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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Oct 16. 2019

잔인한 장면 없이도 쫄깃한 긴장감을 만든 스릴러 영화

[더 길티] 영화리뷰 및 해석

스릴러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어떤 걸 머릿속에 그리게 될까? 범인과 벌이는 숨 막히는 추격전, 거친 화면 전환으로 생동감을 전해주는 핸드헬드 기법. 혹은 선혈이 낭자한 복수극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요소 중 어떤 것도 해당하지 않지만, 독특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스릴러 영화가 있다.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스릴러 영화 더 길티가 바로 그 주인공 되시겠다.


긴급 신고 센터가 배경인 영화


영화는 경찰 긴급 신고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스게르의 시점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는 단 한순간도 그의 시점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시점을 벗어나는 유일한 순간은, 신고자의 위치가 표시되는, 모니터를 비출 때뿐이니 말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걸려오는 신고 전화의 응대를 한다. 술에 취해, 혹은 떳떳하지 못한 이유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신고자에게 염증을 느끼던 아스게르.


그런 그에게 또다시 장난전화 같은 신고 전화가 접수된다. 마치 아이에게 전화를 건듯 이야기를 하는 신고자 이벤.


아스게르는 또다시 술에 취한 신고자의 장난 전화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신고를 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예", "아니오".


범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이 대답만으로 상황을 알 수 있게끔 아스게르는 유도해 나간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 속 범인 추적은 제한되고, 충격적인 비밀들이 드러나며 사건은 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공간적 한계를 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연출은 긴급 신고 센터로 한정된 공간 연출이다.


대개 많은 스릴러 영화들은 길거리를 뛰어다니거나, 범인이 숨어있는 장소를 추적하며 여러 공간들을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신고 센터를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한다.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질 수 없는 상황 속, 긴장감을 만들어낸 건, 위험에 빠진 신고자와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센터 직원이라는 점이었다.


신고자는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아이를 달래는 척 전화를 걸어야만 했고, 납치범의 성화에 못 이겨 전화를 끊어야 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스게르가 조언해준 탈출 방법도 실패하자, 그녀는 패닉에 빠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황에 까지 놓이기도 했다.


비록, 그녀가 화면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음성과 상황만으로 이 영화는 특유의 긴장감을 만들어 낸 것.

적극적으로 응대할 수 없는 아스게르의 신분도 긴장감을 더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 범인을 때려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신고 센터 직원으로서 범인의 경로를 추적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전화를 통해 들어오는 제한적인 정보, 신고 센터를 떠날 수 없는 주인공의 처지.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섞이며, 영화는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고, 팽팽한 텐션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수상한 주인공?


영화의 주인공은 신고센터 직원인 아스게르.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서는 몇 가지 수상한 점이 관찰된다.


그는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뛰어난 요원이지만, 반대로 어떤 것에 의해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영화 초반,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그는 모종의 사건과 연루되어 있고, 이 때문에 굉장히 날이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아스게르는 어떤 사건에 의해 지금 신고 센터 자리로 좌천을 당한 것이고,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


그제야 그의 예민했던 행동들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까지 어떤 이유에서 그가 법정에 서야 하는지에 대해 꽁꽁 숨겨 버린다.


같은 사건에 연루되었던 라시드와의 통화에서 결코 평범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영화의 말미에 다다를 때까지 법원과의 접점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공 아스게르는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사건 때문에 좌천되어 신고 센터에 박혀 있는, 또 그 문제로 법원에 가야만 하는 이중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야곱 세데르그렌의 명연기가 빛을 발하다


개인적으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아스게르 역을 맡았던 야곱 세데르그렌의 연기. 계속 반복되는 배경 속 아스게르만 비치는 카메라 앵글. 영화는 자칫하면 지루하게 늘어질 수밖에 없는 연출이다.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게 그의 연기였다. 그는 전화를 받으며 온 몸으로, 그리고 온 얼굴로 연기하고 있었다.


작은 소리라도 포착하기 위해 집중하는 그의 얼굴 표정과, 초조함을 드러내는 여러 몸짓들은 마치 관객들로 하여금, 신고 센터에 있다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키게 했다.


다만 이러한 장점은 단점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지나치게 제한적인 공간 탓에, 화면은 판에 박은 듯 비슷한 구도로 계속 흘러갔고, 아스게르를 제외하면 얼굴이 나오는 등장인물도 별로 없었던 만큼, 지루함을 느끼는 분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는 영화 <폰 부스>, <더 테러 라이브>, 그리고 <서치>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들은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앵글과, 화면 밖 이야기도 열심히 담아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걸 배우에게 맡겨 둔 것처럼, 한 발짝이 아니라 아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나의 장면, 하나의 인물에 모든 포커스를 맞춰 두었을 뿐.


다행히 러닝타임이 긴 편은 아니었지만, 그 길지 않은 러닝타임 마저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단조롭고 지루한 영화였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건, 저예산 영화임에도 스릴러 장르의 높은 이해도를 보여줬다는 점. 그리고 기존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던 영화라는 점이겠다.


기존 저예산 영화의 퀄리티에 실망해 본 적 있는 관객이라면, 그리고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클리셰 범벅의 스릴러 영화에 지친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존의 스릴러 영화가 취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완전히 탈피한 영화. 그리고 그 속에 주연 배우 야곱 세데르그렌의 명연기가 빛을 발했던 영화 더 길티였다.


https://youtu.be/zfDel7FtY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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