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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l 01. 2024

그래그래 세상은 나에게 열려있어

 어린이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던 아이는 세상은 바꾸지 못해도 계획은 바꿀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라는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던 대장부는 아직 청춘의 소용돌이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럴 때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슬쩍 꺼내보곤 한다.


 엄마와 유독 친해 가장 친한 친구인 엄마에게 다양한 추억을 쌓으며 자라왔는데, 이따금 본인 어머니에게 들었던 나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작은 아이의 세상 이야기들을 이 자리를 빌려 공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풀어갈 모든 이야기는 천방지축 딸을 키우던 여성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ep.1 티 내지 않도록

 딸내미 5살, 마트를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짧은 다리로 앞쪽 나무를 향해 도도도- 뛰어가더라. 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서 뭘 유심히 보다 두 손으로 무언갈 소중하게 안아 들고 다시 도도도- 뛰어오더니 미묘한 표정으로 ‘엄마..’하며 바라보는 네가 있었다. 눈이 안 좋아 고개를 숙이기 전까지 그 솜뭉치가 무엇인지 모르다 그 형체가 눈에 들어오자 기겁해 자빠질 뻔했다. 그 조그만 손안에 안겨있는 건 죽은 참새 시체였다. 그걸 소중히 안아 들고는 불쌍하다고 바라보는 네가 놀라지 않도록 소리도 못 지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지. 떨리는 목소리로 ‘우.. 우리 그거 나무 아래 묻어줄까?’라고 말하며 나무까지 함께 걸어가는 동안 너는 손에서 참새를 놓지 않았다.





ep.2 혼자서도 잘 노는

 시댁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시골집으로 갔던 그날. 이제 걸음마를 다 떼고 뛰기 시작할 시기였다. 서리 끼던 겨울날이라 풍경은 메말랐고 바닥에는 빳빳한 나뭇잎들만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넌 뭐가 좋은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뭇잎을 줍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나뭇잎을 주워 다른 손으로 옮기길 몇 번을 하더니, 사방에 흩어진 나뭇잎들을 다 줍는 건 무리였고 겨울바람에 다 날아가기 시작하니 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가지 마~~~!!!!!!!!” 가지 말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 손을 쭉 뻗어 처량하게 쫓아가는 3살짜리가 어찌나 웃겼는지 모른다.


 손주 며느리기에 형님과 그 추운 겨울날 흰 소복을 입고 내리 3일을 설거지만 하며 장을 치렀다. 어린 내 새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해 미안해 뭐 하나 찾으러 가보니 혼자 방 한구석에서 불도 안 켠 온풍기에 나무젓가락을 꽂고 있더라. 네가 말했다. “엄마! 아궁이에 불 넣는 거야” 시골집에서 아궁이를 본 후 장작을 넣는 모습을 따라 하고 있었다.





ep.3 외톨이 놀이터

 3층 빌라 집에 살 때, 집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어서 좋았다. 딸에게도 나에게도 위치상 좋았다. 어느 날은 비가 하도 많이 내려 나가서 노는 건 꿈도 못 꿨고 동네 아이들 모두가 집에만 있어 동네도 놀이터도 휑한 날이었다. 창가에 오도카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는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 찰나 입을 열더니 하는 말. “엄마 놀이터는 불쌍하다. 내가 안 놀아줘서.” 나는 우리 딸이 천재인 줄 알았다.





ep.4 유일하게 무서워하던 것

 돌 전후로 아직 어린 너를 포대기에 안고 다닐 무렵, 너는 등에 붙어서 세상을 구경했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조용하게 고개만 이리저리 돌렸고 그땐 딸이 참 순하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다. 그런 네가 등 뒤에서 울분을 토할 때가 있었는데, 바로 주유소 앞을 지날 때였다. 펄럭- 소리가 나면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주유소 풍선이 앞을 차지했다. 하찮게 생긴 표정과 기다란 몸체에 붙은 길쭉한 팔다리가 사방팔방 요란스레 흔들리는 모습을 너는 가장 무서워했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으앙!!!!!” 하고 울어대기 시작한 탓에 최대한 빠르게 시야에서 벗어나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가지 웃기는 점은 무서우면 안 보면 될 것을 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 채 우는 너를 보면 웃기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ep.5 호떡 도둑들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간 후, 놀이터에 애들이 모여있다며 놀러 갔다 오겠다 하더라. 간식을 아직 먹지 않았기에 손바닥만 한 호떡 빵을 지퍼팩에 여러 개 넣어 쥐여주었다. 애들이랑 나눠먹고 오라 한 후 신난 발걸음으로 호기롭게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한참 있다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돌아온 너는 빈 지퍼팩만 한 손에 꼬옥 쥐고 있었다. 뭔가 기분은 나쁜 거 같은데 창피해서 말은 못 하는 거 같고, 숨만 헉헉 쉬더라. 그러면서 배는 뽈록 내밀며 당당한 자세로 애들이 빨리 가야 한다 했다며 말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열이 뻗쳐서 집에서 마저 같이 놀았었다.




 20년은 훌쩍 지난 이야기들을, 그것도 스쳐 지나간 듯 일상적인 순간도 특별하게 추억하는 엄마를 보았다. 어제 일인 듯 기억하며 대소를 터뜨리는 엄마로부터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키웠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 


 그 작은 아이의 세상이 넓어지는 동안 엄마의 세상은 온통 나였다.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봐도 여간 키우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방황하는 마음도 있었고 상황이 날 가만두지 않을 때는 깊은 곳으로 혼자 들어가고는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언제나 붙잡아주고 밀어주고 버텨주었다. 세상은 넓다지만 아직 내게 가장 넓은 건 엄마의 품이다. 내 모든 보통의 날이 엄마에겐 특별한 날이었음을 깨달은 것이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오래오래 특별한 하루들로 가득 차길 바라는 매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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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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