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내 인생이다

넘어진 그자리 #8

by 손성호

블로그 운영 초창기 태경의 블로그 콘셉트는 '실행'과 '실천'이었다.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에 가려 하고 싶었던 일을 억누르며 살았던 지난 날의 반작용이었다. '실행'과 관련된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썼다. 과연 콘셉트를 명확히 정한 후의 블로그 운영은 쉬웠다. 3개월 뒤 키보드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 글도 쓸 수 없었다. 아니 쓰기 싫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써내던 '실행', '실천'에 관한 글들은 더이상 그의 머릿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 없이 깊어 보이던 연못물이 바닥을 드러낸 것 마냥 처참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다.


김태경 강사님이시죠? 전 OO대학교 취업담당자입니다.


잘못 정한 블로그 콘셉트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한 대학교 취업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강사님 블로그의 글 잘 보고 있어요. 이번에 저희 학교에서 취업캠프를 하는데 강사님을 특강 강사로 모실 수 있을까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제 블로그의 글보고 강의 요청하신다구요?"


"네, 대학생들을 위해 강사님께서 쓰시는 칼럼들에 정말 많이 공감하고 있었어요. 마침 강사님을 모실 기회가 생겨 이렇게 연락드려요. 가능하시면 이번에 쓰신 '하고 싶은 일 직업으로 만들기' 칼럼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 학생들에게 강의 부탁드려도 될까요?"


'내가 대학생들을 위해 글을 썼던가?'


태경은 블로그를 돌아봤다. '실행'과 '실천'이라는 콘셉트에 생각이 묶여 억지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자신도 모르게 대학생들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청년실업이나 열정페이 등 대학생들에 관련된 언론 보도나 영상을 보고 자신이 느낀 점들을 꾸준히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블로그를 통해 들어온 태경의 첫 강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특강이 되었다.


목표를 정하고 달리는 말은 그렇지 못한 말보다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한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들에 흔들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목적지가 출발할 때 생각했던 그 모습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그동안 불필요하다고 지나쳐 왔던 기회가 될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은 말 그대로 지나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래서 여자들이 한 번 모이면 두 세시간 얘기하는 건 기본이구나.'


태경의 얘기를 마치 자신의 일인 것 처럼 흥분하는 미경을 보고 있자니, 여자들의 공감 능력은 남자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 기억이지만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 회피랄까? 부모님이, 그리고 선생님이 선택해 준 인생에 대한 반항심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결국 그것도 제 선택이었는데 말이죠."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시험도 강사님 잘못으로 망친 것도 아니니 그런 마음 드실 만도 했겠네요. 그래도 정말 억울했겠어요."


"덕분에 누구도 해보지 못할 여러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전과는 새로운 인생의 첫 문을 열게 되었죠."


"새로운 인생이요?"


"학교도 학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저는 한 동아리 활동에 대학생활을 매진했어요. 야학이라고."


"야학이요? 야간학교요? 대학생들이 학생 가르치는 동아리인가요?"


"네 맞아요. 1년이 임기인 야학 교사를 저는 4년 내내, 졸업할 때까지 정말 미친 듯이 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그 선택과 경험이 지금 제가 강단에 설 수 있는 시작이었고, 미경씨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 순간을 만든 거죠."


"아~ 전화위복.. 뭐 그런 건가요?"


"네 비슷해요. 스티브잡스가 얘기한 'connecting the dots'일 수도 있구요. 제가 지금 강단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거든요. 재미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