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여자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ep15
집에 도착한 건 저녁 9시
안 먹던 저녁 겸 야식을 먹는다.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너무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힘든 한 주,
하루를 보냈으니까.
매일 출근길 ‘코로나만 아니면’, ‘코로나라도..’
관두고 싶다고,
이렇게 예민해지고 자존감 떨어지는 환경에서 나 자신을 구출해줘야 할 것 같은 컨디션이다.
두통과 혈압이 오르고, 휴가도 없이 일하고, 일만 하고 있는 지금, 난 그래도 일을 하고 있다고 감사하며 이 시간을 버텨야 하는 거지?라고 내 자신에게 말하며.. 퇴근 길 반찬집에서 3만 원어치를 사서 우걱우걱 저녁을 먹는다..
배가 부르다...
내일도 주말에 집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배가 부르면 잠을 못 잔다던 나는
어느새 배가 불러서 아무 생각 없이 스르륵
소파에서 잠이 들어버린다.
내가 봐도 이중적이다.
그래도 일주일 중에
정말 오래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곯아떨어진다.
숙면이다.
너무 피곤하고, 감정의 기복과 예민함이 극에 달해
오전에 일을 도와준다는 대리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난 속으로는 몇 번씩 울컥하여 눈물이 날 뻔했다.
너무 힘들다,
너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대리밖에 없다.
일이 넘쳐흘러서 힘들다고 허덕이고
화를 내고 짜증 내거나 하는 모습에도
도와준다는 대리의 모습도 힘들어 보였다.
도와준다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그의 성향과 감정이 보였다. 찰나의 순간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일을 못해서 도움을 받는 건가 라는 느낌
짐이 되고 worthless 한 느낌 같아 미안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리고 그냥 사라지고 싶다.
민폐가 되느니.
어쩜 뒤늦은 반성이고,
어쩜 뒤늦은 후회일 수 있다.
막연히 싫었다.
나이 먹고 직급도 높은데
일 안 하고 토스만 하는 차장들.
왜 저렇게 본인 업무를 남에게 미루지, 시키지?라고, 내가 팀장이었을 땐 당당히 그들을 비난했다.
난 너 같은 팀원 안 쓴다고 생각하며.
근데 왠지 내가 지금 그렇게 보일까 전전긍긍한다.
누굴 비판하고
누굴 평가하기 싫다 하면서
난 팀 내에서 프리라이더들과
일 시키고 취합만 하는 두 명의 팀장 같은 과장들 때문에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더 힘들다.
내가 왜 과장에게 지시 아닌 지시를 받고
업무 협조를 해야 하지?
내 업무는 1도 안 도와주고 알아서 하라면서 방관하고, 본인들은 취합 업무가 담당이라고 일을 시키고 쪼기만 한다. 화가 난다.
자잘한 그들의 취합 업무들이 우수수 날 것처럼 떨어지고 숨이 막힌다.
두 차장님만 제일 늦게 내거나
안 냈다고 채근한다.
할 일은 야근을 해도 줄지 않고
할 일은 모르던 업무 프로세스와 관행 덕에
새롭게 늘어나는 것은 덤이다.
그래서 난,
경력직으로 들어와
그 기대치에 부응하는 일을 맡지도 못하고
아예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매일/매달/매분기/매년 새로운 전략, 대처방안, 기획을 끊임없이 해서 내라고,
제품 담당 자니까.. 지겹게 듣고 있다.
무슨 전략을 분기별로 짜고,
월별로 가이드를 내고,
거기에 현장 지원이 80프로 중요하다 하고,
기존 일은 일대로 하라 하고
보고서는 내야 하고
매출 안 오르면 또 대안 찾아야 하고
영업팀도 아닌데 영업실적에 쪼이고
당황스럽다.
손발 묶고 잘 달리라고, 빨리 달리리고..
아무런 도구도 주지 않고
그냥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자책하게 되는
자칫 일에서 의미를 찾았고
일에 중독된 나에겐
어둠 속에서 일하고
내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지금
그냥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같이 일하고 힘들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고 해도
내가 모두의 맘에 들거나
인정받기 힘들고
내가 노력한들 안 한들
그들에게 ‘인정’ 받는 게
지금 삶의 무슨 의미인가?
이 상황에서
잘하기 힘들다.
텃새에, 이기주의에
이 조직은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다.
내가 부족하거나
일을 못해서가 아닌다.
그냥 이런 업무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고
여기서 원하는 업무를 내가 해 본 적이 없어서다.
내가 추구하거나 원하던 업무도 아니다.
그냥 돈 벌러 다니는 거다.
그런 의미가 제일 싫었는데...
괜찮다고 도와준다던 대리의 얼굴에서도,
도와주는데 딱 1개만 도와준다는 그의 도움도,
옆에서 힘들어하면 덩달아 힘든 걸 알기에
그냥 내가 사라지고 싶다.
물론 같이 똘똘 뭉치자고 하지만...
그게 진심 일건대.
난 혼자 벽을 치고
그 안에서 무너지고 있다.
진짜 나처럼 와서
이 곳에서 알아서 일을 잘해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의 합에 부응하고 맞춰주면서? 이용당하면서??
철저히..내가 무너지지 않게
날 보호해야 한다. 생존이고 뭐고.
지금 내가 처한 환경과 받는 느낌이 오해이던 착각이던 삶의 생존의 의미가 꼭 이 조직에서만의 생존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돈벌이가 이 곳 하나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굴절된 세상에서
내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