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성호 Mar 13. 2017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방법

'언젠가는'

서른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향하는 요즘,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상갓집에 가게 된다. 이십대 초반,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가던 상갓집과 지금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어느 새 일상과 비슷한 자연스러움이 생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장을 차려입고, 무거운 표정으로 상주를 맞이하고, 최대한 공손해 보이는 자세로 절을 한다. 상갓집에서 술잔을 부딪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그러면서도 평소의 친분 정도에 따라 부의금을 얼마를 할지 고민하는 계산적인 모습도 없지 않다. 이십대 초반의 순수한 조문 태도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내 모습을 새삼 돌아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OO형이 세상을 떠났대요.”     


대학교 때 같이 야학을 하던 후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단 소식이었다. 일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대부분, 아니 모든 상갓집은 나보다 손윗사람의 상이었다. 내 또래나 나보다 어린 연배의 상은 가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상갓집에 마주 앉은 선후배들은 모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후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조문을 왔다가 영전에 있는 후배의 사진을 보고 주저앉은 다른 후배도 있었다. 끊임없이 우는 이들도 있었고, 멍하게 앉아있는 이들도 있었다.      


“인생 열심히 살아야 다 쓸 데 없어.”     


평소 술을 먹지 않던 선배는 혼자 소주 두 병을 비워내며 한탄했다. 누구보다 성실히 살던 후배가 한 순간에 고인이 된 것에 대해 허무한 마음이 컸으리라. 그럼에도 나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더 열심히, 더 의미 있는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이렇게 될 줄 몰랐기에 후배는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했을 것이다. 언젠가 더 행복할 내일을 위해 어제도 열심히 일만 했을 것이다. 이렇게 불행해질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어제 부상자 35명, 사망자 1명’     


후배의 그 일 이후, 도심에서 보는 이 전광판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오늘 죽더라도 후회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자라는 생각을 다잡고, 또 다잡는다.     


“내가 이것도 못 보고 죽을 뻔 했다.”     


마카오 여행 중,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공연을 보고 나오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부부나 다녀오라며 극구 안 오겠다던 여행을 함께 온 어머니에게서 들을 거라고 생각도 못한 말이었다. 


‘언젠가’ 강사로서 자리 잡게 되면,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되면, 어머니 모시고 여행이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돌아보면 그냥 ‘생각’뿐이었다. 결혼하면서 아내의 닦달에 조금 무리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간 여행이었는데, 그 여행이 나의 막연한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또 한 번의 가족 여행을 계획하게 했고, ‘언젠가’ 하겠다고 35년 동안 미루어 놓았던 해외여행을 3개월에 한 번씩 가게 했다. 그렇다고 내 오늘이 무너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오늘은 여느 때의 오늘과 다를 바 없고, ‘언젠가’ 하겠다던 그것들을 오늘 다 이루고 있다.     


생각보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물론, 그것은 내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은 아직 주어지지 않은, 없을지도 모르는 ‘언젠가’이다. 돈 모아서 언젠가 하겠다던 그 여행도, 시간되면 언젠가 하려던 그 일도 찬찬히 살펴보면 오늘 시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