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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Oct 20. 2021

넌 환갑 때 뭐했니

난 환갑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3년 전 남편의 환갑 때도 여느 생일과 마찬가지로 생일 케이크와 미역국 끓이고, 반찬 조금 더한 생일상을 차려 아이들과 먹었다. 시어머님 역시 여느 생일 때처럼 아들 좋아하는 요리 한 두 가지 했다고 가져가라셨다. 한 가지 달랐던 것은 친정엄마가 사위 환갑이라고 형부 환갑 때처럼 백만 원의 금일봉을 준 거였다.   

       

내 지론은 엄청나게 수명이 연장된 요즘 세상에 환갑잔치는 난센스라고 정리하고 있다. 18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환갑 때는 미국 사는 오빠네 가족들까지 와서 서울 남산에 있는 호텔에서 시끌벅적하게 잔치를 한 기억이 있다. 요즘 세상과 괴리는 있지만 소중한 추억거리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환갑이 되는 나는 여느 때와 같은 생일을 맞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한 10여 년 전부터 내 생일이 되면 친정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다 드렸듯이 올해도 마찬가지로 그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벤트를 하게 된 계기는 어느 생일날 불현듯 그 해에 딸과 아들 생일날이 떠올랐다. 아이들 생일날 나는 임신기간과 출산, 육아 기간의 고단한 시간과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그 시간을 잘 지나온 것에 대해 나를 칭찬했다. 나의 엄마도 나를 위해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하니 나의 생일날은 친정엄마가 따뜻하고 진한 미역국을 드셔야 한다는 생각에 닿았다.      


“나 내일이 환갑인데, 다른 선물 말고 아침 식사 후 나 없어질 거야. 저녁 먹고 놀다가 귀가할게. 아이들이랑 저녁 해결하고 나 찾지 마”      


“그러라마...”     



생일 전날인 토요일에 골프 라운딩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편에게 내 뜻을 말하니, 짧게 즉답했다.

     

생일날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였다. 고기도 넉넉히 넣고 미역도 깨끗이 씻었다. 아침 먹고 빨리 외출해야 하니, 반찬도 단출하게 붉은 생선 세 마리 구이와 김, 김치로 정했다. 내 생일상 때문에 섭섭해할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미 환갑 의식은 어제 마친 상태였다. 딸이 생화를 꽂은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여 우리 집 나름의 생일 의식인 비디오 촬영까지 말이다. 환갑이라고 딸이 특별히 생화 케이크를 주문한 것으로 가족들의 축하 마음은 충분히 전해왔다.      

미역국을 한 냄비 담아 친정엄마 집으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인 내 환갑잔치 시간이다. 미리 동생이 예약한 뷔페에서 엄마와 동생과 ‘점저’를 먹고 사우나를 가기로 했다. 뷔페에서 엄마가 평소보다 많이 맛있게 드셨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식사 후 사우나에 가서 따뜻한 물에 편하게 몸을 담갔다. 물속에서 엄마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눌렀다. 발바닥도 구석구석 지압했다. 평소보다 과식한 엄마가 음식을 잘 소화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우나 후 엄마가 좋아하는 장도 보러 가는 스케줄도 있었지만 엄마가 바로 귀가를 원했다. 엄마의 뜻대로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조촐하지만 마음 따뜻한 나만의 환갑잔치였다.    

  

혼자 남은 차 속에서 나는 불현듯 나에게 환갑이란 것이, 엄마네 집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듯 내 인생의 반환점을 돈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달리기 시합에서 반환점을 도는 순간에 묘한 안도감과 파이팅이 느껴졌던 기억이 살아났다. 뛰어야 할 거리가 반만 남았으니 열심히 뛰어 1등을 해보자던 의욕이 솟구치던 그 느낌. 그 느낌을 살려 남은 인생 열심히 살아 훗날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나의 모습을 다듬어 가볼까 한다.(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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