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튼애플 Oct 23. 2019

충격적인 첫 시퀀스로 시작을 여는 독립영화 한 편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을 닮은 조지훈 감독의 영화 <화성 가는 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이 구절은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소설의 처음을 알리는 문장이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충격적인 이야기의 시작 탓에, 아마 많은 사람이 이 구절만큼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거 같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문장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던 독립영화 한 편이 있었다. 조지훈 감독의 영화 <화성 가는 길>이 바로 그 주인공.


충격적인 첫 시퀀스의 영화


영화는 이방인의 충격만큼은 아니겠지만 꽤나 강렬한 이야기로 그 시작을 알린다.


엄마 첫 기일이잖아...

하지만 제부도라는 먼 거리 때문인지, 종환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일이 짐스럽게만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이를 외면하려는 듯 게임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영화를 예매하기도 했던 종환은, 얼마 전 가출했다 돌아온 같은 학교 동급생 수지를 만나게 된다.


서로 친분은 없던 사이지만, 제부도에 가야 한다는 종환의 말에 이상하리만치 흥미를 보이는 수지. 그래서 얼떨결에 이 두 사람은 함께 제부도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가는 내내 어딘가 편치 않아 보이는 수지의 행동. 그녀의 불안한 모습은 지하철로 갈아타기 직전에 그 최고점에 다다른다.


그리고 지하철로 가자는 종환의 말을 거부한 채, 꼭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수지.


종환은 그런 수지를 무시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하지만, 어딘가 안 좋아 보였던 수지를 외면할 수 없어 함께 버스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수지의 모습. 그런 수지의 기분을 맞춰주고자 하지만, 수지를 대하기가 어렵기만 했던 종환.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죽음에 관하여


이 작품을 처음에 알베르 카뮈의 소설과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충격적인 영화의 첫 시퀀스 탓 만은 아니다.


죽음을 인지하는, 아니 죽음을 받아들이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소설 이방인과 꽤 닮아 있었기 때문.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평소와 똑같이 즐거운 일상을 보냈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그리고 엄마의 첫 기일이 되었지만, 무심한 듯했던 종환의 아버지의 태도.


이 등장인물들은 죽음의 의미를 무겁게 느끼지 않는 듯하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 거다’라는 것처럼 이들은 원래 자신들의 삶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어머니의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삼촌마저, 그녀의 기일인 걸 잊은 건지, 제부도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무거운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오롯이 종환의 몫이 되어 버린다.

아버지의 통화 장면에서, 종환은 어머니를 보러 제부도에 가는 걸 꺼리는 거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어머니를 싫어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제부도를 찾지 않으려 했던 건, 어머니와의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다. 눈 감으면 생생히 그려지는 어머니의 모습.


살아있다고 믿으면 그렇게 자신을 속일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제부도를 찾는 순간 그 환상은 산산이 깨어지고, 그녀의 죽음을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


우여곡절 끝, 제부도에 도착한 종환은 바닷가를 거닐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여전히 그의 머릿속, 선명하게 그려지는 어머니의 모습.


하지만 눈 앞에 놓인 건, 어머니를 떠나보냈다는 허무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깊은 무력감뿐이었다.


이렇게 종환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있던 반면, 어른들은 그녀의 부재에 대해 이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방인 속 뫼르소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는 두 개의 시선


작품 속 또 다른 주인공 수지는 결코 모범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가출한 걸로 전교의 소문이 나기도 하고, 질 나빠 보이는 사람들과 꽤 친한 사이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수지는 그동안 별 친분도 없었던 종환과 함께 제부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사람 모두 꽤 불행한 유년기를 겪어 왔음을 알게 된다.


종환은 1년 전 어머니를 잃었었고, 수지는 7년 전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얼굴도,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불행한 과거는 꽤 큰 차이로 작용한다.


먼저 종환은 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머니와 좋은 사이를 유지해 왔던 걸로 추정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모습, 그리고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에서 이러한 단서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수지 쪽은 그렇지 못하다. 그녀는 어머니라고 하면 치를 떨며,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의 행동을 비난하기 바빴다.


정서적인 유대와 심리적 안정이 필요했던 시기의 어머니의 부재는 그녀에게 꽤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것.


이러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다른 시선에 그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에 이들이 맞이하는 한 사건에 대해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큰 이유로 작용했다.


결국 이 둘이 겪어왔던 유년기의 추억 혹은 트라우마는, 영화 말미 두 사람이 내린 결정에 타당한 개연성을 불어넣고 있었다.


첫 시퀀스만큼 좋았던 영화의 후반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강렬한 첫 시퀀스의 마음을 빼앗겨 홀린 듯 봤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보게 되자 이 영화의 무게중심은 좀 더 뒤쪽에 실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자극적인 문장이나 장면으로 관객들을 홀린 게 아니라, 서서히 불안감을 조성해 가고, 두 주인공의 과거를 조금씩 드러내며 절정으로 치달았기 때문.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또 조금은 껄끄러울 수 있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모든 사람에게 다 흥미롭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겠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게끔 만든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떠오르게 하는 매력적인 첫 시퀀스로 시작을 알리는 영화.


그 안에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 풀어내고 있던 영화 <화성 가는 길>이었다.


https://youtu.be/VG1NPNpOVzE

매거진의 이전글 잔인한 장면 없이도 쫄깃한 긴장감을 만든 스릴러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