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현 감독의 독립 영화 <스타렉스> 리뷰
같은 꿈을 꾸는 모두가 같은 삶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모두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고 말해야겠다.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삶을 살아가기도 하니까.
그리고 여기 이런 이야기를 담은 독립 영화 한 편이 있다. 같은 꿈을 꾸던 두 여자의 다른 삶 이야기를 그려낸, 노도현 감독의 영화 스타렉스가 말이다.
영화 <스타렉스> 줄거리
촬영 스텝으로 일하고 있던 추현. 그녀는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배우를 픽업하기 위해 스타렉스를 몰고 간다.
그런 그녀를 발견한 듯 다가오는 한 여자. 두 사람은 차 안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추현은 넉살 좋게 말을 붙이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냉랭한 태도의 여자.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데...
알고 보니 추현이 태운 여자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고 있던 희라.
그녀가 배우를 픽업하려고 갔던 것처럼, 희라는 자신을 픽업하러 올 업소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찬가지로 배우가 잘못 타게 된 차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추현과 희라. 두 사람은 시간도 때울 겸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연기를 전공했던 추현. 그리고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던 희라. 이 두 사람은 연기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가까워진다.
그리고 영상 연기보다 연극 연기가 어렵다며, 영상 연기를 가볍게 보던 희라에게 추현은 본 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의 연기를 지켜보던 희라 역시 대사를 치며, 두 사람의 연기 배틀이 시작된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펼쳐지는 두 여자의 연기.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같은 꿈, 다른 일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같은 꿈을 꾸지만,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두 여자,
아니 어쩌면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연기를 전공하고 여전히 연기자의 꿈을 버리지 못했지만 촬영 스텝으로 일하고 있던 '추현'.
연극동아리에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성매매 업소에서 일해야만 했던 '희라'.
그리고 이들과 달리 원했던 연기라는 분야에서 꿈을 이뤄가고 있는 배우 '이나'.
이 세 사람은 분명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판이하게 달랐다.
먼저 추현은 여전히 배우의 꿈을 놓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연기자로 참여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촬영과 관련된 일에 몸 담고 있고, 처음 본 희라에게 연기 전공을 했다는 이야기를 아쉬운 듯 털어놓는 대목에서 못다 이룬 꿈에 대한 갈증을 보여주었다.
비록 재능도 없고, 이를 뒤집을 만한 비장의 카드도 없음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쉽게 그 꿈을 져버릴 수도 없는, 꿈과 현실 그 중간쯤의 인물이 바로 추현이었다.
반대로 희라는 꿈과 현실 중에 꿈을 아예 포기한, 지극히 현실 지향적 인물로 그려진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 나가야 했던 그녀는, 꿈같은 건 진작에 포기한 것처럼 느껴진다.
매사에 날카롭고, 상대방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에 대한 방증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런 그녀일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 숨겨둔 꿈 하나 정도는 있었다. 연기를 했다는 추현의 말에 전에 없이 흥미를 보이고, 함께 연기를 맞춰 보기도 한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쉽게 입에도 올리지 못한 꿈이라는 단어를, 비슷한 처지, 같은 관심사의 인물 추현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배우라는 같은 꿈을 꾸던 세 사람 중 오직 '이나'만이 제대로 꿈을 실현시켜 나가고 있었을 뿐, 두 사람은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해 왔다.
그리고 결코 영화라는 무대에 초대받지 못했던 추현과 희라는, 어두운 밤 빈 도로를 무대 삼아 신나게 연기를 하며, 간접적으로나마 꿈을 이룬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연극이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마냥 웃을 수 없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길바닥에서 펼쳐지는 B급 연기로 비치겠지만, 그들에게는 이 공간이 예술의 전당이었고,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 현장이었으니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보듬는 영화
이러한 주인공들의 삶은 사실 보통 사람들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꿈꿔왔던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며, 현실적인 이유로, 혹은 재능의 부재로, 원했던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이나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지만, 작품 속 추현과 희라처럼 살아가야만 했던 자신의 삶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위로를 받습니다. 바로 그들이 뱉어내는 대사에서 말이다.
생각보다 괜찮아
이 말은 모든 일이,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아프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런대로 잘 버텨내고 있다는 의미이다.
누구나 정말 모든 것이 다 괜찮을 수는 없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고민 한 두 개는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런대로 살아 낼 만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위로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토해낸다. 하지만 반복되는 그들의 말에 위로를 받을 수 있던 진짜 이유는, 그들이 거추장스러운 거짓 위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원했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서로를 보며, 두 사람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거나, 섣부른 위로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시나리오 속 대사를 통해서만 서로를 위로해 나갈 뿐이다.
그렇게 주고받는 대사 속 두 사람은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유대를 가질 수 있었다.
진정한 위로의 대해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장 쓸 데 없는 위로가 자살할 각오로 살아보라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는 자살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사람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조금도 공감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오는 쉬운 위로의 말이기 때문에.
입에 발린 위로의 말을 하기란 어렵지 않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입에 발린 뻔한 위로 대신, 진심의 한 마디를 전하고 있었다. 결코 당신이 꿈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당신의 삶은 지금 그대로도 의미가 있다고, 지금 당신의 삶도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말이다.
엇갈린 픽업 차량 때문에 펼쳐진 주인공들의 꿈 이야기, 그리고 그 안을 관통하는 담담한 위로가 있던 영화 <스타렉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