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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을 버리다

40대 여자 팀장의 하루 ep 38

by 이름없는선인장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같이 성장하지 않는다.

마음은 오히려 아기처럼 연약하고 여려진다.

그저 겉으로는 강하고, 무뎌지는 것처럼 보일 뿐.


팀장으로서 난 갈 곳을 잃었다.

내 감정에 한계를 느꼈다.

회사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했는데...

내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졌다.

그것도 미안하다며 팀원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회사 계정 SNS 팔로우 안 한 죄.

그걸 미안하다고 하지 않은 죄.


그렇단다. 팀원이 중요하게 느끼는 일에, 감정이입이 되어 분신 같은 SNS 계정을 그렇게 열심히 운영했는데 팔로우 안 했다고 하니 팀장이 무시하는 것 같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 팀장에게 배신감이 들어서 정말 관둘 만큼 상처 받았으니 사과하란다.




"팀장님의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단 하시는 거잖아요!”


나도 그녀의 막 나가는 태도나 말에 상처 받았고 나는 기분이 안 나쁘겠냐고 하자, 그녀는 내가 항상 그런 식이라고 그냥 한 번쯤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걸, 본인 잘못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거 그만하시면 안 되냐고.. 본인은 감정과 일을 분리하지 못해서 감정이 상하면 일을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사과하라고 한다.


“그냥 상대방이 상처 받았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흔들렸다. 20살도 더 어린 팀원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데 데자뷔 같았다. "미안하면 미안하단 말로 끝이다"라고 화를 내던 내 예전 베프의 일침이 떠올랐고 또 그 이유로 속절없이 그 친구를 잃었던 어린 나를 생각하며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성장하지 못한 어리숙한 나인가 싶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속상한 마음에 울면서 팀원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그녀도 미안하다고 했다..ㅜㅜ)


뭐가 맞고 틀린지도 모르겠고. 그냥 내려놓고 싶었다. 이 팀원, 저 팀원, 다 날 원망하나 싶다. 이게 무슨 팀인가. 이렇게 리스펙트 없는, 일방적인 요구만 하는 팀원들에게 나는 너무 지쳤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팀원들... 앞에선 괜찮다고 하고, 뒤에선 서로 불만들을 공유하며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데 내가 무슨 수로 그들의 불만을 해결할까?


내가 믿었던 믿음이... 용기가 사라진다. 자신감이.

정말 사과하고 인정하면 되는데 내가 못하는 건가? 내가 정말 미안한 건가? 내가 뭐가 미안한 걸까? 회사 SNS 계정 팔로우 안 한 게 이렇게 미안한 건가... 팀장이 팀원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




이젠 나는 칭찬에도 인색하고, 미안하단 말에도 인색하고, 다 인색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2년 동안 쌓았던 거짓 속의 나는, 다 위선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무너졌다. 이러려고 다른 나로 산 게 아니었는데. 팀장이지만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만들어 버려서.... 난 만만한 팀장이 되어 있었다.


난 월권으로 넘어오는 "팀장님 나보다 3천은 넘게 받으면 일 좀 하시라."라는 말도 기가 찼지만 그냥 넘겼다. 어느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떳떳했고, 내가 일을 안 하고 자리를 차지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왜 내가 팀원들에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열거해야 하고, 인정받으려 해야 하나... 같은 팀에 차장도 팔로우 안 하는 건 괜찮고, 팀장인 내가 안 해서 난 언팔하고 블락시키는 앞뒤 안 맞는 논리도... 따져서 뭐할까... 개인 계정인 것을... 언제나 그 차장은 예외다. 왜 그녀에겐 화를 안 내고 요구도 안 하는 걸까? 난 뭐지? 어렵지 않은 만만한 팀장. 맞는구나...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감정이 몰려왔다.

누구를 위해 내가 2년을 고생했는지..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는지.

이젠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말싸움에 지치고, 말이 양날의 칼처럼

내 가슴을 몇 차례나 찔러댄 오늘...

난... 버텨야 함을 알지만...

나 자신을 위해 더 잘해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한다.

그게 나가 인생을 살면서 적어도 배우게 된 거다.

남은 인생을 좀 더 편하게,

후회하지 않고,

낭비하지 않게...

기회를 주고 싶다.

내 자신은 내가 지켜야 한다.


오늘 한 없이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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