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보기로 한 날짜가 다가왔다.
아이들 학교에는 현장학습 체험신청서를 냈고 남편은 휴가를 냈다. 온 가족이 함께 아기를 선보기로 했다. 가족의 역사가 뒤바뀌는 거사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깔끔한 옷으로 입어야 하는데 옷이 변변치 않다. 말하지 못하는 아기지만 어쩌면 부모가 될지도 모르는데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다. 심장이 두근댔다.
쿵쿠우쿵 쿵따~ 닥
평소와 다르게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혹시나 마음에 들면 어쩌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란 사람이 엄마 자격이 있으려나? 아이가 우리 가족을 싫어하면 어쩌지?
아침부터 분주하긴 했지만, 정신은 안드로메다행이어서 당최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아기는 서울 ○○아동복지회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경기지사에 입양신청 하였으나, 위탁모와 아기의 수 감소 그리고 관리 문제로 더 이상 경기도에는 위탁모와 아기가 없다. 그래서 서울에서 선보기가 가능했다.
더운 여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오랜만에 탄 전철 안에서는 시큼한 여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경이 곤두섰다.
도착하니 심장이 KTX급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머리를 부여잡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우리 가족 이외에 작은 아기와 위탁모가 함께였다. 아기가 보이다니, 입양기관에 제대로 오긴했네. 아기는 예쁜 리본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얼굴과 몸이 작았다. 귀여움 자체였다.
“몇 개월이에요?”
“이제 백일이 넘었어요.”
“백일이 넘었으면, 한 4개월쯤 되었나요?”
“네.”
“얘들아, 아기 귀엽지? 너네도 이렇게 작았는데. 크크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직원의 안내로 사무실 한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갔다. 만남의 방인 듯했다. 곧 우리 담당 복지사가 들어왔다.
연이어 똑, 똑, 똑.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던 아기와 위탁모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어리둥절했다. 상황 파악이 쉬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돌이 지난 여자아이를 만나러 온 것인데....
담당 복지사는 이 아이도 한번 보라고 했다.
선 보기할 때 지정된 아기 이외에 다른 아기들을 보기도 하는데 그 아기들은 건강상의 문제가 있어 국내 입양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글을 입양카페에서 읽은 적이 있다. 위탁모와 담당자가 나갔고 엘리베이터 아기와 우리 가족만이 남았다. 이 아기가 해외 입양대상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했다.
“아가~ 너 참 귀엽게 생겼다. 너를 보러 왔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해. 다른 언니를 만나러 왔거든. 너는 왜 이리 작니? ”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4개월이라는데 깃털처럼 가벼웠다. 한 손으로도 아기를 안을 수 있었다. 애잔했다. 신파극 찍나?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우리 집 아이들도 인형처럼 작고 귀여운 아기를 보자 눈이 동그래졌다.
감정표현에 서툰 첫째 아들이 “엄마 나, 심쿵 했어.”라 말했다.
둘째 딸은 말 대신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졸졸 따라다녔다.
남편은 늘 그렇듯 우선 경계를 치며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아기가 우리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쿵!
이런 것이 ‘심쿵~’이라고 하는구나!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아들처럼 심쿵~ 해버렸다. 남편을 만났을 때도 이런 쿵은 없었다. 게다가 이 아기는 우리가 선볼 아기가 아니다. 머리를 흔들었다.
방실방실~
또, 쿵~
아기가 눈을 마주치며 자꾸만 방실방실 웃는다. 그만 우리는 무장 해제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와 아들, 딸의 눈에 하트가 발사되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우리는 다른 아기를 만나러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