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동딸로 키우기로 한다.

딸 하나, 외동딸.

by 한여름


외동딸, 딸 하나만 키우기로 우리는 결정했다.


누군가는 일부러 한 명만 계획하고 한 명만 낳는세대라하고, 혹자는 여자는 폐경이 올 때까지 둘째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웃겨서 소리 내 웃었지만, 왠지 내가 그러고 있을 것 같아 이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결혼을 미루는 세대 또는 결혼 적령기가 늦어진 세대. 요즘은, 아이를 낳지 않는 세대 또는 한 명만 낳기를 원하는 세대. 라 말한다. 뭐 그런 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요즘이 어떤 세대이건 우리가 또 내가 어떤 가정을 이루고 싶은가, 그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 늘 막연히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다. 둘은 아쉽고 넷은 많고 셋이 딱 좋겠다 싶었다. 아이들로 복작거리는 것이 좋았고, 아이들이 서로 부대끼며 돈독하고 정스럽게 자라기를 바랐다. 서로 다투겠지, 자라면서 좋은 날보다 미워하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조용한 날보다 소란스러운 날이 더 많을 테고, 나는 나긋나긋하기보다 어쩌면 정신없는 잔소리쟁이 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을 다 알면서도 그랬다. 셋이 좋겠다고.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부터는 '하나만 낳아보고 이야기해'라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네가 낳아보지 않아서 그래, 셋은 아니야, 하나 낳아보고 다시 말하자.. 주변의 그런 말들에도 마냥 그러고 싶었다. 가족계획이란 혼자 세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내가 딸을 외동으로 키우게 될지는, 그런 결정을 스스로 내리게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렵다는 것. 남들에겐 행복으로 채워질 10달이, 내게는 미치도록 두렵다는 것.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봐 온 남편은, 그러자고 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다시 그 시간을 겪겠다고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러자고.


하나만 키우기로 결정하고도,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내가 한 아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않을까? 형제 없이 자랄 아이가 혼자 남겨진다면 어쩌나. 역시,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수만 가지의 두려움과 걱정과 고민들이 산적해 있었다. 한 때는 잠시지만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을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아이를 끝내 낳았고, 한 아이와 매일 투닥대며 살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완벽한 기적이고, 충만한 기쁨이며, 완성이다.


남편은 그토록 많은 아픔을 겪고도 아이를 낳은 나를 존경한다고 말해주었고, 나도 나 자신이 언제까지고 대견할 것이다. 물론 안쓰럽고 애처롭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두 번째 임신’, ‘두 번째 아이’를 고민했다. 다신 못할 거면서도 고민할 수밖에 없음은 ‘형제’라는 이름이 주는 단단한 고리, 탄탄한 결속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의 동생에게 느끼는 사랑, 안식, 의지 같은 것들은 가까운 타인에게 느끼는 것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이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 깊은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고 함께 아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내 동생뿐이라고. 내가 아는 부모님에 대한 모든 추억, 사건, 일상, 습관 같은 것을 고스란히 알고 기억하는 사람. 부모님과 보낸 내 모든 인생 속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 그것이 형제인 것이다.


먼 훗날,

‘우리 그때 그랬잖아, 엄마가 이랬잖아.’
‘우리 거기 살 때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잖아. 아빠가 그때 참 어땠는데. 엄마가 그때 참 어땠는데.’

‘난 이럴 때 엄마가 참 좋았어. 난 이럴 때 아빠가 참 좋더라.’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 나의 부모님이 오직 나만의 부모님이 아니어서 감사한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부모님께 사무치게 감사하게 되는 순간 말이다. 동생은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다.


근래 장례식을 다녀오면 남겨진 사람을 평소보다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 아이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혼자 있을 모습이 아른거려 마음이 쿡쿡 쑤신다. 고작 2살 아이를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준 작가의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모두 고아이거나 고아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염려들은 나에게는 소용없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유산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나이는 꼬박꼬박 먹어서 서른여덟이고, 나이 많은 내게 육아는 그다지도 녹록지가 않다. 다만, 그저 우리의 결정이 후회되지 않기를, 그래도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한 아이를 오롯이 온전히 올곧음으로 길러낼 수 있기를 또 하나 바라본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우리의 결심은 흔들리고 흔들리지만 조금 더 단단하게 부여잡아본다.


딸 하나, 외동딸.
우리는 외동딸로 기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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