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좋은 꿈을 꾸고 싶다

연휴 마지막 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by 이름없는선인장


“너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


설 연휴를 시작하는 편안한 금요일 저녁,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별다른 큰 연봉 인상도 없이 (약 100만원 정도) 팀장 역할까지 겸임해서 일을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나름 직급 올라갈 때 빼고는 연봉 인상도 크게 없는 것도 분한데, 이렇게 100만원 올려주면서 끝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열 받고 지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연봉협상도 없고, 거의 동결된 지 8-9년 된 것 같고, 새로운 연봉제도로 이제 상여나 연봉 인상은 더더욱 없을 예정이야..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우리는 노동에 있어 계약으로 엮어진 관계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회사가 시국이 시국인지라 모든 기업이 힘들고, 나도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찌 보면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일한 만큼 인정 받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얼마나 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너의 능력을 인정해 주지 않고 그 만큼의 연봉 인상도 없는 게 견딜 수 없이 싫다면 그냥 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다니면서 시간을 벌고 준비해서 이직하면된다. 딱 그만큼만의 일만 해. 그 동안 너무 열심히, 많이 잘 하려고 하지 마라. ”라는 말을 추가로 건네줬다.


하지만, 어쩜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난 지난 5일간의 설 연휴 동안 매일 일이나 회사 관련된 꿈을 꿨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회사를 가지 않는 연휴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회사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많았다.


EP1. 마케팅 역량 강화 조직으로의 탈바꿈.


새해에 맞춰 조직은 또 다시 조직개편과 다양한 인사 단행을 공표했다. 우리 실에는 새로운 실장님이 오셨다. 광고대행사 출신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3개월 먼에 팀장~실장 고속 승진에 다양한 조직 내의 팀/실 직책을 겸임하며 (6번 정도?), 거의 6개월에 한 번씩 뒤흔드는 조직 개편때마다 인사의 주인공이되셨던 분.


실장님은 출신 답게 실이름도 마케팅을 넣어 바꾸고 각 팀의 명과 역할도 모두가 BM(Brand Manager)가 되라는 미션을 주셨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던 불필요하거나 BM으로서 갖춰야 하는 역량 또는 업무에 대해서는 정의해 주시지 않았다.) 또한,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을 만든다고 하셨다. 그 팀은 정확한 R&R도 없지만 우리 팀과 업무 플로우의 화살표가 100% 일치했다. 우리 팀을 겨냥한 듯 한,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맡고 있는 파트가 제일 유력했다.


모두가 수근덕거렸다. 마케팅을 잘 모르는 다른 팀원들이 봐도 실질적으로 마케팅 실행 & 온라인 마케팅을 전담해서 하는 우리 파트가 새로운 팀으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루머가 예전부터 돌고 있었다. 단지 언제, 어떻게, 누가(파트 전원이 갈 지, 우리 중 몇 명만 갈 지 등) 결과만을 공표되길 기다리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또한 팀장 자리도 임시로 새로오신 실장님이 겸임하신다고 했지만, 내심 그 자리도 누가 올 지 궁금햤다. 내부에서 뽑을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장님은 외부 채용공고를 내셨다고 보여주셨고, 거기다 광고AE출신 선호 문구에 나는 맘을 접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했다.업무 연관성이 제일 높고, 팀장 출신이던 나는 누구보다 긴장하고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퇴근 길, 같은 팀 팀원이 새로 온 실장이 새로운 마케팅팀을 만드는데 실장님이 “내부에 있는 인원들은 아무도 안 데려가고 다 외부 채용을 헐 거다”라는 말을 건너 들었다며 전해주었고 실망감이 컸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짜피 그 사람은 대표님 선호도를 고려했을 시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팀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설 팀에 팀원들 포지션은 내부 인원 업무 및 역량 파악 면담은 하고 외부 채용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새로운 팀은 아무런 KPI와 매출/성과 부담없이 전문가라며 100% 외부 채용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인하우스에서 마케터 육성은 안하고 신규 인원 충원으로 추가 인건비만 늘리시는 건가? 광고가 마케팅팀 업무에 전부 다는 아닌데 왜 AE출신만 선호 하시는거지? 100% 인하우스 브랜드 & 통합 IMC 마케터로만 지냈던 내가 가질 수 있는 경험은 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브랜드 매니저를 원하는 새로운 실에서, 약간의 희망을 가졌었고, 팀장을 5년 넘게 하면서 팀세팅도 했던 나는 실장님이 그리는 마케팅팀의 애매모호함과 본인처럼 광고대행사 출신만으로 팀을 꾸리려고 하는 모습이 다 수긍되지 않는다. 그리고 마케터 경력직으로서 실장님 못지 않게 경력이 있는데 (광고만 집중하지 않았을 뿐) 나의 경력을/ 경험을 깡그리 무시한 듯한 발언에 실망해서 화가 났던 것이다. 씁쓸했다.


마침 후배와의 통화를 통해, 나도 회사에서 자존심이 상하긴 했다고 내 일화를 털어놓자 내가 그냥 괜찮아 한 것 뿐이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후배가 내 스토리를 듣더니, 선배가 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데 자기가 너무 열을 냈다며 날 위로하며 톡을 마무리했다)


연휴 전에도 새벽 3시까지 영상 촬영을 하면서도, 연간 온라인 마케팅을 운영하면서, 광고 효율 등을 위해 증명(?)해내야 하는 부담감… 마케팅을 모르는 조직 내에서 묵묵히 버텨냈던 시간들. 그럼에도 이번 TV광고도 블라인드나 사내 게시판에서는 유명 광고대행사랑 했다고 하고, (같이 일한 우린 그 대행사랑 일하는게 너무 힘들었지만), 브랜드 정체성과 상관 없이 유명 전속모델을 썼다고 해서 즉각 광고 효과가 없는 건 대형 에이전시 탓도, 모델탓도 아닌 그저 마케팅에 마자도 모르며 앉아있는 본사 직원, 우리를 일컫는다. 비판만 가득하거 남 탓만 하는 조직.


도대체 그런 유명한 회사와 모델을 가지고 우리 회사는, 아니 이번 담당한 본사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한 거냐? 정말 본사에서는 마케팅의 마 자도 모른다”


마음이 답답하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생각했음에도,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연휴의 끝에서 내가 앞으로 증명해 낼 수 있을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살던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고, 같이 일하는 파트원들이 일에 허덕이는 구조에 너무 미안하고 답이 없어서 내가 무능력한 파트장이 될까 싶어 어깨가 무거웠다. 난 팀장이 아니라 인사 권한도 앖는데 왜 나는 팀장 때 처럼 고민을 하고 잠을 못 자는 건지…이런 권한도 없는 파트장 자리를 준 팀장님도 원망스럽다.


난 무얼 기대했던 것인가.


나도 힘들어지고 더 답이 없어진 조직에, 그러나 업무 효율을 기대만 하는 회사를 가기가 싫다.




연락왔던 후배의 말로 그래도 믿고 싶다.

희망은 있다고.


“사람들 잘 챙기고 잘 따르고, 능력도 있으신데 다른 곳에 가서 더 잘하실거고 좋은 팀장님 되실 거예요. 빨리 이직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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