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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l 01. 2024

왜요? 제가 doll 수집가로 보이세요?

 누군가 내게 첫사랑이 누군지 묻는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도경수’라고 말한다. 도경수 외에 사랑한 남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항상 그는 내 천년의 이상형 자리에 굳게 박혀 나간 적이 없었다.


 그는 내게 처음으로 사랑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송중기를 좋아했을 적에도, 4학년 때 인피니트 노래를 주구장창 들으며 추격자를 따라췄을 때에도 한 번도 나는 그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 돈을 써본 적이 없었다. ‘이 영상을 내가 무료로 봐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은 했을지언정, 결과적으론 <주간 아이돌>을 보고 노래를 듣는데 내가 쓴 돈은 한 푼도 없었으니.




 그런 내게 도경수라는 남자가 찾아왔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그를 처음 좋아했을 당시, 그를 좋아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작고 귀여운 펭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왜 펭귄인지에 대한 의문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100미터 밖에서 보아도 영락없는 펭귄이었기 때문에. 나처럼 그를 사랑하는 여성들은 모두 하나같이 펭귄을 들고 다녔다. (변백현을 좋아하는 여성들은 터래기를 들고 다녔다)


 어렸을 땐 그게 너무 소중해서 다른 팬들처럼 어딘가에 달고 다니지 못했다. 포장지를 뜯지도 못한 채 집에 고이 모셔두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다른 팬들의 가방에 대롱대롱 달려 때가 탄 도경수 인형을 보며, ‘저 언니들은 아깝지도 않은가?’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 인형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것에 감히 내 사랑의 크기가 훨씬 크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당연히 언니들은 여분으로 하나 더 샀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사람이 어떻게 강아지, 사람이 어떻게 펭귄.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사람들은 그 대상이 사랑스러움을 넘어 다른 무언가로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내 눈에 도경수가 펭귄으로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덕후들은 이를 ‘모에화’라고 일컫는다. 어느 순간부터 덕후들 사이에선 모에화가 하나의 필수조건처럼 당연하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내 최애와 닮은 것이라면 생물, 무생물 가리지 않고 귀여운 것들에 비유했다. 근래에는 에스파 윈터가 캐치티니핑의 하츄핑을 닮았다는 짤이 번지며 결국 ost까지 섭렵하지 않았는가.




 변백현을 닮은 터래기, 아이브를 닮은 미니브, 뉴진스를 본떠 만든 파워퍼프걸까지. 모에화로부터 비롯한 수많은 애정들이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캐릭터와 인형들. 이것들이 전부 덕후들의 사랑과 애정을 이용한 대기업의 수익창출이라고 본다 한들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사실 그것이 맞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 인형을 구매하는 이유는 내 최애를 닮은 캐릭터, 내 최애를 본뜬 인형을 몸 어디엔가 지니고 다니면 왠지 모르게 항상 같이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 들고 예절샷을 찍고, 콘서트에 갈 때 손에 쥐고 응원하고, 여행을 갈 때 함께 다니며 나는 늘 최애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누렸다. 사실 그 모든 노력의 기저에 깔린 마음에는 ‘경수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깔려있기도 했다. 내가 지금 누리는 행복들이 그에게도 닿기를 바랐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사랑하는 것들을 손에 꼭 쥐고 싶어 했던 것도 같다. 소유욕이 강한 것도 맞았고, 물질적인 것들이 내 사랑의 크기를 입증해 준다고 생각했던 것도 맞았다. 어린 나이의 치기 어린 사랑과 애정이 덕질을 위한 돈으로 발현되었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내 돈 아껴서 도경수 인형을 구매한 것에 일말의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 하루를 더욱 힘차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고, 나와 더 가까이 있다는 듯이 알려주는 그 인형이 내게는 심리적으로 너무나도 힘이 되었던 것 같아서. 그리고 그만큼 그에게도 힘이 되기를 바랐어서.




 말 그대로 이제는 아이돌 모에화 시대. 퍼스널 브랜딩이 유행한 것도 어찌 보면 이와 같은 맥락이었을지 모르겠다. 혹자는 그 캐릭터가, 그 동물이 실제로 그 아이돌과 동일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좋아하고 아끼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조차도 팬들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연예인의 브랜드 이미지 형성이 아닐까 싶다. 꾸준히 대중에게 본인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하는 연예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브랜딩이 아닐까?


 이쯤 되어 생각해 보니, 나는 셀프 모에화에 대차게 실패한 것 같기도 하다. 에디터 명을 맹구로 짓다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각인될 내 이미지가 그저 콧물로 풍차를 돌리고 가만히 앉아 돌을 수집하는 것이라니. 혹시나 지금껏 에디터 맹구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언컨대 실제 모습과 꽤나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양심 없지만 기왕이면 부잣집 딸내미인 수지가 나을지도.


 여러분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셀프 모에화라 생각하면 다소 오글거릴 수 있겠으나, 사실 그 모에화에는 자신의 추구미와 원동력이 담기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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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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