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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Nov 30. 2023

널리의 널리널리

노가리 노가리 But you~ I want 노가리 노가리 but you~


자극적인 마라탕도 매일 먹으면 질리기 마련 아닌가? (아닌 사람도 있긴 하더라.) 그러나, 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콘텐츠도 그렇다. 무엇이든 짧고 빠르게, 몇 번이나 “그래서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외치게 했던 숏폼 콘텐츠만이 답은 아니다. 단 몇 초에 눈길을 끄는 숏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슴슴-한 반찬 같은 맥시멈 콘텐츠가 떠오르고 있는 실정만 보아도 그렇다. 이런 맥시멈 콘텐츠를 요즘은 ‘노가리 콘텐츠’라고 부르더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롱폼 영상을 최소한의 편집으로 업로드한 콘텐츠를 이르는 말이라는데, 쉽게 말해 노가리 까는 콘텐츠라고 보면 될 듯하다.



숏폼 중독 아니고 콘텐츠 모니터링 아티스트인데요


사실 에디터 널리는 숏폼 중독이(었)다. 떨어지는 낙엽을 맞고 저 멀리 지는 노을을 보며 계절을 느낄 줄 아는, 그런 여유를 가진 직장인이라면 참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이 사람의 취미는 릴스 찍기요 직업은 콘텐츠 제작자다. 이 말인즉슨,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액정 속 세상에 산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이게 업일지라도, 바쁜 현대인이 어디 진득이 앉아서 콘텐츠를 감상할 시간이 있던가? 정말이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그래서 중독된 것은 다름 아닌 숏폼 콘텐츠다. 엄지손가락만 있다면 하루 50개는 족히 볼 수 있는 그것. 몇 개만 반복해서 보아도 같은 BGM을 사용한 콘텐츠가 넘쳐나, 에어팟을 끼지 않아도 낀 것처럼 감상할 수 있는 그것. 길을 가다 그 음악의 풀버전을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싸비를 흥얼대고 춤을 둠칫대게 되는 그것.

숏폼 콘텐츠 때문에 ‘릴스 노래’라는 수식어까지 생겨난 요즘, 정신 차려 보니 에디터 널리도… 유행하는 숏폼 콘텐츠의 BGM을 플레이리스트에 담고, 급기야는 숏폼 촬영을 위해 거울을 보며 안무를 따고 춤을 연습하는 지경에 이르렀더라. 숏폼 콘텐츠에 쓰이는 구간이 재생될라치면 엉덩이가 먼저 들썩대는데 어떡해요. 나만 못 따라 하는 건 자존심 상해서 진짜 안 되겠는데 어떡해요.

그렇지만 나의 숏폼 콘텐츠 감상은 사실 뭐 유튜브 중독, 그런 게 아니고 콘텐츠 모니터링을 통한 트렌드 리서치… 아무튼 그런 거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하게. 그리고 숏폼 콘텐츠를 감상하는 시간을 합하면, 롱폼 콘텐츠 두 개는 족히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숏폼은 긴 시간 집중해서 볼 필요가 없다. 사실 보는 둥 마는 둥 엄지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여대기도 한다. 거진 기계처럼.



계란 아니고 노가리가~ 왔어요 (Dried pollack is coming)


그런데 요즘은, 긴 시간 집중할 필요도 없고… 보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은근히 귀가 쫑긋하게 되는 그런 콘텐츠가 꽤 많더라. 시청에 부담은 없지만서도 잔잔하게 웃기고, 이게 라디오야 영상이야- 싶게 틀어놓고 듣기만 해도 괜찮은 콘텐츠. 바로 일명 ‘노가리 콘텐츠’!

대표적으로는 유튜브 채널 ‘채널십오야’의 <나영석의 나불나불>, ‘뜬뜬’의 <핑계고>가 있다. 나영석 PD의 <1박 2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자란 에디터 널리는 개인적으로 에그이즈커밍의 열혈 시청자다. 팬도 팬인데 나영석 PD님을 동경한다. 아무튼 그런 나PD에게 이말년 작가는 "너무 편집을 열심히 해서 매 순간이 재미있으면 오히려 안 본다. 시청자들이 부담 없게 오래 보게 하려면 보다가 놓쳐도 아깝지 않은 콘텐츠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는데, 이 말을 듣고 이거다! 했다. 보다가 놓쳐도 아깝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었으나… 오히려 자연스럽게 한순간도 놓치기 싫지만, 또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된 것 같다.



스탭입니다 조연출3편 (널리 시점)

그중에서도 에디터 널리가 가장 재미있게 본 콘텐츠를 소개하자면, 채널십오야의 <스탭입니다 조연출 편>이다. 널리는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연출은커녕 평생 방송국에서 일할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더랬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소위 말해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워라밸 따위는 개나 준 대학생 연합 광고동아리 활동 2년 만에 체력이 너덜너덜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꼭 복지가 좋은 회사에 가야지! 다짐했었는데, 이게 웬걸? 복지는 좋은데, 워라밸은 별개예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는 무슨. 워크가 곧 라이프예요. 그렇지만서도 덕업일치는… 백 번 맞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거대하고 확실하게 행복해지니까.


한 날은 퇴근하고 방을 청소하면서 이 콘텐츠를 틀어두었는데… 어느새 내가 토크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 얘긴가? 싶을 정도. 특히 상황 보고 결정하자는 말, 앞 구르기 뒤구르기 하면서 봐도 확실히 조연출 당혹스럽게 하는 말 1위. 정말 박수 치고 인정합니다.

나왔다… 조연출을 향한 PD의 순박하고 잔혹한 답변. “아이 모 그날 봐서 결정하자!”

편집실에서의 아낌없는 야식 썰을 들으면서는 또 한 번 에그이즈커밍으로의 꿈을 다짐했다. (ㅋㅋ) 널리가 왔어요~ 널리 이즈 커밍~ 에그이즈커밍: 안 시켰는데요.



현대인의, 현대인에 의한, 현대인을 위한


에디터 널리는 상경한 스무 살부터 쭉 혼자 살아온 나름 프로 자취러로서, 혼자만의 적적함에 익숙해져 있어 자취방의 고요함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었다. 그런데 사회인이 된 이후부터는 혼자 산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참 외롭고 힘들게 했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공감되었던 것은, 유독 일이 힘들었던 날 양손 가득 맛있는 음식을 들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더라. 통장에 돈은 따박따박 들어오는데, 야근이 일상인 삶에 나를 위해 근사한 곳에 가 돈을 쓸 시간은 없고. 해가 뜨면 출근 오밤 중에 퇴근…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사람은커녕 한 톨의 온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퇴근 후에 친구들이라도 만나는 날엔 괜히 밥을 사주고 싶어 진다. 나에게 ‘아 이 맛에, 이래서 돈 벌지’ 하는 마음이 필요한가 보다, 싶었다.


그리고 자꾸 사람들의 수다스러운 말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일상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갈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사람에 지겹게 치이면서도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기 어려운, 초개인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오늘은 별일 없었는지, 기분은 어떤지, 끼니는 챙겼는지, 챙겼다면 무엇을 먹었는지 등의… 정말 사소한 안부일지라도 말이다. 자극적인 재미 위주의 숏폼 콘텐츠뿐만 아니라 이렇게 부담 없이 잔잔한 수다를 들을 수 있는 맥시멈 콘텐츠가 유행하는 것은, 일상에서의 공감대를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정이 필요하다는… 세상의 신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당장의 환경을 극단적으로 뒤바꿀 수도, 사회가 변화하기를 잠자코 바라고 있기만 할 수도 없는 현실이지만 맥시멈 콘텐츠의 일상적이고 잔잔한 대화에 잠깐의 위로와 웃음을 얻는 시청자로서, 노가리 콘텐츠야말로 진정 ‘K-현대인 친화적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처럼 빠르게 요점만을 중요시하는 숏폼 콘텐츠 역시 생활에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피로를 느낄 필요 없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이런 콘텐츠들도 더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제작자로서도, 무편집 (최소한의 편집) 콘텐츠는 정말 환영입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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