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위로
집을 뛰쳐나왔다.
새벽 1시 50분을 넘어선 시간.
아이는 오늘따라 유난히 깊이 잠들지 못하는 듯했다. 낮에 한 산책 때문에 다리가 아픈 건지, 조그맣게 쏙 올라오던 이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자는 듯하다 깨서 울고 다시 잠들고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텀이었다. 아이의 밤잠을 재우고 나면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엄마의 혼자 시간은 와르르 무너졌다. 잠시 책을 읽다가 아이의 부름의 소리에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곤이 자는 모습을 보고 다시 방을 나온다. 그러나 그 시간 텀은 갈수록 짧아졌다. 잠에서 깨 “엄마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 그 소리가 안쓰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다시 들어가 아이를 달래고 재운다. 옆에서 곤이 들리는 아이의 숨소리가 아닌 남편의 숨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훨씬 얄미웠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어째서 내게만 들리는 걸까.
아이는 깨서 자꾸만 울었다. 울음소리는 갈수록 앙칼지고 거세졌다. 기저귀가 젖는 걸 유독 싫어하는 아이라 혹시나 싶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한참을 토닥이고 서야 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얼마나 자 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러나 또다시 들리는 울음소리. 그렇게 아이를 달래려 재우려 해도 달래 지지도 잠들지도 않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데 숨쉬기가 답답했다.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숨을 깊게 쉬어보는데 반만 쉬어지는 느낌, 반쯤만 들이마셔지는 느낌이 들어서 갑갑했다. 멍하니 앉아 숨쉬기를 하며 한 손으로는 아이를 토닥이며 다시 재운다.
그렇게 또 거실로 나왔다. 갑갑함이 가시지를 않았다. 언제 다시 방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외투를 집어 들었다.
현관문을 열자 바깥공기가 살짝 스며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서자마자 폐 안 깊숙이 서늘하고 맑은 공기가 들어왔다. 사람이 없어 마스크를 살짝 내려보았다. 찬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맑은 공기도, 가을의 냄새도 밤 깊은 새벽의 기운도 어둑한 밤도 가로등 불빛도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도 지나가는 차 소리도 하늘의 별도 달도 모두 내게로 왔다.
심호흡을 한다.
그 모두를 내 안으로 마신다.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이 시간뿐이라니 서글퍼졌다. 혼자서 오롯이 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이 시간뿐이라는 것이, 이제야 겨우 아이를 재웠다니. 아니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지만.
실은 밤을 무서워한다. 겁이 많은 편이라 이 시간엔 집 앞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아무렇지 않게 거닐 만큼 충분히 즐길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해야 하는 초겁쟁이인 내가 이 시간에 집 밖이라니, 그것도 혼자라니. 그런데도 오히려 집 안에서 보다 안전하게 느껴진다니.
1분 전의 나는 숨쉬기가 불편할 만큼 지독히도 불안했고 두려웠으며 우울했고 답답했다. 나를 삼키려 드는 절박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쳐 나오니 그토록 무섭던 깊은 어둠도 밤의 혼자도 두렵긴커녕 동굴 속의 한 줄기 빛 같았다. 가뭄 속의 단비 같았고 내 인생의 단 하나의 숨구멍 같이 느껴졌다.
검은 세상 속에 빛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위로하는 것만 같다. 나를 사근사근 달래는 것도 같다. 고요했지만 고요 속에서도 들려오는 작은 소음들이 불쾌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했다. 가까운 벤치에 앉아 있자니 검은 하늘에 작은 별빛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찬 공기가 수도 없이 내 몸속으로 들어갔다 내뱉어졌고,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떨리던 내 몸은 어느새 안정을 찾았는지 더 이상 떨리지도 지독히 춥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서 온기가 돌았다. 편안했고 고요했으며 맑았다. 나는 벤치 등받이에 기댄 채로 온 우주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었다. 하루 동안 산산이 부서져 흩어져 있던 내가 다시 하나가 된 것만 같다.
그제야 문득 아이가 잘 자고 있으려나, 걱정이 된다. 숨이라도 제대로 쉬기 위해 나왔음에도 다시 염려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아이로부터 도망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제 그만.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딱 20분. 그 20분을 오롯이 마음에 쉼을 주는 시간으로 썼다.
안녕. 다음에 또 만나자. 가을의 밤. 가을의 공기. 가을의 깊은 어둠. 소음과 가로등 불빛 검은 하늘과 검은 산. 반짝반짝 별 그리고 희뿌연 달, 회색빛 나뭇잎과 스치는 바람 모두 고맙습니다. 깊은 밤 새벽 1시 50분. 밤과 나의 이토록 농밀한 시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