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근사하게.
아이를 재우고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다 사랑이와 추성훈이 나오는 장면에서 채널을 멈추었다. '아직 사랑이가 나오는 프로가 있네' 하고 신기한 마음에
멈춘 것이다. 자세히 보니 이미 오래전 방영한 듯한 ‘추블리가 떴다’라는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에서 사랑이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토록 작던 사랑이는 이제 제법 많이 커 보였다. 엄마를 닮았는지 길쭉하게 큰 키덕에 더욱 '훌쩍 컸네.' 싶었다.
내가 멈춘 장면은 사랑이와 아빠인 추성훈이 놀이터에서 함께 노는 모습이었는데 둘이 모래를 만지며 재미난 놀이를 하다 게임에서 진 사랑이가 승부욕을 참지 못하고 모래를 던지는 장면이었다. 소리를 지르며 울고 화를 내기도 했다. 티브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나는 놀란 나머지 채널을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랑이의 모습이 마치 내 딸의 모습이라도 되는냥 속이 상했다.
추성훈은 의외로 단호했다. 그렇게 표현하는 건 안된다고 아이에게 정확하게 말한 후 혼자 두었다. 아이는 계속 울었지만 절대 달래주지 않았다.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기다릴 테니 사과하고 싶으면 아빠에게 오라고 했다. 그리곤 아이에게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 참 좋은 아빠라고,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다.
실은 내 아이가 상처 받을까 봐, 속된 말로 아이 기죽을까 봐 그리고 밖이니까 라는 이유를 빌어 아이의 그릇된 행동을 물 흐르듯 넘겨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의 기분을 대충 맞춰주어 상황을 좋게 좋게 그리고 되도록 오래 그 기분에 머물지 않게 하고 빠르게 상황을 넘기는 것이 오히려 좋은 방향이라고 믿는 부모들도 꽤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잘못된 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예의 없는 행동을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알려주고 바로잡아 줄 사람은 '오직 부모'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바르게 키우는 것' 또한 아이를 사랑하는 올바른 한 방향이라고 믿는다. 물론 방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에게 많은 고뇌를 안겨주지만 말이다.
제목조차 잘 몰랐던 사랑이네 가족이 나오는 프로에서 나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추성훈의 훈육, 그다음 장면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랑이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그녀는 소침해진 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한번 틀리고 기억하는 거야, 잘됐지 않아?”
자막으로 뜬 그 한 문장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한마디 었다. 가슴에 쿡하고 와 박히는 한마디이기도 했다.
그렇다 모두들 '처음'엔 틀린다. 아이도 어른도 처음의 모자람은 누구나 다 비슷하다. 그때의 틀림은 배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이의 수많은 '처음'과 '틀림'은 '배움의 기회'가 된다는 그 분명한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하지만 아이를 기를 때엔 더더욱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에게는 대부분이 다 처음이라는 것과 처음엔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틀림은 아이를 배우게 하고, 틀림을 통한 배움으로 아이는 한층 단단하게 영글어 갈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잘됐지 않아?"라고 말하다니, 틀림을 '잘된 일'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틀렸기 때문에 넌 배울 수 있었어, 잘된 일이야."라고 말한 것이다. 오히려 그녀의 눈빛과 말투는 마치 "정말 멋진 일이야, 굉장해."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틀리고 기억하고 배운다고.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그리고 오늘의 틀림을 기억하라고. 아이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비난도 담지 않은 채, 아이의 잘못을 꾸짖기 보다 '넌 오늘 틀림으로 또 하나를 배웠네. 정말 잘됐어."라고 말하는 엄마라니. 정말 따뜻하고 근사하다.
기회가 온다면 나의 딸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서 핸드폰의 메모장을 켜 생각나는 대로 그녀의 말을 메모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조금 덜 실수하며 하루를 보낼까 하는 생각으로 온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지독히도 서툴러서, 엄마라는 자리가 아직도 낯설어서 아이에게 나의 밑바닥을 고스란히 내 보이며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시간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기 위해 사유하고 또 사유한다.
이토록 소중한 시절을 건강하게 보내고 싶다. 서로에게 좋은 것만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와 진정으로 교감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다. 무딘 칼로 무를 자르듯 툭툭 잘라두고 싶지 않다. 말랑말랑하게 다듬어 오물조물 귀여운 모습으로 이 시간들을 빚어두고 싶다. 그러한 지금의 나에게 "다른 사람들도 한번 틀리고 기억하는 거야, 잘됐지 않아?"라는 문장은 오늘의 나를 일깨우는 한 문장이 되어주었다.
나도 내 아이의 인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한마디 정도는 남기고 싶다. 바라건대 언젠가 그런 시간이 온다면, 아니 먼 훗날 어딘가에는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