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주세요.

빈틈없는 시간을 지나며.

by 한여름

아이를 낳고 1년 하고도 6개월.

대부분의 엄마 사람이 그러하듯 매일을 아이와 함께 한다. 나의 매시간을, 모든 날을 공유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는 순간을 시작으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누워서 뒹굴고 하물며 화장실을 가고, 샤워를 할 때에도 함께이다. 함께 산 지 더 오래인 남편보다 더 가까운 사이. 더 많은 걸 함께하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팔에 안겨 나의 품으로 전해지던 순간으로부터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나의 모든 시간은 아이와 공유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왔다.

'혼자'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토록 원했던 아이와 내 시간을 함께 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온전한 감사의 제목일 수밖에. 하지만 아이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겪어보지 않았던 때에는 미처 알지 못한다. 아이와의 시간은 그저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닌, 내 한 몸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거저 흘러간다 해도 흐르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하루와 아이의 하루는 그 의미가 한참은 다르기에 그 시간을 텅 비워 두는 것에 대해 엄마 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지곤 하므로.

진짜 힘이 들 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을 때. 나 언제쯤 친구 만나러 갈 수 있어? 나 언제쯤 영화 보러 갈 수 있어? 나 언제쯤 술 마시고 놀다 올 수 있어? 나 언제쯤 공연 보러 갈 수 있어? 나 언제쯤 미술관 갈 수 있어?

좋아하는 것들을 숱하게 물을 수 있을 테지만 다 차치하고
“나 언제 혼자 있을 수 있어?”
딱 한 가지를 묻는다.

아이를 낳기 전, 이미 육아에 흠뻑 몸을 담그고 있던 친구는 내게 “좋겠다. 혼자 있어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때 친구의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진한 농도의 간절함이었는지를 말이다. ‘혼자’를 잃어보니 알 것도 같다.

참 이상하다. 혼자 일 때에는 이 외로움에서 누구라도 건져 주기를 바라면서 막상 적당한 ‘혼자’가 주어지지 않을 때에는 ‘난 내 시간이 필요해’라고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마음도 ‘함께’를 누리고 있음에 느끼는 오만한 투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이의 가치’를 잘 알면서도 ‘혼자의 가치’또한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시간이며 인간이 꼭 누려야만 하는 가치로운 시간이다. 어쩌면 지금의 시간은 그것을 알아가기 위한 인간의 고행 중 한 코스를 지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일 때 우리는 온전한 내가 된다. 누구의 무엇이 아닌 그저 나만의 내가 된다. 그 홀로 된 시간에 온전히 나를 담그고 그저 고요하고 안온한 시간을 가진다. 내가 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내가 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아직은 혼자일 수 없음을 받아 들 일 수밖에 없다. 아이는 아직 어리며 나와 함께이지 않으면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없다. 우리는 아이와의 삶에서 가장 빈틈없는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아이와의 이 ‘빈틈없는 관계’가 언젠가는 조금씩 작은 틈을 만들어 갈 것이고 그때가 되어서야 이 시간을 그리워 못 견딜 순간이 분명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저 틈틈이 주어지는 짧은 ‘혼자의 시간’을 더욱 달달하게 애틋하게 보내며 그 시간으로 하루를 충전한다. 혼자인 시간이 얼마나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지를 ‘혼자’가 얼마나 가치로운지를 사무치게 느끼면서.








때때로 혼자가 되세요.
혼자 걸으세요.
혼자 누우세요.
혼자 보고 혼자 들으세요.
막상 혼자가 되면 무얼 해야 할지 무얼 할 수 있는지 생각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테지만,
가끔은,
나에게 ‘혼자’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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