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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Oct 23. 2023

너희 왜 같은 티 입어?

ㄴ 큐티? 프리티? 말고 커스텀 티!

2002년은 붉은악마와 월드컵을 떠오르게 한다. 그 당시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특히나 월드컵 응원 영상을 보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때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모두가 한마음이었고, 하나였던 것 같다.

요즘도 월드컵, 올림픽 시즌이 되면 우리나라의 우승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2002년처럼 다 같이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길거리 응원을 하는 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2002년 당시 사람들을 더 끈끈하고 뜨겁게 만든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붉은색 티셔츠’였다고 생각한다.


중, 고등학생 때 체육대회를 앞두고 반티를 맞춘다며 학급 회의를 하고, 심지어는 옆 반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 그때의 우리는 단체 티에 왜 그렇게 진심이었던 것일까? 단체 티를 맞추는 그 과정에서부터 단체 티를 입는 순간까지, 그냥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은 옷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전보다 더 ‘우리 반’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다른 반 친구들은 ‘너희 반’이 되어, 외부에 공공의 적을 만들며 자연스레 내부의 결속력이 강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나 스스로도 야구 유니폼을 입지 않고 직관을 갈 때보다, 야구 유니폼을 입었을 때 더욱더 야빠(야구 팬의 수준을 넘어 야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스럽다고 느끼는 것과도 비슷하다. 야구 유니폼을 입고 응원가를 부를 때면 패션 야구가 아닌, 굉장한 야구 고관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중요시되는 요즘도 여전히 단체활동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단체 티를 입는다. 그러나 단체 티를 입어도 모두가 절대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각자의 개성을 완벽하게 드러낸다는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모두가 같은 티셔츠를 입으면서도 우리의 개성은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에서였을까? 우리는 단체라고 하기에는 아주 소수의 친구 몇 명에서도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

나 또한 개강 전 여름방학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4박 5일로 다녀왔던 몽골 여행에서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갔다. 유튜브에 주로 친구들과의 즐거운 순간을 담아내는 콘텐츠들을 보면 다들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니더라. 그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여행을 다니면 재미있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게 되었는데, 친구들 모두 ‘헉! 재밌겠다! 다 같이 맞춰 입고 사진 찍으면 진짜 예쁠 듯!’이라며 당시 유행했던 나만의 파워퍼프걸 캐릭터를 만들어 티셔츠에 넣기로 했다. 요소 하나하나 우리가 직접 만들어 넣어 주문하고, 배송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실제로 몽골에 가보니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반팔을 입을 일이 크게 없었다. 그래서 정말 사진용으로만 입고, 여행 내내 “다 같이 언제 입을래!??”그러다가 마지막 날 호텔 체크아웃 직전에 후다닥 입고 사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그냥 잠옷으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 입었던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옷장에 점점 쌓여가는 잠옷들을 보면 인스타그램 혹은 블로그 업로드 목적의 보여주기식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몽골 여행 갔을 때 함께 여행했던 분들께서 직접 티셔츠 맞춰 입고 온 것이냐고 말씀해 줬을 때, ”네! 저희가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던 그 순간이 우리가 만들었던 티셔츠를 직접 본 순간 다음으로 가장 뿌듯했다.


사실 내가 직접 커스텀한다는 과정 자체에서 애착이 다른 옷보다 더 생기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 입는 것은 아닌지에 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해서 그리 애착이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커스텀 티셔츠를 딱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순간에 즐기기 좋은 ‘이벤트성 옷’이라 결론짓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지금 보여주기식 우정에 취해있나? 남들이 다 하는 우정 놀이를 다 따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우리의 개성이 아니라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 입는가에 대한 당위성의 부재에 부닥쳤다. 그러나 꼭 이것에 답을 찾아야 할까?

보여주기식이면 어떤가! 이벤트성 옷이면 어떤가! 디지인하는 그 순간과 커스텀 티셔츠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커스텀 티셔츠를 다 같이 입는 그 순간 덕분에 즐거울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4년 전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 매일이 즐거웠던 순간들을,

4년이 지난 지금은 1년에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들기는 하지만, 커스텀 티셔츠를 통해 그 순간만이라도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의미가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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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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