래 출몰’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커뮤니티에 업로드된 ‘나이키 덩크 로우 레트로 블랙’을 신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때 재고 부족으로 엄청난 리셀 대란을 일으켰을 만큼 인기 있던 신발이었으나 현재는 ‘클론 패션’의 대표 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한국 사람들은 유행의 큰 흐름에 탑승하지 않는 것을 ‘뒤처진다’라고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 남과의 비교가 일상이 된 한국인들의 ‘눈치’는 놀랍게도 옷에서 역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남다른 그 무엇 중에서도 패션은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최근 나는 지하철에서 ‘클론’들을 발견하곤 한다. 떡볶이 코트, 야상, 노스페이스까지, ‘클론 패션’에 익숙한 우리나라와 빠른 흐름을 가진 유행이 만나 또 다른 ‘클론 패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의 바시티 자켓, 지하철 한 칸에 있는 똑같은 쌍의 운동화들. 모두가 유행을 따라가는 발 빠른 한국인들은 유행을 따라가는 동시에 유행에 갇히게 된다. 남들이 하는 성공을 따라 성공해야 하고, 남들이 입는 옷을 따라 입어야 ‘잘 입는’ 사람이 되는 한국에서, 사람들은 칙칙한 서울의 빌딩 숲처럼 하나의 같은 색깔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본 중국은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 수상하리만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한국인이었다면 절대 입지 않을 법한 옷을 입어도, 반짝거리는 비즈가 달린 옷을 입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동시에 아무도 유행에 집착하지 않는다. 한국은 무채색이나 단정한 색을 선호하는 반면, 중국은 빨간색 등 강렬한 원색을 선호한다. SPA 브랜드인 자라나 H&M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패턴의 옷, 어딘가 이상하고 비대칭적인 디자인의 옷을 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에디터 라니 역시 ‘대체 이런 옷은 누가 사는 걸까…?’ 라는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는데, 우리가 한 번씩 품어보는 이런 생각들이 중국에서는 실현되곤 한다. 검은색이 가득한 서울의 거리와 달리 형형색색의 옷들이 거리를 누비고 신기한 스타일이 눈에 띈다. 남들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하더라도 원하는 옷을 입는다. 그것이 실패한 디자인일지라도 하나의 시도가 되며,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유행이 되는 것이다.


유행에 끌려다닐 것 같은 한국 사람들은 모순적이게도 유행을 따라가는 동시에 유행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무신사 클론, 무신사 냄새 ··· 유행의 선두에 선 랭킹 패션 사이트를 이용하면서도 인기 순위에 오른 옷들로 구성된 비슷한 스타일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 정도는 입는다’ 라는 남들과 똑같은 기준점에서 벗어나 특별해지고 싶은, 유행의 선두에 서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지루해지고 익숙해지는 유행 속 새로운 움직임은 때를 노리고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Thug Club(떠그 클럽)' 팝업 스토어

그래서 지금, 유행의 나라 한국에서 유행의 선두에 서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느껴진다. ‘특별해지고 싶은’ 브랜드들은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종합 패션 사이트 입점이 최고의 커리어라고 생각하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몸집을 불려 다른 세계로의 도약을 시작하고 있다. 스트릿 패션 브랜드 Thug Club (떠그 클럽)은 엄청난 오픈런 대기줄과 함께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며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식과 한계를 깨 주었고, 패션문화 기반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ADERERROR(아더에러)는 글로벌 SPA 브랜드인 ZARA(자라)와의 협업을 통해 큰 인기를 끌며 리셀(resell) 대란을 일으키는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똑같은 옷들에서 벗어나 디자이너의 개성을 자유롭게 보여주는 국내 브랜드는 최근 젊은 세대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앤더슨벨 / 제이청 / 잉크 / 고엔제이 (출처 : 중앙일보)

나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과감한 시도와 성공이 모두 유행의 흐름 그리고 지루해진 유행 속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과도한 관심, 어떻게 보면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한 한국의 유행이 싫지만은 않다. 유행에 민감하고, 유행을 따라가고, 유행에서 벗어나 다른 흐름을 자아내고자 하는 욕망 하나하나가 실현되어 한국 패션업계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반짝 유행이 지나가더라도 지나간 길에는 그가 남기고 간 빛나는 조각들이 남는다. 시도와 실패, 큰 호응과 결과. 반짝 유행의 조각들을 주워나가다 보면 다른 하나의 유행이 생기도 한다. 


개성 넘치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반짝 유행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까? 하나의 디자인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 같은 디자인의 옷들이 우후죽순 쏟아진다. 유행은 돌고 돌며, 반짝거리던 빛을 내던 브랜드들도 빛을 잃고 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유행의 흐름인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기억 저 너머로 사라질지 모르는 패션과 유행일지라도, 그것들이 매 순간 치열하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시장은 이제야 막 그 기세를 펼쳐나가고 있다. 탄탄한 국내 시장의 형성은 곧 브랜드의 세계적인 진출을 이끌어 낸다. 새로운 유행을 개척해 나가는 지금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처럼, 반복되는 디자인의 한계를 벗어나 유행에 반하는 새로운 흐름을 창조해 내고, 색다른 시도를 하는 브랜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돌고 도는 유행의 흐름 속 새로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우리의 또 다른 시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성 가득한 티셔츠 한 장이 괴짜스럽거나 비싸다는 편견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디자인에 대한 포용과 사랑이 담긴 그런 시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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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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