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삶도 포동포동하게.
체중계가 끝을 모르고 내려가는 중이다. 어쩌려고 이러는지 임신 전 몸무게에서 6킬로가 빠졌다. 곧 앞자리가 바뀔 지경이다. 출산 전 몸무게는 이미 조리원에서 대부분 빠졌고, 2킬로 정도를 남기고 집으로 왔는데 육아를 시작하며 8킬로가 빠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이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다. 며칠 전 독감 예방 접종을 하러 병원에 가서 체중계에 아이를 올렸다가 깜짝 놀랐다. 11.8킬로.
아이의 몸무게가 정체기라 몇 주는 체중을 재지 않았는데 그새 늘어있었다. 어쩐지 허벅지가 좀 더 포동 하다 했더니 그새 살이 이쁘게도 찌고 있었다. 아이의 몸무게는 엄마사랑의 척도인 듯했다. ‘아 내가 잘 먹이고 있구나 아이가 잘 자라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게 하는 작은 보답 같은 것이었다. 아이가 살이 찌면 내 마음에도 같이 살이 쪘다.
그런데 실상은 자꾸만 말라가고 있었다. 사실 무언가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졸린 몸을 이끌어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나면 잠이 덜 깨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물을 한잔 마시고 조금 쉬다 보면 아침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내가 서 있다. 청소를 마치고 아이의 아침식사 그릇도 정리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아이는 내 발 밑에서 책을 한 권 들고 서 있다. 그렇게 책을 몇 권 읽고 아침 산책까지 다녀오면 점심시간이 코앞이다. 부랴부랴 아이의 점심을 챙겨주고 나야만 나의 첫 끼니를 챙길 시간이다. 그러나 늘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서 있곤 했다. 뭘 먹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다. 냉장고가 텅 비어있는 날도 전날 장을 보고 가득 찬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는 이유는 아마도 입맛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그렇게도 많이 움직이는데 마땅히 먹고 싶은 것도 딱히 떠오르는 음식도 없다. 그저 의무적으로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를 할 뿐. 이 것 저것 입에 넣어 주자 정도로 식사를 마무리해버린다. 하도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서 인지 이젠 한 끼 정도는 굶어도 배가 고프지 조차 않는다. 남편과 다투기라도 하는 날에는 더욱 예민해져서 아무것도 먹히질 않았다. 아이는 꼬박꼬박 먹이면서 삼시세끼로도 모자라 간식에 과일까지 챙겨가며 먹이는 일에 정성을 쏟으면서 정작 나는 하찮게 대한 것이다.
늘 입던 바지사이즈는 결혼을 하고 군살과 나잇살이 붙고 나니 버클이 잠기지 않아 처분했건만 이제는 버클을 채워도 그 안에 윗옷을 욱여넣어도 허리에 맞는 바지가 하나도 없다. 항상 엉덩이가 제법 있는 편이라 신축성이 없는 핏 되는 스커트를 입으면 어김없이 엉덩이 이음새 부분이 뜯어져 수선을 맡기곤 했는데 이젠 스커트가 좌우로 돌아가 걸을 때마다 확인해야 스커트의 앞뒤가 바뀌는 당혹스러움을 면 할 수 있다. 거기에 더불어 모유수유 후 가슴은 납작 가슴에 뱃살은 없지만 말랑말랑 흐믈흐믈 그야말로 볼품없는 몸의 향연이다.
나의 몸은 말라가고 나의 젊음도 말라가고 어느새 나의 삶이 바짝 메말라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전에 나는 어떻게 살았었는지 모두 잊혔다. 나의 시간은 오로지 아이의 기상과 밥시간 아이의 잠시간에만 맞춰져 있다. 그저 그렇게 움직이며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낸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로 인해 즐거울 때가 많았고 엄마인 내가 좋았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샤워를 한 후 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서 한참을 울었더랬다. 그게 그저 출산을 한 후의 몸의 변화가 낯설어서 인지, 내가 너무 늙은 것 같아 서글퍼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여자가 아닌 것 같아 불쌍해서 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도 서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모두 내가 원한 일이었고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슬픈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자꾸만 말라가는 내 몸이 가끔 무섭기도 하다. 혹시 큰 병이라도 든 건 아닐까 하는 맘이 들기도 하지만 친구의 말처럼 “네가 안 먹는데 어떻게 살이 찌니.” 가 정답일지도 모른다.
나를 챙기지 않고 나를 돌보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누군가 나를 챙기겠지, 누군가 나를 돌보겠지, 누군가 나를 사랑하겠지 하고 안일한 마음을 나에게 주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 내가 가장 아껴야 하는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며 내가 가장 살 찌워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그것이 육신의 살이든 영혼의 살이든 아니면 마음이나 인생의 살이든 나 자신을 살 찌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나는 어쩌면 가장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함께 할 때에는 더없이 소중하고 찬란한 시절의 한 조각 일 지 모르지만 나 자신으로써는 가장 초라하고 가장 고단한 시절일 것이다. 누군가를 한없이 챙김으로 나를 희생하는 이 시간이 훗날 나 자신으로서도 초라하지만은 않도록 나를 살 찌워야겠다. 비쩍 마른 내 몸과 바짝 말라버린 내 삶을 다시 포동포동하게 만들어야겠다.
나를 더 이상 우울한 채로 두지 않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