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파시즘 경계하기
우리는 의미를 소비하고, 그 의미는 각자마다 다양하다. 실생활의 아주 쉬운 예로 누군가는 스타벅스의 차분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좋아서 방문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접근성과 같은 실용적인 이유로 스타벅스에 간다. 뿐만 아니라 스타벅스의 직원 대상 교육과 훌륭한 혜택 등의 사회적인 가치를 구매 요인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의미는 다채로우며 하나로의 규정은 확장과 변화 가능성을 가로막아 결과적으로 우리의 크리에이티브를 제한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크리에이티브를 제한하는 의미의 파시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첫째는 편하다는 이유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자신과 다른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은 사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본연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설득의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고,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데이터 기반의 초연결 사회가 야기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흔히 자신을 다양하고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서칭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고, 비교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정말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데이터는 편향적이다. 왜냐하면, 나의 과거를 추측하여 현재와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기반의 삶은 무엇인가를 뛰어넘는 이상향보다는 안전한 현실의 안주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의미의 다양성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본성과 기술은 우리를 반대로 이끌고 있다. 누군가들은 약점을 노려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교묘한 눈속임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한다. 하지만, 역으로 초연결 사회로 세상이 좁아졌기에 진실이 밝혀지기도 쉬워졌다. 요즘 각종 뒷 광고 논란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겠다.
기존까지의 브랜딩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다 해보자 였다면, 최근에는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Not To Do)이 생겨 났다고 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공동체를 향하는 브랜드의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공동체는 개인의 행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에 적극 동의한다. 하나의 브랜드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사용자와 팬이 필요하며, 그들 또한 브랜드 성장에 상당 부분 기여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물건이 아닌 의미를 파는 시대이다. 브랜딩의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