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마스크랑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미세먼지가 바다 건너오며 푸른 하늘을 온전히 가려버리는봄이나 가을에도 마스크를 낀 적이 없었고, 유명 연예인들이 공항패션으로 검정 마스크를 유행시킬 때도 역시 관심 가진 적이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그저 불편해서. 좋은 공기든 나쁜 공기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한껏 들이켜야 속이 개운해진다. 산에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허파로 밀어넣으면 그 상쾌함은 순간 온몸으로 퍼지는 걸 알지만이제는 그런 시대가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고작 1년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2020년에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나를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 매일을 계속 쓰고 있다 보면답답하고 갑갑하고 어쩔 땐 숨이 안 쉬어질 것 같으면서몸이 뒤틀리는 경험을 할 때도 있을 정도다.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어딘지 모르게 속이 답답해진다.
코로나를 생각하면 역시 마스크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그 불편함을 제외하고라도세상은 참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겼다. 고작 1년이지만 작년과 올해는 완전 다른 세상이다. 지구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1968년과 달에 족적을 남긴 1969년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것처럼(물론 그 시대를 겪은 적은 없지만, 감히 넘겨짚어 본다).코로나 바이러스를 계기로 내삶에도 거리두기가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는데, 좋은 부분도 있고, 나쁜 방향도 있다. 너도나도 거리두기로 힘든 건 분명 사실이지만, 현재가 변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미래는 그 변화에 맞춰서 또 흘러가고 적응되겠지.
"띵동"
"누구세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소독 왔습니다."
이번 달은 소독 안 할게요.
몇 달 주기로 진행되는 소독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꽤나 자주한다. 아파트의 특성상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소독과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해충박멸에 성공할 수 있고, 불편하지만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임해야옳다(저는 세스코랑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관 내외부의 청결을 각자 관리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고, 소독이나 방역에도 역시 협조를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 이후로는 전면 중지 상태다.최근 들어 소독을 위해 다시 세대 방문이 시작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거리를 둔다. 코로나가 끝난다고 다시 우리 집 대문을 활짝 열게 될까.아마도 안 그럴 거 같다.서로가 불편한데 굳이 거리를 좁힐 필요가 없다. 소독약만 전달받아서 직접 소독하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정수기나 공기청정기처럼 렌털상품에도서비스를 위해서는 방문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우리 집은 정수기의 필터 상태가 좋으면 파란색 불빛이 '반짝' 하고 깜빡이며 안심하고 마시라는 신호를 보내주고, 교체가 필요하면 붉은빛을 내뿜어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그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물론 한 번도 빨강 빛을 본 적은 없다(필터 교체를 제법 잘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의 여파로 올해는 계속해서 필터 교체를 안 받아왔고, 느낌인지 진짜로 그런 건지 어딘지 모르게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럴 때면 생수를 몇 번 사다 먹기도 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한번 서비스를 받았는데,물론 서비스하러 방문하신 기사님도 그렇고 집에 있던 우리들도 그렇고 마스크에 환기까지 시키며 서로 조심했지만, 굳이 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터나 청소를 스스로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서로 이런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없기 때문이다. 최근 발 빠른 어느 업체가셀프 필터 교체도 가능한 정수기 상품을 황금 드라마 시간에 전파를 태워 소개하며 방송에 내보내는 걸 보면 나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고민이자 관심사라는 얘기 아닐까.필터 교체와 같은 업무는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애당초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를 설계하는 초기부터 셀프서비스, 즉 거리 두어 교체하는 방법을 고려해서 반영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학습지처럼 방문교육(방문판매도 물론) 시장도 많이 사그러 들었다. 나도 어려서부터 스스로 공부하게 된다는 그 학습지를 했었고,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 애들은 일주일에 한 번 내지는 두 번씩 학습지를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모두 그만두었는데, 초반 몇 달은 연장이나 우편함을 통해 학습지만 받으며 버텨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코로나가 금방 잡힐 것 같지도 않았고, 이미 언택트 생활에 적응이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굳이 다시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 애들도 이제는 온라인 수업이나 스스로 학습법에 제법 익숙해지며 이 생활에적응하고 있고.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는 전화영어나 화상영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코로나는 없었지만), 그때는 독감이나 늦잠병(?)을 제외한다면 영어 학원에 못 갈 이유도 없었지만, 우리는 진작부터온라인으로 배우며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하게 되는 꿈(그냥 꿈)을 꾸었다. 그 시장이 조금은 더 확장되어 이제는 어린아이들에게도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려나 보다.나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배움에 있어서 우리가 꼭 만날 필요는 없지 않나.
회사도 마찬가지다. 재택근무를 처음에 시작할 때는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재택근무만큼 좋은 것이 없다. 우리가 회사로 출근해서 업무를 하면 출근에 1시간을 쏟아야 하니, 업무에 투입되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지쳐 있다. 중간중간 이 사람 저 사람과 커피 한잔 마시거나 업무 얘기 도중 딴 길로 새다 보면 정작 내 업무에 집중을 못할 때도 생긴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오히려 '내 일'에 집중하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라도 나는 여전히 사무실과는 거리두기를 이어가고 싶다(내가 결정할 순 없겠지만).사실 서양에서는 재택근무나 유연근무가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어쩌면 상명하복식의 수직적 조직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긍정의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코로나바이러스를 계기로!).아직은 회사의 리더그룹이 흔히 말하는 '꼰대 문화'의 어르신들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당장 쉽게 변화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회사의 근무환경도 머지않아 변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우리 거리 좀 둡시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둘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다. 내 경우는 AS였는데, 밥통이나 에어 프라이기 정도의 가전제품이라면 짊어지고 서비스를 받으러 내가 센터로 가겠지만, 덩치 큰 가전이 고장 나면 별수 없다. 올여름에는 그 전날까지 문제없던 에어컨이 하루 종일 켜놔도 실내온도가 28도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바람에서 냉기라고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는데 한동안 켜 두니 에어컨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아닌가.긴박하게 맞바람이 불도록 창문을 양쪽으로 열고 다음날 새벽에 배달 오는 서큐레이터까지 주문하여 에어컨 수리 전까지 며칠이라도 버텨보려 했다. 한 여름이기도 했고, 보통 이 시기에는 에어컨 수리를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된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던 터.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에어컨 수리를 위한 공식 서비스 센터의 일정은 텅텅 비어있었고, 심지어는 당일 수리도 가능하다니.당연히 선풍기보다 에어컨이 몇 배는 더 시원하기 때문에 가장 빠른 시간으로 수리를 예약했고, 서비스를 받아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사실 코로나가 창궐한 이 시기에는 역시 거리두기가 필요하겠지만, 에어컨 수리만큼은 도저히 미룰 수가 없었다.(물이야 사 먹으면 그만이고, 온라인으로 학습도 가능하지만, 에어컨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코로나로 한껏 격상된 우리 집의 빗장을 처음이자 올해의 마지막으로 풀게 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거리두기에 대한 생각은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작되었고, 한마음 한뜻으로 바이러스를 조기에 끝장내버리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코로나와별개로 누군가와아니면어떤 장소와 거리를 두며 사는 이 삶에 갈수록 익숙해지고 편해진다.우리 삶의 혁명적인 변화가 되었고,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의 전환에 있어서 한발 더 앞으로 나간 것이다. 그동안은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을뿐더러 고민할계기가 없었다. 어쩌면 불가피한 것으로만 생각하며 불편을 감수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훨씬 전부터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 거리두기를 원했지만 마땅히 그것을 실행할 근거나 합리적인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코로나로 우리 모두의 생활이 어려워진 점은 매우 안타깝지만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선택적 거리두기를 하며 적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