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하나 못해도 밥은 잘 먹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쿠쿠 압력 밥솥 하나만을 야무지게 품에 끌어안은 채 뭣도 모르고 호주 유학길에 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Hi”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요즘은 유치원에서 진즉 다 떼고 온다는 apple의 철자도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그러나 그땐 그저 삼시 세끼 따스운 밥을 지어주는 밥솥이 함께하니 든든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그냥 밥만 잘 먹을 수 있다면 다 괜찮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어렸던 나의 생각이 의외로 삶의 본질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단 걸 깨닫는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밥심으로 어떻게든 이겨내었고, 위로받았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이제까지 내게 밥심이 가장 필요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가만히 떠올려보면, 역시 호주에서 유학을 했던 그 10여 년 간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그 순간 내 곁에 머물러주었던 다양한 음식에 대한 회고이자 송시(頌詩) 같은 것이다.
중간중간 찰진 맛 묘사들도 덤으로 즐겨주시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