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의 친절한 이웃

사실 이웃이랄것도 없지만...

by 다양

고시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 가장 두려웠던 건 내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살까?였다. 내가 가족들에게 '나 고시원 갈거야 이미 결제했어^^'라고 털어놓은 뒤 사색이 된 여동생이 가장 먼저 보여 준 웹툰이 <타인은 지옥이다> 이미 고시원 계약금 5만원을 지출했고, 무를 수 없었기에, 나는 밤을 새워 그 웹툰에 몰입하며 끝까지 보았다. 엔딩을 본 이후 든 생각은 '나도 살해당할지도 몰라...!'라는 과한 감정이입이었다.


사실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마음으로 대충 결정한 고시원이었어서 더 걱정이 되었다. 계약한 방이 한 달에 19만원짜리였는데 과연 한 달 19만원짜리가 내 생활의 안전판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주변에 다 공시생이어서 소리에 예민할 수 있다고 그것만 조심해주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서 입주 첫날, 나는 무림 고수처럼 숨을 천천히 코로 쉬며 입장했다. 쿠우우~ 하고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공장 기계처럼 크고 웅장하게 들렸다. 살면서 이렇게 큰 에어컨 소리는 처음 들었다. 복도는 어둑했지만 인적 하나 없이 조용했고, 입주 첫날 나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못했다.


잔뜩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더운 여름 각자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서로의 땀내를 맡는다던가, 퀴퀴한 악취가 난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여성 전용 고시원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했고, 다들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생활해서 잠시 나갈 때도 열쇠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가 아니었으면 나는 옆 방에 다른 누가 살고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옆 방 문 열고 닫는 소리, 화장실 이용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방음이 잘 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생활 소음을 제외하면 고시원은 정말 조용했다. 애초에 사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막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시끄럽다며 벽을 쾅쾅거리거나, 옆 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린다던가 하는 일을 3개월 내내 한번도 겪지 못했다. 부제에 이웃이랄것도 없지만...의 뜻이 바로 여기 있다. 사실상 고시원에 거주하며 이웃과 마주친 횟수가 셀 수 있을만큼 적고, 워낙 코로나 시국이라 다들 쌩얼 + 츄리닝 차림으로 마주치면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각자 방으로 쏙 들어가기 일쑤였기에 악연이고 인연이고 아예 연을 만들 시간조차 없었다.


하하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간을 독립이라고 봐야 할지 고립이라고 봐야 할지 애매하다. 분명 집을 나가 나 홀로 생활한다는 점에서 독립이지만, 주변의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나는 고립되어 있었다. 공용 주방이 밖에 있었기에 가끔은 사람이 너무 그리워서 공용주방에 오래 앉아 있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놀랍도록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밥만 푹푹 퍼서 정수기 물을 또르르 따라 무료 제공되는 김치와 함께 먹으며 한숨을 푹 쉬었던 기억이 있다.


토요일 아침,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아 빨래줄 너머로 걸려 있는 파아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고시원의 아침이 시작된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늘어난 츄리닝을 입은 '이웃들'이 세수를 하기 위해 공용 세탁실을 지나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다. 물론 눈을 마주치진 못했지만 적게는 이십 대 초반부터 많게는 사십 대 초반까지 굉장히 넓은 연령대가 함께 계셨다. 내가 있는 3층은 2층보다 조금 싼 대신, 인테리어가 다 구식이라 혹시 더럽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들 아침에 엄청 꼼꼼히 씻는 걸 보면 여기서 제일 더러운 건 나인가 보다.


무기력한 눈동자로 하늘 한 번, 초록색 페인트 한 번 번갈아 쳐다보고 있으면 점차 뜨거워진 태양이 주위의 공기를 달구어 나를 다시 방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 그러면 나의 이웃들 만남의 시간도 끝이다. 고시원 밖에서 슬리퍼를 직직 끌며 이웃을 한번 마주친 적 있다. 빨간 츄리닝을 입었던 그녀와 나는 서로를 응시하며 인사해야할지 말지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지나쳐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먼저 말 걸어볼걸 아쉽게 생각한다. 고시원 친구를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이 공부하다가 힘들면 맥도날드 가서 맥카페 마시고, 더 힘들면 사육신 공원이나 한강대교를 산책하는 그런 친구. 결국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걸로...


그래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배려하는 면모가 보였는데, 예를 들어 빨래줄을 너무 오랫동안 차지하지 않는다던가, 목욕용품은 바구니를 분리해서 서로 확실하게 관리한다던가, 칫솔을 깜빡하고 공용 세면대에 두고 와도 건드리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또 식사한 뒤 공용 주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설거지 하는 것, 공용 냉장고를 깔끔하게 라벨링해서 관리하는 것 등등이 '공동체'에 대한 룰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었다.


나도 한번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적이 있다. 내가 있던 고시원은 쌀이 무료 제공인 대신 밥이 1인분 남게 되면 그릇에 담아놓고 다음 사람이 밥을 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나는 밖에 그릇이 나와 있길래 오오...! 밥이 다 되어있겠군 하는 심정으로 밥통을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밥이 설익은 것이다. 거의 5~6인분은 하는 밥이 설익었길래 나는 난감해졌다. 이 많은 밥을 다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다 먹고 다시 할 수도 없고 어떡하지...? 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밥이 가장 중요한 것...! 당장 유튜브를 찾아 설익은 밥 수습하기라는 영상을 찾아냈다.


뜨거운 물 한 컵을 부은 뒤, 다시 40분간 취사를 해주면 끝! 이라는 간단한 영상을 반신반의하며 실천하고 방에 들어가서 홈트를 했다. 40분 후 다시 주방에 왔을 때 열린 밥통 안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훌륭한 밥이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걱으로 밥알을 풀어주고 내가 먹을 만큼 덜며, 조금이지만 이웃들에게 도움이 됬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고시원에서 산다고 다들 괴팍하고, 퍽퍽하고 그런 건 아니다. 고시원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으니 입주 전 먼저 확인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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