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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첫 시퀀스로 시작을 여는 독립영화 한 편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을 닮은 조지훈 감독의 영화 <화성 가는 길>

by 로튼애플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이 구절은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소설의 처음을 알리는 문장이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충격적인 이야기의 시작 탓에, 아마 많은 사람이 이 구절만큼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거 같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문장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던 독립영화 한 편이 있었다. 조지훈 감독의 영화 <화성 가는 길>이 바로 그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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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첫 시퀀스의 영화


영화는 이방인의 충격만큼은 아니겠지만 꽤나 강렬한 이야기로 그 시작을 알린다.


엄마 첫 기일이잖아...

하지만 제부도라는 먼 거리 때문인지, 종환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일이 짐스럽게만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이를 외면하려는 듯 게임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영화를 예매하기도 했던 종환은, 얼마 전 가출했다 돌아온 같은 학교 동급생 수지를 만나게 된다.


서로 친분은 없던 사이지만, 제부도에 가야 한다는 종환의 말에 이상하리만치 흥미를 보이는 수지. 그래서 얼떨결에 이 두 사람은 함께 제부도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가는 내내 어딘가 편치 않아 보이는 수지의 행동. 그녀의 불안한 모습은 지하철로 갈아타기 직전에 그 최고점에 다다른다.


그리고 지하철로 가자는 종환의 말을 거부한 채, 꼭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수지.


종환은 그런 수지를 무시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하지만, 어딘가 안 좋아 보였던 수지를 외면할 수 없어 함께 버스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수지의 모습. 그런 수지의 기분을 맞춰주고자 하지만, 수지를 대하기가 어렵기만 했던 종환.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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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


이 작품을 처음에 알베르 카뮈의 소설과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충격적인 영화의 첫 시퀀스 탓 만은 아니다.


죽음을 인지하는, 아니 죽음을 받아들이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소설 이방인과 꽤 닮아 있었기 때문.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평소와 똑같이 즐거운 일상을 보냈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그리고 엄마의 첫 기일이 되었지만, 무심한 듯했던 종환의 아버지의 태도.


이 등장인물들은 죽음의 의미를 무겁게 느끼지 않는 듯하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 거다’라는 것처럼 이들은 원래 자신들의 삶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어머니의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삼촌마저, 그녀의 기일인 걸 잊은 건지, 제부도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무거운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오롯이 종환의 몫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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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통화 장면에서, 종환은 어머니를 보러 제부도에 가는 걸 꺼리는 거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어머니를 싫어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제부도를 찾지 않으려 했던 건, 어머니와의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다. 눈 감으면 생생히 그려지는 어머니의 모습.


살아있다고 믿으면 그렇게 자신을 속일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제부도를 찾는 순간 그 환상은 산산이 깨어지고, 그녀의 죽음을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


우여곡절 끝, 제부도에 도착한 종환은 바닷가를 거닐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여전히 그의 머릿속, 선명하게 그려지는 어머니의 모습.


하지만 눈 앞에 놓인 건, 어머니를 떠나보냈다는 허무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깊은 무력감뿐이었다.


이렇게 종환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있던 반면, 어른들은 그녀의 부재에 대해 이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방인 속 뫼르소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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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부재를 느끼는 두 개의 시선


작품 속 또 다른 주인공 수지는 결코 모범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가출한 걸로 전교의 소문이 나기도 하고, 질 나빠 보이는 사람들과 꽤 친한 사이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수지는 그동안 별 친분도 없었던 종환과 함께 제부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사람 모두 꽤 불행한 유년기를 겪어 왔음을 알게 된다.


종환은 1년 전 어머니를 잃었었고, 수지는 7년 전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얼굴도,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불행한 과거는 꽤 큰 차이로 작용한다.


먼저 종환은 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머니와 좋은 사이를 유지해 왔던 걸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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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모습, 그리고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에서 이러한 단서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수지 쪽은 그렇지 못하다. 그녀는 어머니라고 하면 치를 떨며,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의 행동을 비난하기 바빴다.


정서적인 유대와 심리적 안정이 필요했던 시기의 어머니의 부재는 그녀에게 꽤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것.


이러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다른 시선에 그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에 이들이 맞이하는 한 사건에 대해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큰 이유로 작용했다.


결국 이 둘이 겪어왔던 유년기의 추억 혹은 트라우마는, 영화 말미 두 사람이 내린 결정에 타당한 개연성을 불어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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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퀀스만큼 좋았던 영화의 후반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강렬한 첫 시퀀스의 마음을 빼앗겨 홀린 듯 봤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보게 되자 이 영화의 무게중심은 좀 더 뒤쪽에 실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자극적인 문장이나 장면으로 관객들을 홀린 게 아니라, 서서히 불안감을 조성해 가고, 두 주인공의 과거를 조금씩 드러내며 절정으로 치달았기 때문.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또 조금은 껄끄러울 수 있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모든 사람에게 다 흥미롭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겠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게끔 만든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떠오르게 하는 매력적인 첫 시퀀스로 시작을 알리는 영화.


그 안에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 풀어내고 있던 영화 <화성 가는 길>이었다.


https://youtu.be/VG1NPNpOV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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