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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l 01. 2024

당신의 기쁨은 안녕하신가요?

늘 긍정적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인사이드 아웃 2> 속 멱살 잡고 라일리를 구출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기쁨이를 개화남, 개짜증, 개소심 트리오가 갈궈대자 기쁨이에게서 터져 나온 외마디 비명이다. ‘기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기쁨이에게도 벅찬 긍정이라니… 인정한다. 요즘 시대에 기쁘기엔 쉽지 않다. 뻔한 얘기 같지만, 대한민국 20대 청년이라는 내 프로필은 이 짧은 문장에 수많은 당위성을 부여한다. 취준, 학점, 사람구실 …… 기쁘지 못할 이유는 넘쳐나는데 정작 기뻐야 할 이유는 찾기 힘들달까. 요즘 사람들은 그럼 대체 언제 기쁠까?


 정말 당신께도 물어보고 싶다. 언제 기쁘신가요?


 당신의 기쁨은 안녕하신가요?





1. 홍홍표정 소유자가 초진지표정 소유자가 된 사연

 우선 필자의 경우다. 예전엔 기쁨의 역치가 낮아 여유로운 일상도 종종 기쁘곤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오히려 쉬고 있을 때 공허하고 텅 빈 느낌인 것이, 꼭 휴식포비아라도 걸린 것 같다.

 

 특히 종강 기간에는 예민함이 Max가 된다. 다들 정병시즌이라고들 하지. 몰려오는 시험과 학기를 잘 마무리해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평소에는 홍홍 표정으로 가볍게 넘어갈 일도 10번은 더 드르륵… 탁. 하며 되짚어보고 곱씹어보게 되는 것 같다. 이 ‘되감기’는 아주 성능이 (나쁜 쪽으로) 좋다. 칵테일 사랑같이 달콤했던 기분도 금세 레몬 트리처럼 쌉싸름하게 만드니까.

 

 최근에야 겨우 종강을 맞은 필자는 아직 초진지표정의 과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하여 기쁨이 낯설게 느껴지는 상태이기에, 묵묵부답인 내 마음에 마이크를 들이밀기보다는 주변 지인들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추어 보았다. 



필자: 너는 언제 기뻐?
A: 하루 일정 다 끝나고 침대에 누울 때 개운함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


2. 침대를 좋아하는 A가 기쁜 이유

 A는 감정이 무딘 친구이다. 소리 내서 크게 웃어본 적도, 울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참 신기하지. 평소에 A를 보면 어쩜 그리 항상 똑같은 표정을 하고 사나 싶다가도, 돌아보면 나와 궁합이 참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감정의 파도를 넘어 쓰나미까지 몰려오곤 하는 나와 달리 항상 일정한 온도를 가진 잔잔한 A는, 특유의 평온함으로 나를 잔잔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니까. 웃긴 소리지만, 생각해 보니 감정의 굴곡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 애와, 그 애가 좋아하는 늘 따끈하고 평안한 침대는 제법 잘 어울리네. 이런 A가 기꺼이 나를 위해 가끔은 귀여운 애교쟁이가 되기도 하고, 항상 그보다 조금은 요란하고 빠른 나의 템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주고 있다는 것이 떠오를 때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달까.




필자: 언니는 언제 기뻐?
B: 바퀴벌레 되면 어떡할래 2탄이니 이거?
필자: …


3. 날 때부터 오리지널 K-장녀 B의 사연

 B는 나와 비슷한 종족이다. 학기 중이면 매일 현생에 치여 다크서클이 얼굴의 반을 덮을 만큼 고생하는 그녀. 종강을 하자마자 바로 얼굴이 핀 걸 보고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안쓰럽기도 했는데. 그런 B의 원동력은 가족이었다. 그녀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기쁘다고 한다. 어린 동생부터 부모님까지… 가족 얘기를 할 때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늘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던 그녀의 초롱한 눈망울이 기억난다. 그 눈이, 너무나 견고해 보이는 그 눈이 바로 B가 늘 지치지 않고 달려 나갈 수 있는 이유였나 보다.

  

 지금은 본가에 내려가 있는 B가 또 앞으로 나아갈 다음 발걸음을 위해 미리 쟁여둘 기쁨을 가득 채우고 돌아오길.




필자: 너는 언제 기뻐?
C: 맛있는 거 먹을 때, 야구 직관 갔는데 역전승할 때, 오랜만에 친구들 만났을 때, 잼얘할 때 …
    야 잠만
    인생에 잼 잇는 게 넘후 많은데?


4. 잼 잇는 게 넘후 많은 C의 사연

 마지막 기쁨 사연은 필자의 오랜 친구 C다. C는 … 어찌 보면 감정이 무딘 A와 비슷한 유형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지나간 일은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는, 쿨워터향이 진동하는 친구. (탐나는 개그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C는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이를 테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는 법, 쿨해지는 법 정도 …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언제 기쁘냐고 묻는 질문에 별 사소한 순간을 다 말하는 C는, (제법 웃기기도 했지만) 순식간에 나의 기쁨을 재정의했다.  


 그래, 기쁨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었지.


 아주 가볍게 내 손안에 잡히는 기쁨들을 혹 너무 멀리서 찾고 있진 않았나 싶다.


 이거 완전 럭키비C잖아! 역시 C가 없는 인생은 상상도 할 수 없다니까.





 A와 B 그리고 C.


 모두 다른 대답을 했지만, 각자의 기쁨은 모두 똑같이 각자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 형태가 바람(바램이라 불리는 그것)이든, 원동력이든 … 누군가의 기쁨에선 그 사람이 살아 숨 쉰다. 초단기 기쁨 조사원(절대 필자가 아니다)의 조사 결과, 기쁨은 사실 모두의 매일 속에 녹아 있지만 그 존재가 너무 당연해 미처 쉬이 체감하지 못하는 감정인 것 같다. 얄팍하다고 치부해 버렸던 사소한 웃음에서도, 매일 너무 그대로라고 느껴졌던, 어쩌면 지루했던 일상 속에서도 당신은 당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기쁨과 함께 했을 것이니. 기쁨이 안녕하지 못해 들어온 당신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당신, 언제 기쁘신가요? 이제 질문을 바꿔 보겠다.


 당신 안의 기쁨은 어떤 모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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