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이해관계에서 생긴 텃세는 그 이해관계에서 틈을 찾아라

by 손성호

대학교를 들어가며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전까지, 우리 집엔 항상 매운 고추향이 가득했다. 안 마당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둘러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마른 고추 꼭지를 따고 있었고, 아버지는 바깥 마당에서 여러 곳에서 싣고 온 고추들을 둘러보며 흥정하는 모습이 그 때까지 내가 보아 오던 우리집의 풍경이다.


아버지는 한 때 충청도에서 내로라하는 고추장사였다. 가끔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을 때면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의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충북 괴산에서 처음 고추장사를 시작한 아버지는 고추 한 자루를 사다가 가격이 오르면 되파는 식으로 조금씩 규모를 늘리다가 하루는 큰 장에 나갔다. 충북 괴산이 전국에서는 고추로는 알아주는 지역이라 괴산에서 열리는 고추시장에는 전국의 장사꾼이 다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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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부푼 꿈을 안고 시장에 나갔지만, 생전 처음 보는 애송이 장사꾼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혹한 텃세뿐이었다. 아무리 가격을 높게 쳐줘도 팔지 않는다는 답변 뿐이었다.


아버지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서 텃세도 부리지 못할 만큼 높은 가격을 불러, 시장 안에 있는 좋은 고추들을 몽땅 사들였다.(당시 거래방식은 일부 선금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외상으로 장부만 주고받는 식이었기에 당장 가지고 있는 현금이 많지 않아도 이런 식의 거래가 가능했다.) 그리고 이른 바 희아리라 불리는 저급의 고추들도 대량 사들였다. 그리고 시장의 중앙 터에 모든 고추들을 쏟아붓고 섞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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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사려고 흥정을 하던 좋은 고추들이 생전 보지 못하던 풋내기 장사꾼에게 몽땅 팔린 데다 저급 고추들과 섞이고 있는 장면을 보고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고추 가격을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내놓았다.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라는 식으로. 당연히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는 현장에서 엄청난 이득을 남기며 모든 고추를 다 팔아버렸다.


괴산 지역의 좋은 고추를 사려고 먼 지역에서 온 장사꾼들은 빈 트럭으로 돌아가는것보다 어떻게라도 고추를 싣고 가는 것이 남는 장사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고추를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이 고추시장에서 아버지에게 텃세를 부리거나 한 장사꾼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이 사건 이후, 아버지는 그 지역의 최고의 장사꾼이었던 두혜 아저씨의 눈에 띄고 그 분과 함께 충청도의 최고 고추장사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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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장에나 시장진입에 장벽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시장에 진입하려면그 장벽과 제대로 맞서야 한다. 시장진입의 장벽은 보통 그 시장을 지키기 위한 이해관계 때문에 생겨난다. 때문에 시장진입의 장벽을 무너트릴 틈도 그 이해관계 안에 있다. 아무리 텃세를 부려도, 가격을 높게 받고 싶은 장사꾼들의 본질을 꿰뚫었기에 다소 무모해 보이는 배팅도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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