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라이킷 194 댓글 14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수영장에서 제발 싸우지 말아요

누가 수영장 물을 더럽힌 것인가

by 희서 Jan 16. 2025
아래로

 금요일 저녁을 불태웠던 건지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시계의 시침은 느덧 토요일 오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자고 말하기에도 미안 시간.


 "그러지 말고 수영하고 나서 점심을 먹는 게 어때?"


 공복 상태에서 유산소 운동을 해야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면서, 시간이 이렇게 된 마당에 수영하고 외식을 하자 남편이 제안했다. 밥 차리는 수고를 덜 수 있으므로 기분 좋게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강습을 두어 달 받은 후부터 주말마다 우리 가족은 자유 수영을 다니고 있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상일은 없듯, 아니 간혹 있라도 그런 일은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임을 알기에 배운 것 곡차곡 익혀가며 실력을 쌓  내디딘 걸음이었다.

 

 토요일의 공립 수영장 분위기는 평일 오전과는 사뭇 다르다. 밀린 과제를 한꺼번에 풀어놓듯 평일에 짬이 나지 않아 주말 수영에 집중하러 온 사람들과 아이들과 함께 수영하러 온 가족 단위 사람들내는 북적다. 사람 모인 자리 역시나 목소리도 높았다.


 "아니, 왜 애를 치고 가요? 당신보다 수영을 더 잘하는데. 애들은 여기서 수영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어요?"


 내를 쩌렁쩌렁 긁어 소리에 이목이 집중된 그곳엔 성인 남자 둘의 말다툼이 격렬히 벌어지고 있었다. 레인 한복판에 일어난 싸움으로 그 레인을 이용하던 나는 졸지에 수영 중단에 이르렀다. 안전요원이 급하게 와서 중재해 보려 했지만 흥분한 남자들의 말싸움은 욕설과 함께 주먹다짐으로 이어졌다. 싸움의 발단이 된 아이는 울음이 터졌고 울음은 단히 수그러가 보이지 않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이들은 보통 어린이 전용 레인을 이용하지만 간혹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은 성인 레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린이지만 실력이 어린 건 아니니까. 설로 가득 찬 실내 수영장은 순식간에 편한 장소로 변했고 당장 그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운동하려고 왔는데 정신피로해져서 가는구나. 휴우.'

 

 고단한 몸을 첨벙 물 안에 집어넣면,

 유연하지 못한 몹쓸 몸뚱이를 개의치 않고 떠받들어주는 고요한 물. 흐느적거리는 몸짓에 꼬르륵꼬르륵 엄마의 자궁 안처럼 그윽하게 대답해 주는 고마운 물. 누가 이 물더럽히는 것인가. 머리가 지끈거려서 황급히 수영장을 벗어났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는 다양한 생각도 모이겠지. 그 생각이 지극히 개인에 맞춰진 것이라 문제가 되는 거겠지만. 아이가 애초에 어린이 전용 레인에서 수영을 했더라면, 아니 아이를 치고 나갔던 남자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더라면, 아니 아이의 아빠가 그리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 아이 울음 커지 않았겠지. 나와 물과의 안온한 시간은 방해되지 않았겠지. 내 머리가 이렇게 욱신거리지 않았겠지. 수영장이 살벌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


 


 


 "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

  꼬마야, 꼬마야. 자알 가거라."


 "야! 뭐야? 너 때문에 우리 편이 또 졌잖아."


 쌩쌩 휘돌아가는 줄넘기 소리가 무서워 들어가고 나가야 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쳤던 어린 시절모습 가닥가닥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잘하고 싶었는데 잘할 수 없어 친구들의 면박을 들어야 했던 내 모습이 저 우는 아이에게서 언뜻 비쳐 보이는 이유는 뭘까.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은 모습로 울고 있는 저 아이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사진 출처- Pixabay

목요일 연재
이전 04화 70세 내 수영 친구가 사라졌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