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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Dec 18. 2020

부모의 다툼, 아이의 마음구석엔 비가 내린다.

진짜 어른이 되어야지.


명절이라는 것이 정말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는 것을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해를 거듭하며 매년 일깨우게 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명절 즈음에는 이상하게도 그냥 넘어갈 법한 일들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날카로워지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일까. 사실 그다지 명절이 고되지 않은 시댁에 시집와서 명절이라고 특별히 애쓴 적도 없음에도 '명절'이라는 이름이 주는 짜증스러움이 있다.


이번 추석엔 정말 일이라는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명절 당일 아버님을 우리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다지 명절 음식 같은 걸 해야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점심식사를 하게 되니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명절 이틀 전에 결정이 되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결국 기댈 곳은 친정엄마뿐이었다. 그렇게 친정엄마에게 갈비를 언제 준비하는지를 넌지시 물으니 왜 그러냐는 답이 돌아왔다. 상황을 이야기하자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미리 몇 인분 재워주겠다고 했다. 딸의 집에 시아버지가 온다는 것이 마음이 쓰였는지 밑반찬까지 해서 갈비와 함께 보내셨다. 자주 해주시는 도라지 오징어무침은 무쳐놓으면 물이 많이 나서 맛이 없고 보기도 안 좋다면서 초장과 재료를 따로따로 포장해 보내왔다. 엄마의 수고스러움이 엄마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나의 일에 엄마의 수고를 대신 얹는 것이 역시나 나쁜 딸이네 싶은 마음이 들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그렇게 부랴부랴 준비한 명절 아침이 되었다. 분주하게 집을 쓸고 닦았다. 매일 아침 청소기를 돌리지만 손님이 온다고 생각하면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어른의 방문에 ‘아이 키우는 집이라 이해해주시겠지’ 하고 넘길 성격이 못되었다.


요리를 시작했다. 엄마가 갈비찜에 넣을 채소까지 다 썰어보내주셨지만 그래도 할 일이 많았다. 미역국을 끓이고 갈비찜을 올렸다. 도라지 오징어무침을 장을 부어 무치고, 새 밥을 했다. 그리곤 그릇장 높은 곳에 둔 아이를 낳고서는 잘 쓰지 않던 묵직하고 이쁜 도자기 그릇들을 차곡차곡 꺼냈다. 밥그릇 국그릇 메인 접시 오복한 찜그릇 그리고 엄마가 보내주신 나물반찬들을 꺼내 놓을 작은 접시까지 나름 신경 써서 꺼내 두었다. 뭔가 부족해 보여 계란말이를 하나 할까 하고 계란을 풀고 당근을 잘게 다지는 데 아버님을 모시러 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께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시겠다고 하셨단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미역국과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익고 있는 갈비찜을 바라보았다. 아일랜드 식탁 위로 가지런히 놓인 도자기 그릇과 이제 막 하얀 김을 내뿜으며 소리 내기 시작하는 밥솥도 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은 내게 밥을 먼저 챙겨 먹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푹 익은 미역국, 보들보들한 갈비찜, 그리고 엄마가 담근 새 김치는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밥과 국을 뜨고 혼자서 진수성찬인 점심을 먹고 앉았는데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아이와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잊힐 만큼 서러워서 울어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계속 마음에 남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남편에게 어떤 말이 듣고 싶어 메시지를 보냈던 걸까. 메시지를 보내고도 한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결국 남편과 다투었고 냉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남편이 꼴 도보기 싫어졌고, 화가 난 나보다 더 화가 나 보이는 남편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문제는 우리는 이제 둘 뿐이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는 방에 드러누운 엄마와 거실에 앉은 아빠 사이를 오가며 놀았다. 그런데 아이의 음성이 평소보다 훨씬 컸다. 큰소리로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히히 히히 소리를 내며 이방 저 방을 다녔다. 놀이를 하면서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19개월의 아이가 무슨 말이 든 아무 소리든 내며 온 집을 시끄럽게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아마도 아이의 불안이 담긴 과잉행동일 것이다.


집안을 시끄럽게 누비고 다니던 아이는 드러누워 있는 나의 몸 위로 올라와 꼭 안아 주었다. 눈물이 났다. 아이의 포옹에 울컥했다. 정말 힘을 주어 몇 번이나 꼭 안아주는 그 단호함이 나를 위로했다. "고마워. 엄마 안아줘서 엄마가 괜찮아졌어."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몇 번이고 그렇게 포옹을 해주었다.


아이가 눈치를 보고 있구나. 전과 다른 엄마 아빠의 모습을 이 날카로운 고요함을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웃음소리로 조금씩 부수어내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화가 난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미안한 마음대로 몰려와 이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에게는 이 순간이 얼마나 지옥 같을까. 아이에겐 엄마 아빠의 다툼이 전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지금 우리 아이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큰소리를 내며 다투지는 않았다 하더라도이 차가움을 이 날카로움을 아이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밀려든다.


부모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우리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이에게만은 절대적으로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 아이에게 어떻게 비칠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섬세하게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


아이 내면은 무르고 물러서 이제 막 영글어가는 가녀린 열매 같아서, 막 피어난 꽃의 겹겹, 흩날리고 마는 꽃잎 같아서 비도 해도 조심히, 바람도 벌레도 조심히 흠이 없도록 보살펴 주어야 하는 구석이 분명 있다는 것을 어른인 우리가 그저 지나쳐서는 안 된다. 어른이기에 제멋대로 구는 것이 아닌 절제하고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기에 이제는 진정으로 어른스러워야 하고 어른다워야 한다. 더 이상 늘 철없는 그때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자리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늘 아이의 흔들리는 눈빛과 혼란스러워 보이는 뒷모습 그리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파한다. 그렇게   번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한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똑똑히 알아야 . 진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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