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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Aug 12. 2019

미드소마 속 뻔한 클리셰와 깨져버린 클리셰 5가지

공포영화 미드소마 줄거리 및 해석 리뷰

올 여름 문제의 화제작 ‘미드소마’가 우리를 찾아왔다. 고어영화, 보기 힘든 영화, 역겨운 영화 등 이 영화를 수식하는 말 들은 굉장히 많다. 그리고 영화는 여러 요소를 통해 이 영화가 단순히 잔인하다, 혹은 재미있다 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게 하고 있었다.



영화 미드소마 사건의 발단


먼저 영화는 주인공 대니의 불운한 가정사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 테리와 연락이 되지 않자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에게 위로를 받고자 하지만, 이미 대니에게 지쳐있던 크리스티안은 별 일 아닐 거라 그녀를 안심시킬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테리는 가스 중독 자살을 시도했고, 자신뿐 아니라 부모님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사고를 일으킨다. 이에 대니는 큰 충격에 휩싸이지만, 그녀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은 그녀를 위로하기 보다, 친구들과 함께 축제가 벌어진다는 펠레의 고향 스웨덴의 호르가로 여행을 계획한다.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던 그가 원했던 건, 여자친구가 아닌 새로운 여자와의 만남, 그리고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


하지만 그저 립서비스로 함께 가자고 했던 대니가 이 여행에 끼어들며 여행은 묘한 분위기로 흘러가는데...



뻔한 클리셰 1. 분열된 주인공


가족을 잃고 의지할 곳을 찾던 대니는 크리스티안의 관심을 바라지만, 정작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자친구에게 이미 질려 있었다. 그저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자 할 뿐.


하지만 예상과 달리 대니가 여행에 따라오는데, 그럼에도 그는 대니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심지어, 여행 중 생일을 맞은 대니를 챙긴 건,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이 아니라, 그의 친구 펠레.


나중에 펠레에게 귀띔을 받은 듯, 급조한 생일파티를 벌이지만, 당연히 이는 엉성한 퀄리티일 수 밖에 없었으며, 대니의 기분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화를 돋우는 일이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알게 된 코니와 사이먼 커플의 행동 속에서도 크리스티안의 마음은 이미 차게 식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이먼이 코니에게 이야기도 없이 기차를 타러 먼저 떠났다고 이야기해준다. 이때, 대니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수상함을 느끼지만, 크리스티안은 ‘그럴 수 있다’고 오히려 사이먼을 변호한다.


이미 마음이 떠난 크리스티안 역시 위기에 몰린다면 여자친구를 챙기기 보다,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걱정할 사람이란 게 드러난 부분이었다.



뻔한 클리셰 2. 외지인과 내지인의 갈등


노부부가 절벽위에서 떨어지는 사건으로 축제의 시작을 열게 되며, 영화는 펠레의 초대를 받고 온 외지인인 친구들과,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내지인이 대립하기 시작한다.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던 이 광기를 목격한 외지인은 하루 빨리 이 곳을 벗어나려 하지만, 내지인은 계속해서 그들의 발목을 잡아 끌며, 어떻게든 이들을 붙잡아 두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공포 영화, 혹은 스릴러 영화에서 굉장히 즐겨 쓰는 연출이다. 우연한 계기로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과 이들을 적대시하는 내지인. 그리고 이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 외부와 단절된 공동체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되는 전형적인 클리셰 중 하나를 차용한 부분.


조금 달랐던 건, 이러한 내지인의 끔찍한 만행을 ‘문화’라는 말로 덮고 있다는 점이었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노인이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하고, 죽지 않으면 망치로 때려 죽이는 게 실제 있었던 스웨덴의 풍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류학을 공부하는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은 이 사건을 보고 ‘문화의 상대성’으로 몰고 가고자 한다. 아무리 각기 다른 문화는 존중해야 할 부분이지만, 인류학을 공부하는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이 이를 단순히 문화의 상대성으로 몰아간 부분은 사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실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이 이를 문화의 상대성으로 몰고 가고 싶었던 배경 뒤에는, 그들이 논문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처음부터 이 마을, 호르가를 중심으로 논문을 쓰려고 했던 조쉬. 그리고 아직 논문 주제도 못 정했던 크리스티안. 이 둘은 원주민의 폭주를 그저 지켜보며, 이를 연구 과제로 사용할 생각만 한다.


두 사람의 관심은 호르가 원주민의 문화와 행동을 논문으로 옮길 수 있는지 여부에만 온전히 쏠려 있다. 그 안에서 이성을 잃고 표류하는 원주민의 행동을 바로 잡으려 하거나, 문제점을 제시할 노력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서 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첫 행사가 절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니는 절벽이라는 말 만으로는 어떤 행사인지 알 수 없어, 조쉬에게 행사에 대해 묻지만, 그는 어정쩡한 대답으로 이 상황을 모면한다.


조쉬는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이 부족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만큼, 이러한 소수 집단의 문화나 풍습에 대해 알고 있었을 거다. 크리스티안은 정말로 몰랐었던 것 같지만, 이러한 풍습을 경계하기보다 호기심을 갖고, 그저 연구 대상으로만 여길 뿐.


즉,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인권이나 잘못된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는 것보다, 자신의 논문 완성도가 더 중요했다. 미처 폭주를 끝내지 못한 원주민들의 총구가 자신들을 조준하기 전까지 그 어떤 위험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깨진 클리셰 1. 비극의 암시


영화는 사실 초반부터 비극이 펼쳐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들이 스웨덴에 도착해서 차로 이동할 때, 헬싱글란드라는 곳에 다다르자, 화면이 뒤집어진다.


화면과 함께 헬싱글란드라는 글자도 뒤집어져 보이는데, 이는 이번 여행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큰 비극이 불어 닥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부부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게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가 되었으며, 이후에도 같이 간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며, 불안했던 감정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심지어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보여지는 그림은, 단 한 장면으로 이 영화를 압축시켜 놨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감독은 이 암시들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관객이 이 암시를 알아줬으면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는 기존의 공포 영화들과 차이점을 만든 부분이자 감독이 깨버린 클리셰였다.


사실 공포영화나 스릴러 영화는 미래에 일어날 반전 부분을 최대한 숨기며, 마지막 부분에 터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만이 반전이 주는 쾌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작품에서는, 계속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불안감만을 조성한다. 마치 영화 자체가 결말에 대해 스포를 하려는 것처럼 끊임없이, 복선을 보여줄 뿐.


그런데 역으로 이 과다한 정보는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어떻게 끼워 맞춰도 비극 밖에 되지 않지만, 어떤 식의 비극으로 이 작품이 마무리 될 지 두렵게 느껴졌다.


고어 영화라고 했지만 잔인한 장면들이 초반에 편중된 만큼, 뒷부분에는 끔찍한 장면들은 많지 않지만, 앞 부분 못지 않게 불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던 건, 불안한 정보들이 자극하는 상상력과 무조건적인 비극의 암시들 덕분이다.



깨진 클리셰 2. 빌런에게 동화되는 주인공


주인공 대니는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이 자신은 버려둔 채, 연구에만 몰두하는 걸 알게 된다. 그러자 그녀는 엄청난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그녀가 원했던 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존재, 즉 ‘가족’. 하지만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은 언제나 문제가 닥치면 회피하려고만 했고, 진짜 가족은 동생의 폭주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그랬던 그녀는 정상적이지 않은 일들만 벌어지는 이곳에서 진정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녀 역시 처음에는 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느낀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대하는 이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 건 지극히 당연한 행동.


하지만 크리스티안이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이, 대니는 이 마을 사람들과 많은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함께 빵을 굽기도, 춤을 추기도 하며, 심지어 그녀가 슬플 때, 온 마을 사람들이 소리높여 울어주기까지.


그러자 그녀는 크리스티안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야 말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를 위협했던 마을 사람들이야말로, 그녀 자신을 위한다고 믿게 된 것.


사실 이는 아주 새롭다고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고립된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에게 동화되고, 그들을 보호하려 드는 것. 즉,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스톡홀름 증후군
: 범죄자에게 붙잡힌 인질이 범죄자에게 동화되어 그들을 따르고 동조하는 현상


생존 위협을 감지한 주인공, 사람들로부터의 고립, 벗어날 수 없다는 상황 인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친절함. 이 모든 조건이 맞춰지자 대니는 마을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며, 자신 역시 그들의 일원으로 여기게 된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자친구 크리스티안보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눈물을 흘려주는 마을 사람들이야 말로 가족일 거라 생각하게 된 대니. 그녀는 이제 기꺼이 광기처럼 보이는 위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지막 결말 부분, 제물로 바칠 대상으로 크리스티안을 지목한 그녀의 선택이 선뜻 이해가 되었던 부분도 바로 이러한 차원의 연장선이었다.



깨진 클리셰 3. 어둡지 않은 공포영화


공포영화라고 하면 컴컴한 밤에, 외진 장소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공포영화는 어두워야 한다'라는 클리셰를 산산조각 낸다.


북유럽의 나라 스웨덴. 그리고 해가 지지 않는 백야. 이러한 공간적, 시간적 배경 속에서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밝은 분위기 속 흘러간다.


게다가 화려한 색상의 옷과 음식들, 축제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공포영화와는 조금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 투성이지만, 이 '부자연스러운 조화'는 오히려 괴기한 분위기를 낳고, 이는 자연스레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용했다.


어두운 장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만이 공포가 아님을, 이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증명해내고 있었다.



결코 뻔하지 않은 공포영화 미드소마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기 전, 워낙 주변에서 잔인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였는지, 생각보다는 크게 잔인하지 않다고 느꼈다.


다만 이러한 사전 정보없이 화려한 색감의 포스터만 보고 영화관에 들어간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단순히 잔인한 장면 연출 뿐 아니라, 영화가 다루는 주제, 외설적인 묘사 그리고 주인공들의 삐뚤어진 도덕성까지.


다소 거북하게 다가올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산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 관람을 생각하신다면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볼 것을 추천한다.


https://youtu.be/wMCq67k3p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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