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헨리포터 Dec 19. 2020

2020은 어떤 '점'?

벌써 12월이고 올해의 마지막 날도 다가온다. 곧 있으면 새해가 밝을 것이고 또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겠지. 새해를 맞이하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굳게 다짐하는 신년 계획을 아직은 차치하더라도(아직은 연말이니깐 그 대단한 다짐을 조금은 미루자) 올해를 어찌어찌 살아왔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울 것도 없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해보며 돌아보면 충분하다. 한숨 푹 자다가 새벽이 오줌마려서 잠에서 깬 바로 그때가 어찌 보면 최적의 타이밍이다. 온 집안의 불은 꺼둔 채로 식탁에 홀로 앉아 양키캔들(이름에 양키가 들어가니 꺼려지지만 향기만큼은 달콤하다) 켜 두어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한 채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만한 피아노곡을 에어팟에 연결하면 준비는 끝난다.


미리 준비할 사항을 굳이 챙겨본다면 새벽에 일어나 이불로 되돌아 가지 않기 위해서는 마루에 따뜻한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전에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주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원하는 피아노곡을 먼저 찾아두어도 좋다. 어두침침한 새벽에 일어나 갑자기 찾으려다보면 어디서 생전 듣지도 않던 테크노 풍의 요상한(?) 노래만 찾아질 테고 그러다 보면 준비된 이 감정도 한순간에 증발한다. 폭발을 준비하던 이 분위기가 날아가고 나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꿀팁이라면 이도 저도 선곡이 어려울 때 진주만 OST를 1번부터 틀고 마지막 곡까지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그 다짐이면 충분하다.


나를 돌아본다는 이 쉬워 보이는 행위가 알고 보면 굉장히 어렵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특별하게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술은 더더욱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나를 돌아보는 그 의식(?) 보다는 너를 들여다보길 좋아하고 즐기는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만큼은 아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에 대한 생각이나 '니들'에 대한 마음은 접어두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올해를 되돌아보자.


우리는 흔히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이면 인생이 된다고 말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라는 좋은 말이 있겠지만 그러려면 우리의 점은 어제보다 대각선 오른쪽 위에 찍혀 있어야 하고 그 점들을 이어나가다 보면 원점(0,0)에서 시작해서 (5,5)도 지나고 (10,10)도 지나고 (39,39)까지 찍혀 직선으로 쭈욱 이어져 있어야겠지만 참으로 그런 인생을 살기란 어렵다. 너와 나의 서로 다른 기울기는 무시하더라도 분명한 건 우리의 삶이 대각선 오른쪽 방향으로만 쭉 뻗어 올라가는 1차 함수의 형태는 아니다. 즉, 내 삶을 설명하려면 차수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이라든지 굴곡 많은 인생 또는 골이 깊은 인생 아니면 그지 발싸개 같은 인생은 우리네 삶의 힘든 현실에 대해 푸념할 때 내뱉는 단어들이다. 하나같이 상상해보면 그 방향성이 대각선위로 뻗어나가는 예쁜 그래프라기보다는 연습장위에 그려진 그래프처럼 보이는 낙서 아니면 한껏 부린 신경질 뒤에 부러진 연필심 정도가 떠오른다. 그 점의 높이는 여전히 원점 근처에서 머무르며 생각과 다르게 비상하지 못하는 그런 암울한 상황 정도일 것이다. 이지경이 되고 나면 보통 우리는 "됐고 다음부터는 잘해보자", 아니면 "아, 모르겠고, 될 대로 되라지 뭐" 정도로 얼버무리게 된다. 내년에라도 제대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올해를 돌아보는 그 고된 시간은 필요하다. 점을 잘 찍어나가야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가 다 가기 전에 2020이 내게 어떤 점이었는지를 스스로 챙겨보자. 여러 종류의 점이 존재한고 365일에 걸친 이야기를 점 하나로 요약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아예 안 하면 내년도 결국 올해와 달라질 수는 없으므로 굳이 돌아보려 한다.


나는 주말이면 종종 달리기(단거리 마라톤, 물론 나 혼자)를 즐기는데 7km 나 10km 아니면 15km 진짜 어쩔 땐 21km를 계획하고 달린다. 물론 어디를 기점으로 그리고 어느 지점을 반환점으로 삼아야 하는지 마음속에 이미 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가 하면 그 덕에 좋은 기록이 나오기도 한다. 반환점을 돌기 전에는 마음을 미리부터 준비해야겠지만 어느 날은 쉬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고 같은 거리를 뛰지만 다른 날은 힘이 넘쳐서 반환점을 돌기 한참 전부터 페이스를 미리 올린다. 완주하고 나면 몸은 힘들어도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복기를 해본다면 마음 한구석이 아쉬움으로 남을지 뿌듯한 성취감으로 남을지는 반환점을 돌 때 그 순간 나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당시는 몸이 힘든 것 같지만 사실은 뇌가 힘든 것이고, 지친 것 같지만 그저 지루한 것이다. 아마도 마흔을  2년 앞으로 앞둔 내 입장에서 본다면 올해도 그렇고 내년까지가 바로 반환점을 앞두고 페이스를 바짝 끌어올려야 되는 그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 나이를 살아본 사람들은 보통 마흔전까지 배운 지식을 가지고 평생을 조금씩 써먹으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아직 그 나이를 온전히 겪어보지를 못해서 정확한 그 말의 깊이를 이해할 순 없지만 나이 먹어서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겠다고 고생하지 말고 삼십 대까지 부지런히 배워두고 마흔이 넘어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올해 많은 걸 배우고 새롭게 시작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비로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시켰는데, 책상 위 달력을 랩탑 안으로 집어넣었고 손바닥 만한 노란색 포스트잇 노트를 제외하고는 진짜 노트(공책이나 다이어리부터 연습장까지)를 모두 치운 뒤 MS 원노트만을 활용하는 중이며 핸드폰에서 찍은 사진을 더 이상 메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 랩탑과 핸드폰을 wireless로 서로 연결시켜 주었다. 아이폰3가 나온 그 해에도 여전히 2G 폰을 고집했던 내 삶을 고려한다면 나는 올해 참 많은 아날로그를 버렸다.


책을 읽는 종류와 범위도 이전과 비교해서 더욱 광범위하게 넓혔다. 예전에 어떤 가수가 방송에 나와 본인이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결벽이 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올해의 나는 책에 있어서 만큼은 잡식이 되기로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지식서 위주로 사들이고 빌렸지만 이제는 시집부터 이상한 산문집까지 읽어낸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했고 온전히 내 삶에 이롭게 작용하고 있으니 '반환점'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성공적이었다.


업무적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근거로 했을 때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3년마다 업무를 바꿔왔고, 5년마다는 팀을 바꿨는데 특별한 목표가 있었다고 하기보다는 내 삶이 그러했다. 하나를 깊게 알기보다 이것저것 두루 알기를 좋아했고 그러한 삶의 방향이 역시나 회사에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서상 업무를 바꾸고 팀을 바꾸는 것은 상당히 눈치 보이는 일이고 어렵다. 그렇다고 눈치 보며 한 템포를 늦추다 보면 남들이 먼저 그 기회를 쟁취하고 눈치만 보다 끝나게 된다. 올해도 9월에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을 밝혔고 내년 1월 1일부로 팀을 바꾸게 결정되었다(인사명령만 기다린다). 지금 하는 일에 비해 조금은 더 삶이 부드러워질 것으로 예상은 하지만 막상 가서 보면 내가 그동안 보지 못한 일이 있을 것이다. 물론 편한 일을 쫓아간 것은 아니다. 지금 팀에서 나의 위치라면 10년 뒤에 내 모습도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 상승추세긴 해도 기울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10년 뒤에도 비슷하다는 얘기다. 그래프의 모양을 바꾸려면 접선방향에서 벗어난 곳에 점을 찍는 것부터 시작이다. 물론 그 점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작일 수도 있고 반대로 기가 막힌 상승곡선의 시작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알 수 없다. 그저 이러한 큰 변화를 마흔 전에 이뤄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올해는 분명 전환점을 찍어내기로 마음먹은 중대한 기로에 있었다. 훗날 돌아볼 때 그저 넓은 길 내버려 두고 샛길로 빠진 '분기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삶이 쉽다면 그것은 분명 일반인의 삶은 아닐지어다(아멘! 나무아비타불! 알라?). 흔히 말하는 엄친딸 or 아들 정도 아닐까. 우리처럼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일반인이라면 분명 쉽지 않아야 정상이고 아이러니 하지만 그것이 '이치'다. 애들이 처음에 태어나서 어릴 때는 나도 정말 힘들었다.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아이를 맡기지 못했을 때는 보육도우미 선생님께서 본인 일정 취소하고 온종일 봐주시기도 했고, 양가 부모님이 총동원될 때도 있었으며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아침 10시에 퇴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제는 그저 추억(?) 아니 끔찍했던 기억으로 남았는데 올해가 여러 상황에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있지만 그렇다고 예년의 그 삶에 비해 '임계점'에 이를 만큼 어려운 삶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저 감사한 해였다.


내 삶에서 부족한 부분은 '꿈'이었다.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고 순간 머릿속에 모든 것이 사라진 백지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목표나 꿈이 뭐냐고 묻는 것이라면 쉽게 대답을 할 수 있었겠지만, 원래의 꿈은 무엇이었냐는 그 질문에는 적절한 대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삶을 탐탁지 않게 보는 건가 해서 순간 화가 나기도 했다가 그 질문만 놓고 볼 때 뭐라 답할지 순간 멈칫했다. 대통령이었다고 말하자니 상황이 가벼워질 것 같고 다른 무언가를 말해봐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도전해보라는 뻔한 상황이 기다리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저 '지금 이 모습'이 꿈이었다는 식상한 답을 내놓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 질문을 곱씹어보니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 미래를 꿈꾸던 모습이 있긴 했다. 물론 지금은 그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정말로 생각해보니 지금이라도 못 이룰 꿈은 아니다. 2020은 그 시절 꿈에 다가가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해로 기억하려 한다.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만 했던 소중했던 어릴 적 내 꿈에는 올해가 '변곡점'으로 작용해서 상승추세로 전환되며 기가 막힌 기울기로 올라가길 소망한다!


이렇듯 하나로 쉽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올해에 찍힌 나의 점을 모으면 평균이 잡힐 것인데 내 삶의 그래프에서 봤을 때 그 점이 유달리 튀어 보이는 '오점'이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올해도 정말 수고 많았어!



작가의 이전글 책 드라이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