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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Nov 30. 2023

지구에서 한아뿐인 롤모델

#1. 괜스레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받아봤을 질문,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이라니. 어린 나이에 느꼈던 롤모델이란 질문의 무게는 꽤나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솔직하지 못했던 거 같다. 왠지 ‘롤모델’이라 하니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다거나 사회적 인정과 명예, 부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괜스레 초록창에 ‘롤모델 추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 등등을 쳐봤고, 그중 가장 멋져 보이는 사람을 골라 빈칸을 채워갔었다.

아마 과거의 나는 롤모델을 존경이나 선망의 대상이 아닌 ‘세상에서 제일 멋져 보이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그 사람 자체를 보기보다는 그 사람이 이뤄낸 업적, 성취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저 질문들에 어떤 답을 적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급하게 지어냈었으니 그럴 수밖에! 희미한 기억 너머 피겨 스케이트 김연아 선수가 있었던 거 같기도 ….



#2. 저마다의 창문으로 바라본


문득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저 질문에 어떤 답을 했었고, 또 할지 궁금해졌다. 나처럼 급하게 네이버가 알려주는 인물을 적었을까? 아니면 예전부터 진심으로 존경했던 사람의 이름을 적었을까?

그래서 직접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3개의 질문을 정해 지인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1. 당신만의 언어로 ‘롤모델’을 정의하자면?

2. 롤모델이었던 인물/대상/격언 등을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3. 롤모델로 선정하게 되는 기준/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귀한 시간을 내어 돌아온 소중한 답변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 다소 길어 보일지라도 그들만의 빛깔을 내는 답변에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기에, 꼭 읽어 보기를 바란다. -

Q1. 당신만의 언어로 ‘롤모델’을 정의하자면?

A1. 내가 미래에 되고 싶은 모습을 이룬 사람 (22세/여)
A2. 그 모습을 쫓아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모습과 닮아가는 것 같아서 ‘또 다른 나’ (25세/남)
A3. 살아온 환경이 비슷하지만, 나와 다르게 역경을 이겨낸 사람 (26세/여)
A4. 나를 칭찬으로 춤추게 하는 사람 (54세/여)
Q2. 롤모델이었던 인물/대상/격언 등을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A1. 부모님! 화목한 가정과 본업의 성공을 멋지게 이루셨어요. (22세/여
A2.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행복한 순간에 웃음을 지으며 추억하곤 하지만,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웃음이 피어나면 그 순간이 갑자기 특별하고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웃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특별한 것인지 알려주는 말인 것 같아요. (25세/남)
A3. ‘스물일곱에 유치원을 가도 마흔 전에 대학 간다’라는 말이 엄청 와닿았어요. 이 말 덕에 저는 다시 대학에 갔고, 진로를 고민하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생겼어요. (26세/여)
A4. (제 롤모델은) 본인은 낮추면서 주변 사람을 빛나게 하는 분입니다. 본인 덕분에 큰 성과가 이루어졌음에도 다른 사람의 수고로 공을 돌리고, ‘모신다~’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주변사람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아 직접 행동하면서 베풂을 실천하고, 최고라고 칭찬해 주세요. 결과적으로 칭찬 받는 이들은 그 말을 통해 용기를 얻고 더 노력해서, 서로가 빛나게 하시는 분이에요. (54세/여)
Q3. 롤모델로 선정하게 되는 기준/포인트는 무엇인가요?

A1. 안정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말투, 그리고 자기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 (22세/여)
A2. 나의 경험! 언제든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고, 남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며 살다 보니 웃음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줬어요. 웃음을 통해 평범했던 순간들이 특별해지기도 했고, 힘들 때 버티고 이겨낼 힘을 주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웃음은 사소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특별함을 만들어 낸다는 게 가장 인상 깊었어요. 박장대소하는 큰 웃음이든 피식 웃는 작은 웃음이든 모두 같은 웃음이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부담 없이 작은 웃음으로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25세/남)
A3. 몰아세우기보다는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의지를 북돋아주는것이 좋아요! (26세/여
A4. 얼마큼의 성실함이 더해져 오늘의 성과가 이루어졌는지 알게 되었기에 그분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어요. (54세/여)



#3. 같은 듯 다른 풍경


사람들의 롤모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했다. 누군가는 인물을, 누군가는 문장을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가장 신기했던 점은 그들은 실제로 저마다의 롤모델과 닮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단 것이다. 첫 번째로 답변했던 친구는 늘 같은(안정적인)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있어 줬던 친구였다. 두 번째로 답변했던 친구는 살면서 이 사람에게 가장 많은 웃음을 받았다고 자부할 만큼,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웃긴 사람이었다. 세 번째로 답변했던 친구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친 뒤에도 결국 어여쁜 꽃을 피워낸 사람이었다. 내가 불안해할 때면 과장된 표현이 아닌 담백함으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마지막으로 답변했던 친구는 단 하루도 성실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정함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나에게는 국민 MC 유재석처럼 느껴질 만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인물이다.

롤모델을 정의한 저마다의 표현들은 전부 달랐지만, 그 대상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한 공통점이었다. 이렇게 보니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이라는 롤모델의 사전적 의미는 꽤나 명쾌한 정의일지도 모르겠다.



#4. 결국 돌고 돌아


질문에 응해준 이들의 시선 끝에서 연결 짓는 생각들이 참 예뻐 보인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어떤 시선으로 어떤 답을 하게 될까.

내 롤모델은 ‘낭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인 거 같다. 삭막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도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평범한 날에 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왈칵- 바다를 보러 동해로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며칠 전에 우연히 발견한 글인데, ‘낭만’과 ‘낭비’의 ‘낭(浪)’은 같은 한자를 쓴다더라. 비효율적이기에 더욱 감동을 주는 낭만이 좋다. 그 헛됨이나 헤픔으로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행복해진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더 이상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사업가, 남들이 보면 박수칠 만한 업적을 쌓은 이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롤모델의 대상은 인물, 문장 심지어는 동물도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나에게 와닿아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면 그 자체로 롤모델의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롤모델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때로는 삶의 방향이, 때로는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구해주는 팔이, 때로는 망망대해의 하얀 부표가 되어주겠지.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아니,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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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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