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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l 26. 2024

낭만의 필요성

어쩌다 이렇게 현실에 찌들게 된 것일까

한 어린이의 꿈


사육사 : 지금 현재 기억에 있는 가장 오래된 장래희망은 사육사이다. 특히 새끼 사자나 호랑이의 성장을 담당하는 사육사가 되고 싶었다. 단지 새끼 사자와 호랑이가 귀여웠기 때문에서였다.


희극인 : 어린 시절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 TV로 드라마와 예능을 봤었다. 그때 우리 가족이 일요일에 꼭 시청하던 프로그램이 바로 ‘개그콘서트’였다. 타인을 웃기고 재롱떨기를 좋아하던 내가 개그콘서트를 통해 ‘희극인’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한동안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선생님 : 그저 채점하는 게 좋아서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어릴 때 친동생과 선생님-학생 역할 놀이를 정말 많이 했었는데 어떤 것을 적지 않아도 동그라미 치면서 동생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척을 정말 많이 했었던 기억이 있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도 좋았지만 채점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변호사 : 변호사가 나오는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고 단지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을 꿈꿨다. 나도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재정적인 이유로 변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드라마 자체에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심리상담사 :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좋아서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었다. 그저 말하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심리상담사를 꿈꿨다. TMI를 하나 말하자면 나는 어릴 때 정말 투머치토커였다. 어릴 때 ‘좀 조용히 해.’, ‘하고 싶은 말 다 들어줄 테니 말 좀 천천히 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간략했던 나의 장래희망 연대기이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어릴 때는 그저 나의 취향과 받아들이는 경험에 따라 휙휙 바뀌던 것이 장래희망이었던 것 같다. 그저 좋아하던 것을 직업으로 삼고자 했던 나의 생각과 마음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것 같기도 하다. 어떠한 고려사항보다 내 마음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어린 날의 나 VS 지금의 나   

 나의 장래희망 연대기만 보아도 어렴풋이 알 수 있지만 어릴 때와 지금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의 내가 너무나도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유니콘 등 동심을 듬뿍 담은 상상을 하곤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미술 학원을 다니며 그렸던 그림을 보면 사람들이 커다란 새를 타고 돌아다니거나, 헨젤과 그레텔을 본 후 과자로 가득한 나라를 그렸으며 물속에서 어느 장치도 없이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그렸더라.. 대부분이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었는데 그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한, 꿈꾸는 무언가를 바로 그림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반면 지금의 나는 S와 T로 똘똘 뭉친 극강의 현실주의자이다. 수영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물놀이 후 씻는 게 귀찮아서 물에 들어가지 않거나, 동물원에 가서 신나는 마음보다 ‘불쌍하다’ 혹은 ‘동물들은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만이 들 때 특히나 내가 어른이 됐구나 싶으면서도 지독하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강의 현실주의자가 직무를 정하는 방법   

 아빠가 추천해 준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을 보고는 현재의 기획과 마케팅을 꿈꾸게 되었다. 해당 책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1만 시간이라는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을 감명 깊게 읽은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먼저 나의 성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옛날부터 기업에서 쳇바퀴 같이 일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매번 무언가 고민하고 배워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직장인이 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일을 하면서도 항상 내게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게 기획, 마케팅 직무라고 생각을 하여 나의 직무 방향을 확정할 수 있었고, 이후 학과를 정하고 동아리에 드는 등 적극적으로 내가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계획하고 노력하여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별다른 이유 없이 장래희망을 정했던 옛날의 나와는 정말이지 다르고 지독하게 현실적인 모습인 것 같다. 

 *TMI를 또 하나 풀자면 책을 추천해 준 아빠는 나보다 더 심한 ISTJ이다


낭만은 어쩌면 동심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위 두 짤은 최근의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자 주로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들이다. 나는 생각이 많아질 때면 노트에 수기로 작성해 보면서 잡념들을 정리하고는 한다. 최근 내가 적었던 메모나 글들을 보면 대체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이런 사사로운 것들보다는 더욱 노력해야 할 때이다.’라는 뉘앙스의 말들로 끝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도 다음 단계에서는 무얼 해야 하고, 내가 지금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 채우고 이러한 현실적인 고민과 계획으로 가득 찬 내가 싫지는 않다. 오히려 계획적이고 냉철하게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모순적이게도 유독 힘들 때면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스스로가 낭만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끼기에 ‘낭만을 가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유별난 무언가가 아닌 계획하지 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여행을 하는 것, 여행 가서도 지도를 보지 않고 정처 없이 다니면서 맛집으로 느껴지는 가게에 들어가는 것 등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행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매번 ‘그렇다면 ~는 어떻게 하지’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이 앞서는 터라 아직은 낭만이라는 범주의 생각에 그친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무언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어딘가로 떠나는 등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를 낭만이라고 칭하며 이를 꿈 꾸는 것을 보면 어른이 된 현실적인 나에게서 잠깐 벗어나는 것을 지금 현재로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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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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