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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Oct 23. 2023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혜진이가 엄청 혼났던 그날
지원이가 여친이랑 헤어진 그날

소위 말하는 ‘요즘’ 아이돌 노래들은 여러 노래 장르를 섞어 놓은 것부터 특이한 노래 가사까지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라고 생각이 드는 노래 가사들은 하나의 밈(meme)이 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제목으로 차용한 엔시티 127의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가 그 예이다. 해당 가사가 공개되자 어느 한 팬은 ‘밥을 먹는 우리를 봐 밥을 먹어’라는 말을 하며 가사의 문법을 지적했는데, 많은 이들의 재미와 공감을 사 아직까지도 언급이 되고 있다.

‘가사 이해된다 vs 뭔 소리야’라는 주제로 문법적으로 어색한 노래 가사들을 가지고 투표를 올린 커뮤니티의 글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 이름은 수지가 아닌데


문법적으로 어색한 가사들뿐만 아니라, 노래 가사에 특정 인물의 실명이나 은어, 아티스트의 세계관 용어, MBTI까지 이제 다양한 주제들이 노래 가사로 이용되고 있다. 사실 처음 가사를 접했을 때 거부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거부감을 느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나치게 가사가 솔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응당 노래 가사라면 사랑과 낭만과 같은 두둥실 떠다니는 어쩌면 오글거리는 내용의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아이브는 ‘나르시즘’을 르세라핌은 ‘당당함’을 에스파는 자신만의 세계관인 ‘광야’를 주제로 노래한다. ‘사랑’이 주제가 되던 예전과 지금의 노래 가사는 많이 다르다. 수많은 콘셉트과 세계관으로 노래가 생산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가사는 노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예전보다 의미가 작아졌을지도 모른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볍고 흩날리는 주제를 다룬 가사들이 많아졌는데, 이게 과연 나쁜 현상일까?

사실 노래 가사는 해당 노래를 듣는 세대를 가장 많이 반영한다. 연애와 사랑은 진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세대, 무겁고 진지한 것보다는 가벼운 내용을 좋아하는 ‘요즘’세대, 소극적이고 눈치 보는 것보다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이 담긴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은 아이돌 노래(K-POP의 범주가 넓어졌기에 ‘아이돌 노래’라고 말하겠다.)를 많이 소비하는 MZ 세대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다. 연애보다는 개인의 가치관과 미래, 자기개발에 더욱더 관심이 있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낭만과 사랑을 노래하는 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낭만젊음사랑


나는 요즘 유재하의 <지난날>, 윤상의 <한 걸음 더>,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을 자주 듣는다. 느림과 여유로움을 노래했던 옛 노래들이 더 좋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래 가사들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는 있지만, 가사를 곱씹었을 때의 간질거림과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먹먹함은 옛 노래에 더 많이 묻어있는 것 같다.

가사에는 시대와 세대가 반영되어 있다. 사랑과 젊음과 낭만을 주로 노래하던 시절은 어땠을까? 2001년생인 나는 80-90년대를 동경할 때가 종종 있는데, 누군가를 만나려면 속절없이 기다려야 하고 문자보다는 전화와 손편지를 쓰던,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만 있던 그 시대의 느림과 여유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빠른 변화에 익숙해져야 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주를 이루는 지금의 현실이 질릴 때가 있는데, 옛 노래들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비상구처럼 내게 존재하고 있다.

21세기에 태어난 내가 20세기의 가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후에 태어난 이들은 지금의 가사를 그리워할 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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