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서 굴려지는 언어
세상에 탄생한 이후 엄마와 아빠의 입 모양을 따라 하길 수백 번, 수만 번. 우리는 그렇게 언어를 배우고 글을 익힌다. 누구는 느리고, 누구는 빠르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언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작가라 일컫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안 봤지
언젠가 나도 작가라는 꿈을 꿨었다. 어린 시절 도서관은 나의 피난처였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나에게 도서관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공간이었다. 당연하게도 도서관은 나에게 책을 제공했는데, 서구의 고전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특히 셰익스피어에 빠져 햄릿을 상상하고 베니스의 상인에 매료되어 문장을 곱씹었으며 가장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보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극에서 나는 뭐를 뱉을까
활자란 음식과도 같아서, 섭취하면 배설하고 싶어진다. 스스로에게 들이붓는 책이 적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일기나 소설, 헛소리를 적었다. 이 당시의 책들이 내 생각을 대사화 시켰다. 지금도 나는 어떤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보다 그 상황의 대사가 먼저 그려지곤 한다. 최근에 대사처럼 생각한 문장 몇 가지를 말해보자면, ‘누구든 심장을 꺼내보면 따뜻한 법 아니겠습니까.’와 ‘행운을 표창처럼 던져드릴게요.’가 있다. 글을 적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영원히 글을 적을 것이라 확신했다.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책과 권태기
세상이 날 어른이라 정의 내리고 난 이후부터는 책에 흥미가 없어졌다. 수업 시간에 공부를 미루고 읽던 책의 스릴이 없어지니 나 또한 흥미를 잃었다.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는 이상한 버릇이 생기고 새로운 책은 찾지 않았다. 무슨 고집인지 한강 작가님의 책만 주야장천 읽었다. 그러다 노벨상을 수상하는 걸 보고 나만 좋았던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흰’
가장 좋아하는 책은 ‘흰’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흰’ 특유의 건조하지만, 따뜻한 문체를 좋아한다. 스펙타클한 SF나 근사한 판타지가 적힌 책들이 수두룩하고 매력적인데도 나는 그저 수수한 맛의 ‘흰’이 좋다. 주변에 있는 흰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흰 부분들을 보려고 노력하게 되어서 이 책이 좋다. 나는 사실 우유도 흰 우유만 먹는다. 이건 그냥 맛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세요?
다른 사람들과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활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될 때마다 궁금하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고 글을 쓰는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소유하게 되는가? 그리고 왜 그 방식을 선택하였는가? 일기를 적는다면 무슨 내용을 적고 어떤 생각을 주로 떠올리려고 하며 왜 적는가? 친분이 생긴 사람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그 사람의 머리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말을 하면 모두 도망갈까? 물어보고 싶어! 만약 누군가 자신의 머리 뚜껑을 열어 보여주고 싶다면 기꺼이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 하지만 함부로 열고 싶진 않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꼬꼬마일 때부터 질문이 너무 많아 ‘왜?’라는 말을 금지당한 나는 세상에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답답한 감정이 컸다. 하물며 나조차도 내가 모르겠는걸. 그래서 더 책에 애착이 갔던 것 같다. 내 안의 두루뭉술한 감정과 생각을 명확하게 적은 경우가 많아서 그것들을 지침서처럼 보고 배우게 된 것이다. 지금도 아주 다르진 않은 것 같다. 모르는 건 여전히 많고, 아는 건 터무니없이 적다.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르고, 남은 더 모른다. 바보인 내가 살아갈 방법은 역시 책뿐인 걸까? 역시 책과 책 먹는 여우처럼 책을 많이 섭취한 똑똑한 사람들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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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