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카이브 Aug 09. 2023

사랑은 마치 불장난 같아서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사랑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소비를 하게 된다. 아이돌을 좋아하면 특히 많은 비용을 투자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CD 앨범 구매’이다. 발매하는 앨범을 구매하는 건 K-POP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기본적으로 하게 되는 단계인데, 앨범 구매의 핵심은 그 안에 있는 포토카드에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일명 ‘앨범깡’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CD 앨범 속에 있는 랜덤 포토카드 중 내가 원하는 것을 뽑기 위해 여러 장을 앨범을 한 번에 구매하고 개봉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나도 누군가의 팬으로서 많은 양의 앨범에 한 번에 구매한 경험이 있고, 내 주변에서도 집 앞에 택배 박스가 한가득 쌓이고 혼자서는 절대로 개봉조차 못 할 양의 앨범을 구매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앨범을 구매하는 것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팬들은 포토카드를 위해 CD 앨범을 사는 것이니 많은 양의 앨범 본품은 쓸모가 없어져 버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팬들이 포토카드를 위해서 앨범을 산다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되자, 이를 위해 친환경 앨범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자그마한 크기의 키트 앨범과 네모 앨범이 그 예이다. 키트 앨범도 사실 플라스틱의 일종이기 때문에 친환경 종이로 앨범을 만드는 예도 존재한다. 샤이니의 키는 친환경 Soy Ink를 이용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으며 가수 청하도 첫 번째 정규앨범을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서 주목받았다.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업계 자체도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만든다고 해서 기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친환경이라도 대량으로 생산되고 버려지는 과정은 여전히 환경에 해롭다. 즉, 친환경 앨범 등으로 점차 변화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기사들을 보면 앨범이 무분별하게 구매되고 버려지는 것을 보고 앨범을 사들인 팬들을 비판한다. 팬들이 직접적으로 소비를 하고, 해당 문화 자체를 만들고 속해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범 낭비 현상이 과연 K-POP 팬들만의 책임일까? 팬들은 왜 앨범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버릴까?



내 사랑이 그래

가수 엔시티 드림의 구매처별 미공포 모음 [출처 : 트위터 @DREAM_ync]

많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는 팬들의 소비를 부추긴다. 포토카드 한 장에도 열광할 팬들임을 알고 있으니, 멤버수는 5명이지만 포토카드는 종류별로 20장이 넘고, 여기에다 ‘미공포(미공개 포토카드, 기존 앨범에 없는 새로운 포토카드를 의미)’를 준다는 명목하에 앨범 소비를 부추긴다. 보통 구매처별로 각각 다른 미공개 포토카드를 구성하여, 팬들이 다양한 구매처에서 많은 앨범을 사게 하여 판매량을 높이는 전략을 꾀한다. 앨범 판매량이 아티스트와 회사의 실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팬사인회도 이와 연관이 높은데, 많은 앨범을 구매해야 당첨 확률이 올라가기에 앨범 구매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행사로 꼽을 수 있다. 앨범 한 장 당 응모권 1장이 주어지고 응모권이 많을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기에 아티스트와의 만남이 간절한 팬들은 많은 양의 앨범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팬싸컷’이라는 말조차 있을 정도로 응모 과정에서도 팬 문화는 존재한다. 팬싸컷은 ‘몇 장 이상의 앨범을 구매하면 사인회에 당첨이 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팬싸컷이 몇 장인지 정보 자체를 사고팔아 암암리에만 공유된다.


이렇게 팬들은 자신이 원하는 포토카드를 가지기 위해, 팬사인회에 당첨되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수많은 앨범을 사들이고 그것은 곧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사실 구매를 하는 건 팬들이지만 그 과정을 유도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임에도 비판은 오로지 팬들만을 향하게 된다. 사실 나는 팬의 입장에 가까운 사람이라 꽤나 억울하다. 내가 소비를 하는 것에 대한 정당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구매하게 되는 것도 크기 때문이다.



사랑에 유통기한은 없어

우리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잘못된 큰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작은 팬들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즉, 구조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만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꾸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팬들의 모든 행동을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친환경 앨범’이라는 변화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인 팬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애초에 팬들은 유통기한 없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 기한 없고 기약 없는 순수한 마음에 숫자를 달아버리게 한 건 과연 누구일까?



-

공상

작가의 이전글 나 혹시 몰라 경고하는데 잔들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