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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Aug 09. 2021

효도는 셀프

엄마를 향한 언니의 마음이 잔잔하게 감동이 되어 오다

매주 목요일은 서울 남가좌동에 사는 언니가 수지에 있는 친정집을 방문하는 날이다. 언니가 본인의 일정을 고려하여 정한 날이다. 언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시아버지와 한 집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강의하고 번역도 하고 있다. 도우미의 도움을 일부 받고 있지만, 살림도 직접 한다. 그런 언니가 매주 한 번씩 친정을 방문하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다. 언니의 '엄마를 향한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니가 ‘오는 날’이라고 하면 엄마는 항상 ‘오지 말라’고 전하라고 한다. 언니가 오는 날에 비나 눈이 온다거나, 덥거나 춥다는 일기예보를 보게 되면 귀어두운 엄마는 손수 언니에게 전화한다. 오지 말라는 것이 ‘빈말’이 아님을 강력하게 전하기 위한 거다. 하지만 언니는 번역물 마감 임박 등 상황이 정말 좋지 않은 날이 아니면 꼬박꼬박 엄마를 보러 온다. 엄마의 ‘오지 말라’는 말에 대해 언니가 오히려 섭섭한 눈치를 보인 적도 있고 언짢은 기색을 한 적도 있다. 엄마는 먼 곳에서 언니가 매주 오는 것이 맘이 편치 않아 오지 말라고 하지만, 맛있는 반찬거리가 있으면 언니 오면 같이 먹겠다고 남겨두곤 한다.


언니가 엄마를 보러 오는 날은 나는 엄마네 가지 않는다. 형제들이 ‘한꺼번에’보다 ‘따로’ 여러 날 엄마를 방문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 목요일에도 오후 3시경 형제 단톡방에 어김없이 ‘엠버스 탐’이란 톡이 왔다. 10여 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온 야행성인 언니는 한국에 와서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면 수지로 거의 직행한다. 엄마를 포함하여 우리에게 언제 즈음 도착할지 정보를 주는 게다. 시간 예측이 가능하니 꼭 이렇게 알린다. 사무실에서 톡을 본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퇴근 후 엄마네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집안 행사가 아니고는 따로 얼굴 보는 것이 싶지 않아, 언니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네 들어서 언니를 찾으니, 저녁 식사 준비 전 안방에서 낮잠을 자는 엄마의 침대 밑에서 대자로 잠들어 있다. 시원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자는 언니가 편안해 보여 깨우지 않는다. 나도 종종 그렇게 누워서 엄마의 낮잠을 기다려봤기 때문에, 그 시원함과 편안함을 익히 안다. 두 사람의 달콤한 낮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사 간 수박과 양파를 정리한다. 불구하고 언니의 휴식을 방해하는 부스럭 소리가 들렸던지 언니가 거실로 나온다. 얼굴이 여전히 피곤해 보인다.      


언니의 안색을 살피는 이유는 지난해 가을, 언니에게 뇌경색 증상이 와서 우리 형제들이 까무러치게 놀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증상이 가벼웠다. 엄마는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모른다. 당시 석 달 동안 언니는 엄마네를 방문하지 않았다. 예민한 엄마가 눈치챌까, 약간의 후유증마저 회복한 뒤 엄마를 보겠다고 했다. 항상 바쁘고 편찮은 시어른이 있는 언니라서 이렇게 저렇게 둘러대기가 쉬웠다.      


저녁 준비를 해야 할 즈음되어서 엄마는 부스스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귀가 어두우니 우리의 말소리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정해진 일상이 몸에 배어 일어난 것이다. 엄마가 부엌으로 움직이려 하자, 얼른 엄마의 손을 잡고 우리 두 자매도 따라 움직인다. 각자 가져온 것들을  엄마의 귀에 대고 목청껏 설명한다. 언니는 북엇국, 호박죽, 오징어볶음, 멸치볶음을 반찬통에 정갈하게 담아왔다. 그 정갈함에 언니의 정성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거기에 시루떡과 콩버무리 찰떡 두 팩까지... 정거장에서 내려 이 더위에 양손 무겁게 짐을 들고 걸어오는 언니는 엄마에 대한 어떤 마음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언니는 그날도 엄마와 저녁 식사를 하고, 한 주일 간의 밀린 수다를 하고 늦게 귀가했으리라. 나의 예측처럼 밤 11시 4분경에 ‘20분 전 도착’이란 언니의 톡이 형제 단톡방에 올라왔다. 무사한 귀가를 알리는 것이다.   

   

언니가 엄마네에서 하는 루틴 중 또 하나가 거실 손걸레질이다. 어느 날 엄마가 ‘언니가 손걸레질을 해줘 바닥이 맨질맨질하다’고 뿌듯해한 적이 있다. 그날 전후 즈음, 언니는 엄마네를 방문하여 꼭 손걸레질을 하는 눈치다.      


손걸레질에 대한 나의 어릴 적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침에 일어나 손걸레질 한 방인데도 불구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마다 이부자리를 기 전에 엄마는 꼭 손걸레질을 고집했다. 어린 마음에 이해할 수 없는 수고였다. 그런 엄마네는 얼마 전부터 언니가 해주는 일주일에 한 번의 손걸레질이 전부인 듯하다.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우리 다섯 형제자매는 서로 미주알고주알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연로한 노모가 있는 친정집의 방문 일정을 정하거나, 역할을 나누는 등의 의논도 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형편과 상황에 맞게 각자의 마음에 따라 한다. 소위 말하는 ‘효도는 셀프’라는 시쳇말을 따르고 있다. 다소 비효율적인 면도 있지만,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려는 뜻깊은 처사이다. 하지만 항상 한 짐 싸들고 오는 언니의 먼 길 걸음은 걱정이다.(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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