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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Apr 15. 2020

<데몰리션> 슬퍼하는 것도 잊어버린 당신을 위해

영화 데몰리션 줄거리 및 리뷰

아내 줄리아와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는 데이비스. 하지만 그는 줄리아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출근길에 사고가 나게 된다.


줄리아는 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데이비스는 병원 자판기에서 초코볼을 뽑아 먹으려는데 이제는 자판기도 말썽.


영화 데몰리션 줄거리


그는 적혀있던 주소로 컴플레인을 하는 편지를 작성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적어 내려가는 데이비스.


며칠 뒤, 장인의 회사로 출근한 데이비스. 그의 비서는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지만 정작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점심 메뉴를 고를 뿐.


그날 점심, 데이비스는 장인인 필과 마주한다. 그리고 줄리아의 보험금으로 장학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히는 필. 


데이비스는 줄리아의 죽음을 별로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관심을 갖는 건 그저 자판기 회사의 보낼 편지를 쓰는 것뿐이었다.


아내가 그토록 고쳐 달라고 부탁했던 냉장고 역시 그녀가 사라진 뒤에야 만져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냉장고를 고치던, 아니 부수던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단순히 전화 한 통이었지만 그는 전화 속 상대인 캐런에게 끌린다. 그래서 전화를 하다 만나기로 약속하는 두 사람. 하지만 도착해보니 그녀는 없다.


그러자 데이비스는 자판기 회사로 직접 쳐들어간다. 물론 그곳에서도 그녀를 볼 수 없었고 이렇게 찾아와서는 안 된다는 전화를 할 뿐이었다.

그런데 통근기차에서 그는 캐런을 알아본다. 그녀는 모른척했지만 데이비스는 그녀가 캐런이라 확신했고, 아예 집까지 찾아간다.


한편, 데이비스는 줄리아의 죽음 이후 이상 행동을 보인다. 전등이며 가전제품이며 뭐든 다 분해해보는 이상한 습관이 생겨 버린 것. 이에 장인은 휴식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 날 저녁, 이번엔 캐런이 그의 집을 찾아온다. 함께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제법 가까워진 듯한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캐런의 아들인 크리스와도 잘 어울리며 이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캐런의 집을 찾은 데이비스는 화장을 하고 있던 크리스를 보게 된다.


그런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는지 데이비스는 방탄조끼를 입고 자신에게 총을 쏴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기분이 풀린 듯한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신나 보이는 데이비스.


저녁엔 크리스가 자신이 즐겨 듣는 노래까지 핸드폰에 다운 받아준다. 이 노래에 완전히 심취한 듯 온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춤을 추는 데이비스.


당연히 장인은 이런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에는 슬퍼하지도 않은 채, 회사 일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한편, 크리스는 같이 공구를 쇼핑하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저 게이일까요?

데이비스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를 넘기려 했지만 크리스는 진지했다.


그런 크리스를 데리고 데이비스는 자신의 집으로 간다. 멀쩡한 창문을 깨고 가구와 가전제품들을 때려 부수는 일을 함께 하게 된 것.


아내를 잃고도 슬픈 기색이란 조금도 없는 데이비스. 그는 우연히 편지를 주고받게 된 캐런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크리스와도 부쩍 가까워지며, 마치 아내가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게다가 아내와 함께 살았던 집까지 박살내기 시작하는데 데이비스는 왜 이런 일을 했던 걸까?


“슬프지 않다”라는 슬픈 말


주인공인 데이비스는 아내의 죽음에도 무감각한 냉혈한처럼 등장한다. 오죽하면 장인어른이 아내를 잃은 그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는 자기 입으로 아내가 죽었지만 슬프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곧장 일상생활로 복귀하며 정말로 그런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자판기의 컴플레인을 걸다 고객서비스센터 직원이었던 캐런과 깊은 관계로 까지 발전했으니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괜찮다’라는 이야기는 정말 괜찮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상한 말 같지만 그는 아내의 죽음을 부정함으로써 애써 괜찮은 척을 해왔던 것.


이 부분이 단적으로 드러났던 건 캐런에게 편지를 쓸 때, 계속해서 줄리아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꼈지만 줄리아는 그의 삶의 꽤나 큰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오히려 더 강하게 줄리아를 부정한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녀가 그립지 않았다고 최면을 걸듯이 자신을 보호해왔던 것.

편지를 쓸 때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릴까 걱정했던 것뿐. 제대로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슬퍼할 수 있었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 후에 다시 정상적인 궤도의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을 외면한 채 달리던 데이비스란 기차는 완전히 탈선을 하고 방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게 바로 캐런.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슬픔을 털어놓을 수 없던 그는 마음 편히 이야기할 상대, 혹은 대나무 숲 같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 상대가 캐런이 된 건 순전히 우연. 그저 자신의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을 찾다가 캐런을 알게 된 것이고, 단순히 컴플레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개인사와 아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즉, 그의 “슬프지 않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너무나 슬픈 상태를 의미한다. 다행히도 그의 편지를 받아 준 캐런은 이해심 깊은 사람이었고, 그녀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그 슬픔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비스가 집을 박살 낸 이유?


그럼 왜 데이비스는 냉장고를 박살내고 집을 깨부순 것일까?


이 이야기는 줄리아의 죽음 후, 장인어른과 독대를 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장인어른은 뭔가를 고치기 위해서는 전부 분해한 뒤 중요한 게 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파괴 행위를 통해, 줄리아의 죽음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자신은 이렇게 고장 나 버렸는지 알고자 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냉장고로 시작한 그의 파괴 행위는 건설 현장, 그리고 끝내 자신의 집까지 완전히 부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과거엔 소중했을 무언가를 깨부수며 그는 아내와 맞닿아 있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컸던 아내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제야 그는 마음 편히 눈물을 흘린다. 이제는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줄 수 없는 상대지만, 그녀의 무한한 사랑을 알게 됨과 동시에 충분히 슬퍼해도 될 만큼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손재주가 좋지 않아 조립이 영 서투르다던 데이비스가 진짜 서툴렀던 건,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크리스와 데이비스


데이비스와 함께 영화의 중심이 되는 건 '크리스'다. 캐런의 아들이었던 크리스는 학교에서 정학을 받고 서슴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불량학생이다.


하지만 크리스가 조금 엇나갔던 건 아마도 아버지의 부재였으리라 생각한다.


어머니 캐런, 그리고 캐런의 애인이었던 ‘칼’도 있었지만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한다.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아이가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 비밀 얘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의지한 건 데이비스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표현하는 게 서투르고, 비밀 이야기를 쌓아 두는 게 익숙한 그를 보며, 크리스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데이비스의 집을 부수는 일에 크리스도 기꺼이 뛰어든다. 성 정체성 때문에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라도 하려는 듯 그는 신나게 집을 때려 부수게 된다.


그렇게 크리스도 성장해간다. 역설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파괴를 통해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


죽음이라는 소재는 우리의 삶과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리고 영화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등장인물을 그린다.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고, 아니 받아들이기는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의 죽음 이후 그녀의 대한 사랑마저 부정했던 남자 데이비스. 그가 슬픔과 제대로 마주하는 과정을 그려냈던 영화 <데몰리션>이었다.


https://youtu.be/TZ2OkbZSE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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