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생긴 토끼의 이야기
첫 번째 동화의 마지막 이야기: 달콤한 달이 된 토끼
“그런데요 까만 별님. 제 공들에게는 아직 이름이 없어서 슬퍼요. 까만 별님이 이름을 지어주시면 안 될까요?”
한참을 고민하던 까만 별은
“토끼야! 이건 어때? 노란 공의 모습이 마치 달콤한 꿀 같아. 달콤하다는 뜻에서 달이 어떠니?”
토끼가 깡충깡충 뛰면서 말했어요.
“너무 좋아요! 달콤한 달!! 고마워요 까만 별님. 그리고 이제 우리는 친구가 되는 거예요. 서로를 빛내주는 친구!!”
까만 별님이 잠을 자러 가고 해님이 일어났어요.
“해님! 제 공들에게 달콤한 달이라는 이름이 생겼어요!”
“안녕 토끼야. 달이라는 이름이 멋지구나! 내가 잠을 자는 동안 괜찮았니?”
“네!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아요!”
토끼가 해님에게 공들을 보여주려 하는데 공들이 까맣게 변해 있었어요.
“제 달이 왜 반쪽 달이 된 거예요?”
해님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어요.
“그건 까만 별님의 까만 별빛이 묻은 거란다”
“까만 별빛이요? 아! 까만 별님이 까맣게 빛나면서 샤르륵 샤르륵 뿌린 거구나! 저는 어제 까만 별님과 친구가 되었거든요. 앞으로 노란 별님과 까만 별님이 더 빛날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우리 토끼가 정말 착하구나. 달콤한 달님! 밤하늘에 별님들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주세요.”
토끼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어요.
“네! 그럼요!!”
밤하늘에 빛나는 까만 별님과 노란 별님 그리고
우리 달콤한 달.
오늘은 까만 별님이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왔네요.
이번에도 달에 까만 별빛이 많이 묻어서 반 밖에 보이지 않아요.
신난 토끼가 폴짝폴짝 뛰면서 환하게 빛나는 달을 닦고 있네요.
반짝반짝 빛나는 달콤한 달이 된 토끼.
오늘 밤 노란 별님, 까만 별님을 생각하며
토끼가 공들을 잘 닦고 있는지 올려다볼까요?
네 번째 나의 이야기: 친구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는 옆에 누군가를 두길 원한다. 가족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가족에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인디언의 말로 나의 슬픔을 자기 등에 업고 가는 사람
친구에게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냥 누군가의 존재가 있다는 것 만으로,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을 때가 있다.
나에게 친구가 있다니.
어릴 적부터 혼자서 무엇을 하는 게 싫어서 늘 친구와 함께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혼자서 커피숍을 처음 가봤다. 옷이 필요하거나 학용품이 필요하면 친구가 살 때 같이 샀다. 아파트 단지에 있던 학교를 다녀서 대부분 등하교를 같은 반 친구와 함께 했다. 일층에 살던 그녀는 내려가면 그제야 일어나거나, 밥을 먹거나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서로 다른 학교를 갔고 내가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때는 그 친구 없으면 못 살 것 같았었다.
마치 온 하루의 전부가 그 아이였을 만큼 친구가 좋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때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친구가 오지 않아 전화를 하면, 이제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도 준비하고 나올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 그냥 함께 놀고 싶어서 그랬다.
그랬던 그때 그 친구는 지금 내 옆에 없다.
또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정말 자연스러웠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공부를 하느라. 취업 준비를 하느라. 잠시 놓아버린 인연의 끈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잇지 않는다면 연결되지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간절히
붙잡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하는 그 순간은 언제나 영원할 것 만 같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랑 평생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 해 옆에 두려고 하지만,
정답은 시간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친구란 기다림과 그리움의 완성이 아닐까.
다시 만나서 놀 날을 기다리고, 그때까지 그 친구가 그립다면 친구 사이는 어떠한 시간의 흐름도 막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번의 기다림 끝에
그 친구가 있지 않는다면,
작은 그리움 또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헤어짐도 결국 누군가의 결정일 수도 있다.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변했더라.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냥 서로 바쁘다 보니까 연락이 안 되더라.”
하지만 나에겐 아직도 가슴 아프지만,
아스라이 예쁜 기억이 담긴 소중한 이별이 있다.
흔한 이별에 이렇게 온갖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그만큼 특별하다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였다.
근처에 학교가 생기면서 우리 학교의 일정 인원이 새로 생긴 학교로 가게 되었다. 나와 친했던 친구는 서로의 이별에 슬퍼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연락하기가 어려웠을 때였다. 집 전화가 연락의 전부였고 늘 다니던 길을 빼고는 동네를 벗어나는 건 무서웠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나 동네에서 만나지 못하는 헤어짐은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펑펑 울던 두 꼬마들은 초록색 스마일 지우개를 반쪽으로 나눴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이걸 가지고 있자고.
나는 여전히 그걸 가지고 있다. 다만, 저쪽 끝 베란다 어느 박스에서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한 두어 번 전화를 했었는데 어긋난 타이밍에 통화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민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를 기억하지만,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지내왔는지 보고 싶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소중한 친구와의 추억으로 간직하는 게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 싶다. 그 친구가 생각한 내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을 테니까.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스마일 지우개 반 쪽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의 우리도 친구라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많이 아팠던 친구와의 이별도 있다.
연인과의 이별도 아프지만 연인만큼이나 나에게
전부였던 친구와의 이별도 그에 못지는 않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그 이별은
중학교 친구였다. 그리고 그 친구로 인해 알게 된
또 다른 친구들이었다.
함께하면 무서울 게 없었고 그냥 네가 하는 건 다 좋았다. 우리 아이랑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고 하시던 상냥했던 어머님도 참 좋았다. 내가 힘들 때 그 일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며 “기도했어”라고 했던 그 말도 나에겐 힘이 되었었다.
이별은 나보다 다른 친구들이 먼저 느꼈다.
둘은 맞지 않고 그만 놀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친구도 변하고 있고 우린 잘 지낸다는 말로 둘러댔다. 내가 지키고 싶어 했던 나의 친구는, 나의 의견과 감정보다 본인의 의견과 감정이 중요했던 친구였다. 나는 그저 필요할 때 옆에 있으면 되었었고 그 필요조차 어느 완벽한 친구의 등장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었다. 그 완벽한 친구의 빈자리를 메꿔야 할 때와 그 친구에게 화가 나서 감정을 쏟아내고 싶을 때 나를 찾아왔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 친구니까.
다른 친구들은 나에게 그렇게 대한 적이 없었기에, 그제야 무엇이 옳은 관계인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을 했다.
무엇이 힘든지 이야기했고, ‘고쳐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기서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밤마다 울면서 통화를 했고, 우리가 함께한 그 추억을 잊을 수 있냐는 말이 오고 갔다.
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 연예인을 보러 방송국에 가기도 했고, 추운 겨울에 따뜻했던 캔 커피가 꽁꽁 얼 때까지 밖에 있어도 즐거웠다. 그런 추억들로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해도 모자랄 만큼 재미있는 일을 함께 했다.
결국 우린 그 추억을 무기로 다시 잘 지내기로 했었다.
하지만 균열이 간 사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 친구의 작은 행동에도 다시 그때의 모습이 시작된 것 같았고, 전보다 참을성 없어진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도 오래가진 못했다. 그 마음 한 부분이 고스란히 떨어져 나갈 땐 심장이 참으로 공허했다.
과연 내 선택이 맞았을까.
즐거웠던 추억이라도 남게
가끔 보는 사이로 지냈어도 됐지 않았을까.
다시 온 연락에 답을 해볼까 했었지만
난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료한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잔인하지만 맞았다. 내가 처음 겪는 친구와의 이별에 힘들어할 때 내 옆에서 위로해주던 사람도 내 친구들이었다.
"널 놓친 걔가 이상한 거야.
네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데.
그런 애 말고 네 곁에 널 소중히 여기는
좋은 친구들을 생각해. 나도 있고. "
나도 있고.
내 옆에는 나를 소중히 여겨주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왜 그 친구와의 이별만 바라봤을까.
그리고 친구를 잃어버리면 그 친구와 함께했던 추억까지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행복했으면 그만이다. 행복한 기억까지 지우지 않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그 친구와 즐거웠다.
그건 사실이었으므로 내 추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몇 년 혹은 몇 달, 혹은 며칠 있다가 연락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어제 만나고 또 만나는 것 같고 그저 그런 텍스트로도 마음이 전해진다. 참 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야 관계가 보인다.
결국 남는 사람만 남는다.
여전히 관계에 대해 불안하다. 놀아주는 사람이 없을까 봐,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
불안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학교를 벗어나면 이별이 참 쉬워진다. 여기까지라 말은 하지 않지만 적당한 선을 찾게 된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듯,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놀면 된다.
매 순간 어렵지만 되뇌고 되뇌면 이 말은 내 것이 될 것이다.
내 마음이 다치지 않으려고 선을 긋는다.
적당한 선을 찾지 못했을 때는 자기를 싫어하냐고 울면서 이야기하던 후배도 있었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상처 받지 않으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그 이후로도 타인이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너무 일찍 긋는 일이 많았었다.
상대방의 호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거나, 내가 다가가면 결국은 또 내가 상처를 받겠다는 생각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었다.
여기까지야.
내가 정한 그 선을 지키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를 벗어났을 뿐인데 친구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말처럼 "저 사람이 내 친구가 될 상인가"를 보게 된다.
곁을 쉽게 주지 못하게 된다는 게 맞을 것이다. 어차피 그 시간이 지나면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할 시간에 대한 기다림의 끝은 이별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친구사이는 이별 기한이 정해져 버렸다. 그래서 흔히들 말한다.
"사회생활하면서 친구 만나기는 쉽지 않아"
쉽지 않은 것이지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면서 공통점을 찾게 되면서 친해지기도 하니까.
지금은 그냥 즐겨보려고 한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야 상처 받을 나를 보호할 수 있다. 흔하게 스쳐가는 이별 속에서 이별 기한이 정해진 상대방이 본인을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친한 사이가 될 수 있도록 적당히 마음을 주기도 하고, 끊어진 관계라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내가 먼저 연락도 해보기도 한다.
인연은 다 있겠지 싶다. 어차피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들은 아무리 잘해줘도 떠난다.
그러니까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게 최고다. 상대방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보호막을 지킬 수 있는 적당한 관계,
그리고 스쳐 지나가듯 맺게 되는 유리 같은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로 같은 반 친구들처럼 모두를
내 친구로 만들 수 없다. 그냥 사람들이다.
오늘 그저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친구를 소중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관계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의 노력이 없으면 유지될 수가 없다.
10년을 넘게 알아서 그 친구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늘도 그 친구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보고 왔다. 이런 면이 있나 싶은 모습을 아직도 보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세월에 변해가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변해가는 모습이 기다려지고, 먼 훗날 가족을 꾸리고, 흰머리가 되어도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 보고 싶어 지는 사람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만났을 때 내가 행복하지 않은 관계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 테지만, 친구를 잃어버리기 싫어서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그랬다. 어쩌면 지금도 내가 모를 뿐 그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나'를 찾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 가 보이지 않는 관계라면 이미 놓쳐버린 손이다. 손 끝에 닿았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해 잡고 있다
생각할 뿐이다.
분명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고, 혹은 미처 몰랐던 친구가 내 옆에서 날 지키고 있었을 수 있다.
내가 바라보지 못했을 때도 나를 바라봐줬던 친구가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친구는 많은 게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일을 함께 좋아해 주고, 뜬금없이 연락해도 이상하지 않고, 함께 있을 때 즐거워 모든 함께는 기다려지는 사람이면 단 한 명이라도 충분한 것 같다.
혹은 나와 함께 해줄 수 있는 모든 게 내 친구가 되는 게 아닐까.
별거 없는 이 글도 지금 이 시간만이라도 나한테도 여러분한테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