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와 병명이 없는 우울.
산후우울증은 산 후 언제까지를 포괄하는 단어일까?
산후우울증이라고 하는 그 우울감을 다들 어느 시점에 느끼는 걸까?
출산을 하고 처음으로 ‘우울감’이라는 것을 느낀 때는 산후조리원에서였다. 출산을 하기 전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여자들이 겪는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호르몬 작용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막연히 아이를 기르며 너무 힘이 들고 지쳐서 산후우울증이 온다고 생각했지 조리원 샤워부스 안에서 그 우울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조리원에 도착하자 먼저 신생아실에 아이를 맡겼다. 2박 3일간의 모자동실의 고됨에서 잠시 벗어남을 만끽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인 고단한 몸을 씻는 일이었다. 병원에서 제대로 씻지 못해 찌든 몸을 씻는 것이 가장 먼저였다. 그렇게 배정된 방의 욕실에 들어서 옷을 벗고 거울을 보다 우울감이 왔다. ‘아, 내 몸이 이렇게 변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주룩 흘렀다. 축 늘어진 뱃살과 처진 엉덩이, 거무튀튀한 유두와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임신선, 거기다 출산을 하느라 지쳐버린 몰골을 보고는 이게 사람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게 여자인가 싶기도 했다. 샤워기를 통해 흐르는 따뜻하게 데워진 물이 나의 언 몸을 녹여주어서 정말 개운하고 나른하고 따스했음에도 그럼에도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나의 몸을 이토록 사랑하고 있었나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다지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여자로서 자기 몸에 콤플렉스 하나 가지지 않은 여자가 없을 것이며 뭐가 그리 멋들어진 몸매라고 애정을 쏟고 사랑해 주었을까. 그런데도 그 감정은 잊히지가 않는 상실의 감정이었다. 소중하고 고유한 것을 잃은 상실. 그렇게 출산 후 첫 우울감은 나의 달라진 몸을 발견하면서 였다.
그 첫 우울감은 꾀 오래 나를 점령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은 결코 출산 전, 아니 임신 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아이의 젖먹이 시절에 많이 겪는다고 알아왔다. 젖을 물리고 있거나 유축을 하다 보면 젖소가 된 기분이라고 흔히들 말하곤 한다. 그 과정에서 굉장한 자괴감에 빠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 나에게는 우울해할 틈이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일들이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라서 언제나 정신이 없었고, 수면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늘 멍해져 있었다. 딱 나사 하나 빠진 사람 같았다. 그땐 우울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곤하고 너무 바쁘고 너무 몽롱했다. 그런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이미 나는 틈만 나면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러다 아이의 18개월이 넘어서면서부터 그러니까 딱 1년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우울감이 있었다. 아이를 분명 나 자신보다 아낀다. 너무 소중하고 매일 애틋하고 하는 짓은 날로 사랑스러워져서 “이뻐 죽겠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20개월이 된 딸아이는 갖은 사랑스러운 몸짓을 터득해 나갔고,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나비 같은 몸짓으로 춤을 춘다. 그리하는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모습을 보며 어찌 마음에 사랑이 차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우울감은 찾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를 재우고 나면 가끔 울고, 혼자 술을 마시고,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감정에 휩싸인다. 때로는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훅 올라온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우울한지도 모른다.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나보다 다른 이를 더 아낀다는 것에 대한 우울감. 그것일지도 모른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면 되었던 나를 내 인생 가장 앞에 두고 살아온 36년간의 시간이 없었던 시간처럼 잊히고 누군가를 향한 맹목적이며 끈끈한 사랑이 시작되어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볼 수 도 없게 되어버린 지금이 문득문득 나를 우울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우울을 ‘산후우울증’이라고 쓰려다 문득 궁금해졌다. 출산 한지 이미 1년 6개월이나 지난 후 느끼는 이 우울감에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될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가 산 후 우울증일까? 물론 출산 후인 것은 변함이 없으니 아이를 낳은 이후에 느끼는 우울감은 모두 산후우울증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산후에 호르몬 변화가 극심한 그 구간에만 포함되는 말인지 하는 것이다.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너무 민망한 산후 1년 6개월 뒤의 우울. 이 우울함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
그다지 호르몬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우울. 아이를 기르며 고되고 지쳐서 그저 몸의 피로로 인한 우울도 아닌 듯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 우울감.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를 기르면서 감기처럼 달고 사는 이 우울감을 이대로 두어도 좋은 걸까. 정말 나는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그저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그저 인간으로 조금 더 성숙하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면 되는 걸까.
나의 쓰임이 내 인생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이 시절을 기꺼이 기쁨으로 지나고 싶은데, 문득문득 나를 두드리는 이 우울을 모른 체해도 되는 걸까.
이토록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우울하다는 것이 미안해서 절대 아이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은 이 우울감, 이토록 부끄러운 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