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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포터 Nov 27. 2020

책 드라이어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케케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가 바로 '책을 사서 읽을 것이냐', '빌려서 읽을 것이냐'에 대한 주제다. 나의 경우는 필요한 책 위주로 인터넷서점에서 주로 구매하는데 그 필요라는 건 어릴 땐 수험서였고 지금은 표지가 딱딱한 예쁜 책 아니면 애들 책을 말한다. 아니면 독립서점에서 종류 불문 눈에 들어오는 한두 권의 책 위주로 입장료다 생각하고 집어 든다. 이 경우를 제외한다면 굳이 안 읽어도 되지만 읽으면 재밌을 책 남을 텐데 주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다.


연체로 인한 대출정지 기간도 마침 끝났고 하여 시시콜콜한 주제의 책 몇 권을 찾아서 도서관에 방문했다.


"야, 그걸 뭐하러 샀어! 빌려 읽으면 될걸!"


"저번에 책 넘기는 그 부분에 코딱지 묻어있는 걸 본 이후로는 사서 읽고 싶었어. 근데 그거 알아? 코딱지 묻어 있는 그 모서리 부분에 침 자국도 있던데, 이 먼저 묻어 있던 걸까? 코딱지가 먼저 붙은 걸까?"


"???!?!???!?!??"


QR 인증하고 들어가려는 찰나에 도서관 로비에 서로 꽤나 친해 보였던 두 사람이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어쩌다 보니 대화 내용이 너무 황당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고 공감되어 일부러 방향을 그쪽으로 틀어 주고받는 대화를 다소 집중하여 듣고 있었다.


대화 도중에 오간 그 내용을 마치 내가 책을 빌린 입장이 되어보면 마냥 유쾌할 순 없지 않을까.


책이 완전히 펼쳐지도록 꾹꾹 눌러서 바닥에 내려놓은 채로 읽다 보면 다음 페이지를 향해 우리는 손가락에 온 힘을 실어 코너 부분을 마치 꼬집듯이 넘겨야 한다.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에 예전에는 침을 묻혀가며 넘기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지폐를 셀 때도 그렇고 철봉에 매달릴 때도 그렇고 슈퍼에서 주인아저씨가 검정봉투에 담아줄 때도 그랬다. 물론 그런 행위를 마지막으로 목격한지도 오래되어서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겠거니 하다가도, 책의 아랫부분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넘기려다 보면 침까지는 아니어도 콧기름이나 땀 아니면 과자 기름 또는 초콜릿 어쩌다 코딱지(?)가 묻어서 꼬질꼬질해 보일 수도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나 요즘같 코로나가 창궐한 시대라면 그들이 나누던 대화를 그저 웃고 넘길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나름 책을 자주 빌리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안 해봤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서(아니 정확히는 사색을 하겠다는 핑계로) 책을 펼쳐둔 채 멍하니 딴생각을 즐겼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요즘 나 무거운 주제의 책을 정독하기보다는 가볍고 쉬운 내용을 다룬 책 위주로 빌리는 경향이다 보니 오래도록 펼쳐두고 읽을 필요가 없다. 이집저집 옮겨다닌 책이라고 해도 내용이 쉬운 탓에 대여한 사람이 책을 읽는데 쓰는 시간보다 반납을 기다리며 가방에 넣어두는 시간이 많아서 깨끗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굳이 좋은 구절이나 뜻깊은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을 요량으로 마치 수험서처럼 바닥에 책을 완전히 펼쳐둘 일도 없고, 어쩔 땐 졸다가 한 두 페이지 내용이 순간 사라져도 내용 파악에 별 문제가 없어서 페이지를 다시보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없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점도 분명 연관이 있어 보인다.


책을 읽는 자세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전에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의 저자 고승덕 변호사가 수험생활을 보낸 일화가 떠오르는데, 책상에 앉아서 많은 시간을 공부 하다가 엉덩이가 아파지면 바닥에 엎드려서 독서를 이어나갔고, 그마저도 허리가 아파지면 누워서 읽었다고 했다. 그런 자세와 열정을 가지고 책을 오래 펴두는 사람의 책은 분명 공부의 흔적이 역력할 것이다. 그렇게 독서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와 내가 빌리는 책의 주제가 아마도 어디 하나 핀트가 안 맞는지 주로 내가 빌리는 책은 접히거나 펼쳐졌던 흔적이 드믈다.


물론 나는 그 세 가지 독서 자세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로 소파에서 반 눕거나 반 앉은 자세(허리에 안 좋다는 바로 그 자세)로 책을 양손으로 집어 들고, 책에 연속된 그림을 그려서 마치 만화가들이 휘리릭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그 자세로 읽는다. 어쩌면 독서보다는 훑어보 그 모양새가 딱 내가 책 읽는 모습이다. 물론 그러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나는 책의 중간 부분을 잡고 읽으며 그저 다음장으로 페이지가 넘어가지 못하게 엄지만을 이용해서 붙잡고 있다가, 넘겨야겠다 싶으면 엄지를 살짝 들어 올리는데 그 영역이 알고 보니 코딱지 free 존이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을 수도 있겠다. 굳이 어떤 책만을 골라서 대여하지 않으며 별다른 예약 없이 바로 현장에 가서 손에 집히는 책을 고르는데, 도서관에 들어선 뒤 내 발걸음이 느려지다가 멈추는 곳은 입구에 있는 신착도서 서가. 딱 거기까지다. 요즘은 책의 종류도 무한정 많고 그에 맞춰서 도서관은 책을 자주 그리고 넉넉하게 주문하기 때문에 신착도서가 매일같이 들어오는 듯하다. 이런 환경이 나를 더욱더 서가 안쪽까지 가지 못하게 막는다. 굳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특히나 요즘은 신착도서만 빌리게 된다. 예전과 달리  읽을거리가 넘친다는 좋은 소식 아닐까.


지금은 동네 병원이나 도서관 아니면 기원 정도는 되어야 종이로 만들어진 신문을 볼 수 있겠지만 집집마다 신문을 배달시켜 보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종이 신문을 배달해서 보는 집들이 여전히 있겠지만, 신문 구독하면 상품권 준다며 호객하시는 분들을 근 10여 년간 한 번도 못 만나걸 생각하면 확실히 그 수는 많이 줄었다. 그때는 읽을거리 중에서 제일 재밌던 것이 바로 신문이었다(퍽이나 재밌었겠다). 물론 그런 이유와는 별개로 우리는 사설(?)을 읽고 또 읽기를 강요받던 시대였고 그러다가 신문과 친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신문을 제외하면  삼국지나 수호지 아니면 피천득의 수필집을 읽고 또 읽던 우리 성장기에 비하면 정말 지금은 폭소나 박장대소 때론 미소를 머금게 하거나 아니면 갑자기 실소를 내뿜게 하는 것처럼 재미난 책이 정말 많다. 그런 책들이 매일같이 쏟아지는데 모든 책을 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하드커버로 만들어지는 스페셜 에디션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시대가 좋아져서 요즘은 빌리는 책도 드라이시켜주는 시대다. 코딱지는 탈락되 침은 건조해주니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 내려놓고 책이나 읽자.


옛날 생각에 빠져들다 보니 불현듯 신문이 불쌍해진다. 신문이 보관되던 위치는 주로 화장실 변기 옆 그리고 휴지 아래 신문 걸이였는데, 새벽에 찬 공기 가르며 멀끔하게 배달 왔어도 곧장 화장실로 끌려 들어가(?) 습기와 냄새를 제법 좋은 효율로 빨아들이고 나서 분리수거되던 그들의 삶도 참 어려웠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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