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생각
출발점은 같다.
형제의 모든 유학 시점은 같았다.
우리는 같은 교육을 받았고, 대학교까지는 비슷했지만,
대학원부터의 삶, 사회생활의 시작점 등은 다 달랐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 셋의 현재의 위치는 다 다르다.
지금에서 먼저 앞서 간 사람을 부러워해야 하는지.
앞으로의 일들을 예측할 수 없다고, 끝은 봐야 한다고, 나 자신을 위로해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은 전 자가 조금 더 부럽다.
조금 더 젊은 나이에, 많은 것(?) 누린 다는 것은
어쩌면 한 번뿐이기에, 그래도 특혜인 것 같다.
그 사람도 많은 노력을 하고, 그런 자리에 있다는 걸 알기에
크게 배가 아프거나 하진 않지만, 적어도, 삶의 여유와 가족이라는 큰 짐을
크게 느끼지 않았을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부러움과 야속함, 그 중간에 있다.
그 화려하고 좋은 삶이 마냥 부럽지는 않다.
내 성격 상, 그런 삶을 원했을지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가지지 못하는 역량과 경쟁력을 가진 것이 부럽다.
내가 목말라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니까.
누구든 누구와 지나친 비교를 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순간, 자극을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비교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에서는, 반환점을 돈 것 같은 인생에서의 지금 시점에선, 더더욱.
그게 또 형제라면 말이다.
형제.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평생 비교되는 삶을 사는 것.
결코 공평할 수 없고,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그럼에도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이득을 취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관계.
첫째, 둘째 서열에 상관없이
누가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누가 먼저 승진을 하고,
어느 순간 서로의 연봉은 암묵적 비밀.
자식으로 부모의 부양 의무는 똑같기 가져가자고 하지만,
자식들은 어느 순간, 개인의 삶과 처한 환경, 경제적 여유에 따라
보이지 않는 등급과 예외 변수를 두기 시작한다.
형제들은 부모님의 예외 변수를 허락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된다.
저울처럼 공평한 자식 사랑은 없다.
그럼에도, 그리고 누구의 삶과 비교하지 않기 위해.
약간의 동기부여가 되는 선에서,
나는 자극을 받고, 조금 더 분발해보기로 한다.
딱, 그 정도만.
내가 조금 더 행복해 지기 위해.
나를 조금 더 아껴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