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쓸모

선 안의 사람이 된 선

by 미르

“엄마! 아빠랑 결혼할 거야.”


6살, 선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선언했다.


“안돼! 아빠는 엄마랑 이미 결혼했거든.”

“뭐라고?”


아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푸~ 쉰다.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이거 봐~ 엄마랑 아빠 결혼사진이지?”


서랍 속에 쳐 박아둔 결혼사진을 굳이 꺼내와 선에게 내민다.


“믿을 수 없어. 나는 아빠랑 결혼해야 한다고. 엄마가 아니고 나랑.”


선이 엉엉 울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방에 있는 아빠를 찾아가 안긴다.


“아빠 말해 봐! 나랑 결혼할 거지? 그렇다고 말해줘.”

“아빠 어디가 좋아?”


남편은 실실 웃으며 선에게 묻는다.


“다 좋아! 아빠 똥도 좋아.”

“에잇! 똥은 냄새나지.”

“아니, 아빠 똥은 냄새도 안 나고 예뻐?”

"언제 봤어?"


결혼에서 똥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이어졌다. 선은 아빠를 좋아한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가? 아빠만큼 엄마도 좋아해 주지. 칫~ 질투도 나고 약도 오른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배신자 같으니라고.


나는 선과의 첫 만남에서 풍덩~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한결같진 않다. 오르락내리락, 나는 좀 그런 사람이다.


반면 남편과 선은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남편의 인간관계는 단순하다. 남편의 마음 안에 선 하나를 그어놓고서는 선 안의 사람과 선 밖의 사람으로 구분한다. 선 안의 사람은 목숨 걸고 지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지만 선 밖의 사람에겐 기대도 실망도 없다. 그에겐 선 밖의 사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편은 선과 첫 만남에서 경계했다. 그는 처음에는 누구든 경계한다. 선 안으로 넣어주지 않을 테다, 나는 쉬운 사람이 아니다, 뭐 그런 느낌으로.


더위가 한풀 꺾인 8월의 마지막 주에 선이 집으로 왔다. 남편은 나를 돕기 위해 선을 돌봤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였고, 아기를 안아 재웠다. 그러면서 눈을 끊임없이 맞추었다. 선의 시간을 공유했고, 아파할 때 애를 태웠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들었다. 어느새 선은 남편의 선 안으로 들어갔다. 부지불식간에.

선이 기어 다닐 무렵 TV 다이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순간이었다. 언제 tv 다이에 올라갔지, 라고 생각이 든 순간 쿵~하고 떨어졌다. 선의 입 안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피를 본 남편은 혼비백산이 되어 선을 끌어안고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병원으로 가는 시간은 고작 몇 십분이었는데 누군가 엿가락처럼 시간을 길게 늘어트린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도착한 병원에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간단한 조치를 했다. 남편은 선을 끌어안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아빠가 미안해, 이제부터 너를 기필코 지켜줄게’라고 약속했다.


선은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 불안감이 많은 나는 선이 놀기 위해 간 놀이터에서조차 하지 마, 안돼, 라고 소리치며 아이를 제지하기 바쁘다. 잽싸게 종횡무진하는 아이를 쫓아다니기에 나는 늙고 느려 행동보다는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남편이 선의 하원을 맡아 놀이터에서 한 시간 이상 놀아준다. 남편은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선이 잽싸게 어디를 달려가든 같은 속도로 함께 달린다. 놀이터 단골 아이들에게 ‘그네 아저씨’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네 타기를 좋아하는 선의 그네를 밀어주다 놀이터 단골 아이들 그네도 밀어주며 친구가 된 것이다. 남편과 친구가 된 아이들은 선을 챙겨주며 함께 논다. 남편이 일이 있어 놀이터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그의 초딩 친구들은 슬퍼한다. “아저씨 어디 아파요? 아저씨 안 오면 그네는 누가 밀어줘요? 힝~”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가족이 캠핑도 간다. 캠핑하는 인간이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다고 말했던 남편이었다. 시간과 노동을 들여 텐트와 캠핑 장비를 힘들여 설치하고 겨우 하루, 이틀을 보내고 다시 캠핑 장비를 철수하는, 캠핑은 비효율적이며 한심한 여행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캠핑을 한다. 선을 위해서다. 에너지 넘치는 선에게 집은 좁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남편은 변하고 있다. 그를 변화시키는 건 사랑이다. 선 안으로 들어 온 선을 향한 사랑.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은 동물도 느낀다. 아이라하더라도 사람인이상 그런 사랑은 눈치챈다. 아빠는 선을 사랑한다. 선도 그런 아빠를 사랑한다. 무조건적 사랑을 주고받는다. 첫째, 둘째를 낳고 기를 때 남편은 바빴다. 제대로 놀아주지도, 놀러 가지도 못했다. 아빠로서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이 그에겐 있다. 그때는 아이들이 놀아달라 했을 때, 귀찮게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 사춘기인 첫째와 둘째 아이에게 오히려 남편이 놀아달라해도 친구들과 놀러나가기 바쁘다. 남편은 이제 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짧고 한시적인지. 그래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선과 함께한다.


“선아 네가 결혼할 나이가 되면 아빠는 늙어서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괜찮을까?”

“뭐? 할아버지가 된다고? 칫~ 아니야 아빠는 왕자고 나는 공주라서 나이도 안 먹어.”

“ㅎ홍흐홍~ 너는 더 젊고 잘생긴 청년이랑 결혼해. 아빠 말고.”

“안돼. 아빠는 나를 사랑해주는 멋진 남자야. 그러니까 결혼하자.”

“녹음할 거다. 그 생각 변하지 마!”

“안 변해. 영원히. 아빠를 향한 마음이 어떻게 변하냐?”


남편은 실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늙고 볼품 없는 남자를 왕자라 생각해주는 이 아가씨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남편의 선을 향한 눈빛은 하트가 퐁퐁이다. 지금을 즐겨라. 사춘기가 되면 변해버릴 사랑이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