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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지 못한 건 고기가 아니었다

아이에게 상처를 준 건 내 말이었다

by 피터의펜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참 어렵다.


잘 살려면 잘 먹어야 하고 잘 먹으려면 또 잘 살아야 하니까. 그 둘은 서로 엇물려 있으면서도 정작 뭐가 먼저인지는 여전히 헷갈릴 때가 많다.


어릴 적엔 생각했다.

소시지나 스팸 같은 게 식탁에 올라오면,
그게 곧 "잘 사는 집"이라는 증거인 줄 알았다.

물론 지금은 안다. 입맛이 없을 때 따뜻한 된장찌개 하나가 그리고 어머니가 후다닥 비벼주는 나물비빔밥 한 그릇이 진짜 맛있는 밥상이라는 걸.


어쩌면 내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내 아이는 아직 그런 깨우침을 얻지 못했다.
성장기엔 고기가 필요하다고들 하니까.
소시지보단 햄, 햄보단 닭고기,
닭보단 돼지고기, 그리고 그 위엔 소고기.


그날 나는,
좋은 것 먹이겠다는 마음만 너무 앞섰다.


"고기가 너무 질겨."

작은 목소리가 내 귀로 툭 떨어졌다.


"고기는 제대로 익혀먹어야 해"라고 늘 말하던 우리 어머니의 지론대로 나는 그날도 소고기를 바짝 굽고 있었다. 고기는 타지 않았지만, 육즙은 이미 다 빠져나간 뒤였다.


"그래? 왜 그럴까... 일단 더 잘게 잘라줄게."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내 고기 굽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괜찮다며 대충 넘기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가위를 들었다.


양도 문제였다. 4인 가족이면 500g도 충분했을 텐데 나는 괜히 욕심을 내서 800g을 구웠다. 고기를 더 잘게 자르는 사이 식탁 위엔 잘려야 할 고기만 점점 쌓여갔다.


"그만 먹어도 돼? 안 씹혀..."


아이는 결국 고기를 입에서 뱉었다. 조용히 입을 닦고 밥 한 공기를 그대로 남기고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순간, 속이 훅 꺼졌다.


"너 그렇게 고기 안 먹으면 키 안 큰다. 키 순서 1번 되면 어쩌려고 그래. 조금만 더 먹지."


생각보다 말이 앞서 나갔다.
어쩌면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말을 던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건 그냥 밥상머리 잔소리가 아니라 '좋은 걸 먹이고 싶다'는 내 쓸데없는 욕심에 '실망감'을 얹어 뱉은 말이었다는 걸. 아이에 대한 조언보다는 나의 화풀이였다는 걸 알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는 다음날 아침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었지만 나는 안다.


우리 둘 다, 그날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걸.


몇 해가 지나고,
아이의 치아 교정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아이가 부정교합이 조금 있네요."
"아마 위아래 이가 맞물려본 적이 없어서,

그동안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했을 거예요."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내 귀엔 그렇게 담담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 말 한마디에 몇 년 전의 밥상과 질기다고 말한 아이의 표정이 겹쳐졌다.


괜히 울컥했다. 솔직히 마음으로는 한참을 울었다.


작은 상처 하나를 크게 만든 건
고기가 아니라 내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의 고기에 대한 기준은 완전히 바뀌었다.

소고기 대신 씹기 부드러운 돼지고기,
그보다 더 부드러운 닭 안심살.
웰던보단 미디엄,
완전하게 익히기보단 덜 익히기.

아직 육회까지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건 꽤 큰 발전이다.


무엇보다 바뀐 건 고기의 종류가 아니라 나의 생각과 내 말의 온도였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의 불만에도, 아직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감정이 커지기 전에 내 말이 너무 앞서지 않도록 아이의 마음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지 않도록.


아이의 기억 속에 그날의 밥상이 불편한 기억이 아니라 다정하게 바꾸려 했던 한 끼로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말도 씹히는 것이 아니라 스르르 넘겨지는 마음이었기를.



아빠의 부록 조언

좋은 걸 먹이는 일보다
좋은 말을 건네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한 점의 고기보다
한마디 말이 더 오래 남는다.
그러니, 더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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