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된 아기는 방에서 나갔다. 예정된 선보기가 아니기에 짧은 만남을 가졌다. 5분~10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확히 얼마의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 모른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시간이 제멋대로 흐르는 블랙홀 어디쯤에서 만난것 같았다. 짧고 강렬했다. 심장 언저리가 찌릿거렸다.
“소장님! 방금 만난 아기는 왜 만나게 하신 거죠? 해외에 나갈 아기인가요?”
“뭐 정해진 건 아니에요. 4개월인 아기인데 몸무게가 5kg도 되질 않고, 생모 학력이 중학교 퇴학이라 다른 예비 입양 부모로부터 몇 번 거절당했거든요. 혹시나 해서 이 아기도 함께 보여 드린 거예요.”
“아기가 건강상에 문제가 있나요?”
“몸무게가 작게 나가는 것 말고는 딱히 없어요.”
혹시나 해서란다. 혹시나.
'혹시나'라는 단어가 이렇게 슬픈 단어였던가?
감정에 빠져들 틈도 없이, 우리가 원래 선보기로 한 13개월 아기가 만남의 방으로 들어왔다. 13개월 ○○와의 선보기는 시간을 쭉~ 잡아 늘어트린 것처럼 길었다. 아기와 위탁모, 기관소속 소아과 의사까지 공을 들여 선을 보여주었다. ○○이는 위탁모를 엄마라 불렀다. 낯가림이 시작되어 내가 안아 올리자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위탁모인 '엄마'를 불렀다. 귀가 아팠다. 제대로 안아 보지도 못하고 거의 바로 아기를 내려놓았다. 아기도 낯선 이가 싫은지 위탁모에게만 매달렸다. 위탁모는 곤란해했다. 아기가 자신을 '엄마'라, 남편을 '아빠'라 여긴다 했다. 본인이 키울 수 없는데 서로가 정들어가는 시간이 괴롭다고 말했다.
아기는 잘 걸었고, 잘 먹었다. 4개월 △△이는 아직 걷지도 못하고 분유이외에는 먹지도 못하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소근육 발달도 잘되어 작은 물건도 잘 집었다. 문제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이, 우리 가족의 마음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간은 ○○이와 보내고 있는데 마음은 앞서 본 △△이에게 가 있었다. 방실방실 웃던 △△이가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선보기는 ○○이와 정신은 △△와 함께 했다.
집으로 돌아 온 후, 담당 복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4개월 △△에 관해서만 질문했다. 내 아이가 되든, 안되든 그 아이가 궁금했다.
“혹시, △△를 마음에 두고 계세요?”
“네? 글쎄요. 모르겠어요.”
나는 정말 모르겠다. △△의 생모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출산 한달전에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술을 마셨다. 비염약도 먹었다. 생부는 하룻밤 잔 사이라 아는 정보가 없었다. 기관에서 알려주는 생모의 정보를 들으며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들이 공기 중으로 비눗방울처럼 둥둥 떠다녔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소멸될 것처럼 작아져 버렸다. 남편도 그랬다. 하지만 둘째 딸은 명확했다. 딸은 마트에 가서 △△의 선물을 사자고 했다. 그래서 내복 몇 벌과 양말을 샀다. 선택하지 않더라도 선물은 줄 수 있으니 알았다고 했다. 그날 밤, 딸아이는 양말을 부여잡고 울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 내 동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부탁이에요.” 생각해보자라고 대답했다.
생각해보자.
내가 엄마 될 자격이 있는지, 이 아기의 우주를 우리가 안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일주일 뒤, 나는 담당 복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이로 결정하고 싶어요.”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 담당 복지사는 윗선으로부터 두 명의 아기를 선보인 것에 대해 질책을 받았다고 했다. 복지사는 입양업무를 담당한지 얼마 되지 않아 '혹시나'의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혹시나'가 우리에겐 운명이 되었다. 우주 어딘가에서 삐~~뚜~~~뚜..뚜. 신호를 보내 복지사를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우주는 너를 만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