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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성호 Mar 13. 2017

공부 잘 하는 방법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공부

“결혼하더니 얼굴 보기도 힘드네. 시간 내서 한 번 놀러와.”     


전 직장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는 물류 입고 부서의 반장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회사 근처에 당구장을 차렸다. 가끔 당구를 치긴 했어도 그 정도로 당구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내가 축구 동호회 총무를 맡았을 때, 축구 동호회 배 당구 대회를 연 것도 선배의 당구장이었다. 


벌써 8년이 넘었다. 여러 장사와 사업을 하며 나도 당구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웬만해선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것이 당구장이다. 그런 당구장을 8년 넘게, 심지어 확장까지 해서 운영하고 있는 선배가 대단해 보였다.


열심히 글을 쓰다 더 이상은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것 같아 잠시 책을 읽고 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온 전화였다. 선배 얼굴도 볼 겸, 오랜만에 좋아하던 당구도 한 게임 칠 요량으로 바로 당구장으로 향했다.


보통 당구장에 가면 카운터 바로 앞 당구대는 사장과 단골손님들이 전용으로 사용한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나름 당구깨나 친다는 사람들이 이 당구대에서 승부를 펼치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는 연세가 지긋한 손님과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경기를 구경하는 아저씨도 있었고, 저기 멀리서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오락기에 앉아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학창시절에 지금처럼만 공부했으면, 우병우랑 같이 놀았을 텐데….”     


선배가 혼잣말을 하나 싶었다. 점수판 뒤에 가려 미처 보지 못했던 한 아저씨가 자리에 앉아 무슨 책을 보고 있었다.     


‘3쿠션 시스템 실전 당구’     


머리도 희끗희끗해서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그 후에도 당구가 2게임이나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그 당구책을 보고 있었다. 아마 절실히도 당구를 잘 치고 싶었나 보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공부를 하게 된다. 당구를 좋아하고 잘 치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책을 찾아 공부하게 만들듯, 축구를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축구 드리블 동영상을 보든, 축구 경기를 보든, 또는 잘 하는 사람을 찾아가든 더 배우기 위해 스스로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때의 집중력과 습득 속도는 누가 억지로 시켰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부끄럽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위치를 항상 헷갈려 했다. 충청도에서 갇히다시피 살았던 터라 직접 가보지 않은 전라도, 경상도는 사회과부도에나 있는 상상의 지역이었다. 그래서 헷갈리는 거라 그렇게 위로하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헷갈릴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내가 더 이상 경상도와 전라도의 위치를 헷갈리지 않게 된 것은 야간학교 교사가 되고 나서이다. 


첫 학기 때, 나는 국사와 한국지리를 맡게 됐다. 담당 과목은 내가 맡겠다 해서 맡은 게 아니라, 경상계열의 학과라는 이유로 그냥 배정된 것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에게 우리가 배울 때보다 쉽게 가르쳐 줘야 했다. 그래서 학과 공부보다 더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다.


학생들이 내가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잘 이해할 때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평소 그냥 스쳐 지나갈 뉴스도 수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멈춰서 경청하곤 했다. 신문도 챙겨보고 역사 소설도 읽게 되었다. 야학 교사를 하는 4년 동안 나는 국사, 한국지리 뿐만 아니라 세계지리, 사회문화, 국어, 수학, 정치경제 등의 수업도 진행했다. 단순 암기로만 알고 있던 이론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짜 공부를 하게 됐다. 덕분에 군대에서도 정훈의 날 이벤트로 진행한 골든벨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행운, 아니 영예도 얻게 되었다.    

  

필요하면 찾게 된다. 그리고 어떤 상황을 만나야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만난 ‘필요’를 외면하지만 않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그녀에게 호감을 얻고 싶은 ‘필요’가 생기면, 그녀를 더욱 관찰하고 공부하게 되듯이 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왜 그것을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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