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팀장의 하루 ep 44
비가 와서 처진 건지, 주말 내내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거기다 본방 사수했던 게 아까워 끝까지 본 주말 드라마는 일요일 밤 너무 허무하게 끝나서 화가 났고..., 새벽 1시... 2시... 뒤척이며 회사 일 아니 팀원 생각하며 도통 잠이 오지 않은 이유, 이것도 월요병인가.
주말에도 상사 연락이 와서 괴로운 것도 아니고, 무조건 월요일마다 보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예전 직장에 비하면 정말 부담 없는 월요일인데... 팀원들 때문에 발걸음보다 마음이 더 복잡하다.
월요일까지 팀원 인력조정에 대한 의견을 1차 내야 하는 날.
딱히 대안책이 없어 결정을 하기 힘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써 가며, 의견 정리를 해도 마지막 결론 문장이 써지지 않았다. 맘 속에선 4안이 1안이지만 현실 반영될 여지는 거의 0%. (팀 전원 또는 75% 교체) 내 맘속 1안은 저 언저리 4안으로 적어서 낸 시각은 퇴근 시간이 지나고도 10분 후. 옆 팀장님과 퇴근하며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요새 유일하게 나의 스트레스받는 넋두리를 받아주시는 분. (또는 대신 욱하거나 화내는 주신다는..)
몇 명 없는 인원이지만 아직 최종 감축인원 quota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팀원 4명 중, 1명을 뺄지, 2명을 뺄 지도 정하기 힘들다. 예산 축소 범위에 따라, 프로젝트 투입에 따라, 조건에 따라 너무 다르다.
나의 단골 스토리에 오르는 그녀. 1순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과는 나오기 때문에 그 외에 정성적인 평가 요소를 더 중요하게 본다. 업무처리 방식이나 업무태도, 언행이 위아래가 없고, 남 탓하는 감정적인 사람, 본인의 실수를 감추려고만 하고, 능력이 안 되는 부분은 팀장에게 다 해달라고 한다. 지시 사항도 자기 맘에 안 들거나 이해가 가지 아니면 절대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니 팀장인 내가 그녀의 감정을 매일 예의 주시하고 어르고 달래는 삶이 힘들어져 버렸다. 앞에 나열된 이유들이 감정적이라고 할까 조심스럽다. 또 해외사업 쪽이라 언어 역량으로 치면 그녀는 현재 다른 팀원보다는 나은 면도 있으니... 결정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근래 위기 상황에서는 일에 대한 불만은 많고, 알아서 결정하지 못해 하나하나 알려주며 일을 지시하고 어르고 달래야 하는 팀원은 필요 없다.
양날의 칼 같은 또 다른 팀 선임은 오래된 만큼 팀 중추 역할을 하지만 팀에 긍정적인 영향이나 혁신을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팀에 잔류하는 이상 팀 내에서 내가 그녀의 지지(?) 없이 주도권을 가지긴 좀 힘든 구조일 때도 많다. 본인 일은 잘 하지만 후임을 육성하진 않는다. 도움만 간간히 준다. 좀 더 새로운 일은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도 약하다. 본인의 주어진 일만 히려고 한다. 그녀가 일처리도 빠르고 일이 없지는 않지만 그 부분이 본인의 능력도 있지만 대리가 할 만한 일을 차장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말 판을 다 새로 짜고 싶은 요즘이다.
저녁 먹다 마지막 먹은 딤섬에 소화가 안 된다.
그나마 내 고충을 들어주던 옆 팀장님은 내 얘기 들으며 화가 난다고 계속 욱하시고, 그 와중에도 우리 막무가내 그녀와는 어떠한 협업도 하고 싶지
않다며 업무 자체를 따로 하자며 단호히 말해서 대략 난감스러웠다... 나도 저렇게 단호해야 하나 싶을 만큼, 본인 팀원은 잘 챙기는. (인사평가도 팍팍 밀어주겠다며) 그러면 진짜 팀원들을 일을 하게 만드는 뭔가 힘은 있겠다 싶기도 한 하루였다.
인원 축소는 단계별 시나리오로 제출을 했다.
예를 들어 예산 축소, 활동 축소, 프로젝트 미참여 등.
특정 이름도 적지 않았고, 그냥 팀 업무 상 필요한 인원을 적고, 사람 교체는 다 열려있다고 썼다.
( 팀원들의 다른 부서이동이 더 우선순위일 수도 있으니...)
내일 실장님과 면담인데, 답이 잘 안 나온다.
(실장님은 그 주에 다른 두 팀장과 면담 후 나랑은 면담을 진행하지 않으셨다. 나와 면담 진행은 불필요하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 마케팅은 예산 축소 계획은 아직은 없으니 내가 제출한 시나리오 상으로는 인원 변동은 없다고 제출해서 그런가 보다. 이런...)
이번 주 이삼일 사이에 갑자기 돌변한 그녀는 안 하던 보고를 나에게 적극적으로 하고, 본인 업무 외에 여러 일에 나서며 아이디어를 내고, 이것 저것을 같이 챙긴다. 당황스럽다. 평소에 기대하던 순발력과 추진력, 첨이다. 고민하게 만든다. 그녀의 입에서 “모르는 일이다” “내 일 아니다” “들은 적 없다” “이해가 안 간다” “그걸 왜 해야 하나” 이런 반문이 안 나오기만 하면 그건 좋은 하루긴 한데... 역시 며칠 뒤에 나는 “팀장의 역할”은 이런 거라는 둥, 인 그럼 “팀원들만 피해” 본다는 둥 당찬 가르침 소리를 또 들었다. 언제부터 팀원들이 팀장의 역할을 정의하고 요구하는지 어이가 없다. 그 문장을 팀 카톡방에 올리는 저의도 모르겠고, 방관하고 있는 다른 팀원들은 동의한다는 건지 도무지 다들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선임은 오히려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팀장한테 보고도 갑자기 잘 안 하고, 짜증만 내고 예민해져 있다. 시차 출퇴근 유연제지만 정해진 한 시간 단위가 아닌 본인 출근시간 기준 30분 단위로도 출퇴근도 자율로 조정하는 대범함을 보인다. 팀장이 이야기해도 본인은 일찍 와서 그만큼 그 일을 하니 일찍 가도 된다는 것. 양해를 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 아닌가... 내가 관여하거나 줄 수 있는 피드백이 적을 수 있지만 개인의 업무 진행 정도의 파악은 필요한데... 프로젝트에서 어떤 부분을 하고 있냐고 물어도 다른 팀원들과 나눠서 하고 있다고만 한다. 알 수는 없지만 팀 내에서 추가 업무를 전혀 시킬 수가 없다. 이런 행동에서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기분 나빠해야 하는지 이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오히려 근래에는 남자 대리가 제일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딱히 다른 업무를 맡길 수 있을지... 웹사이트, SNS 등 기술적인 부분이나 용어를 잘 모른다. 배우면 되기도 하는데 평소 관심도나 이해도가 떨어지고 ‘마케터’ 자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에 바로 답하고 알아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꼰대 같겠지만 “시키면 해보겠다”라는 팀원이 훨씬 낫다.
디자이너는 예외라 뭐라고 하긴 애매하다. 디자이너 경력이 짧아 기획력이나 통찰력, 본인 디자인 색깔, 전문성도 다소 부족하다. 팀 내에 관련 선임 사수가 없는 게 좀 맘에 걸린다. 그럼에도 그 여자 대리랑 제일 많이 일해서 업무 태도가 물들까 걱정이다. 이런저런 그 여자 대리의 행동이 정당한 게 아닌데 말이다.
모두 갈 길이 멀다.
내 입안만 헐었다.
잠도 못 잤다.
근데 다 부질없다는 걸 알았다.
결정은 했다.
결론은,
여긴 학교가 아니다 라는 것.
언제 결정이 날지 모르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휴..
코로나고 팀원이고
이제 그만 고민하고 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