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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Nov 23. 2020

날씨를 대하는 태도

우리가 함께라면


셋이서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하는 첫여름 휴가 계획이었다. 언제나 쉴 틈 없이 바쁜 남편이지만 아이와의 첫 여행을 위해 숙소 예약부터 이것저것 꼼꼼히 신경 쓰는 듯했다. 낯선 곳을 어려워하지 않는 아이는 새로운 공간에 제법 흥분한 듯했지만, 잘 적응해 주었다. 힘든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날씨’였다.
아무리 '비'를 환영하는 ‘나’이지만, 여행을 갈 때마다 비를 몰고 다니는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화창한 날씨를 선물 받기를 바랐다. 아이와의 여행에 '비'는 제법 힘든 요소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것이기에 장마가 비껴가 주기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비'였다.

우리는 그렇게 숙소에 갇혀버렸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고, 남편이 운영하는 매장에 물이 차지는 않았는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걱정된 마음이 앞서 풀빌라로 예약했건만 코앞에 있는 수영장은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전리품이 되어버렸다. 남편의 이마의 주름이 펴질 줄을 몰랐다. 숙소며 여행 날짜며 모조리 자신이 정한 일정이라 괜스레 미안해하는 듯 보였다.
계속 내리는 비를, 이미 예보에도 내리겠다고 예고한 비를 어쩌지도 못하고 한숨 쉬며 바라보았다.

맞닥드린 장맛비에 엄마 아빠는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아이는 웃고 있다. 그 와중에 괜찮았던 것은 오직 아이뿐이었다. 그저 신이 난 듯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아빠와 셋이 하는 여행이 처음이다. 이렇게 낯설고 신기한 곳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다. 밖에 비가 내리든 해가 뜨든 아이는 그저 즐거운 것이다.

숙소에 있는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다 아이의 다리가 온통 멍투성이가 되었다. 왜 계단이 있는 숙소를 예약했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아이는 즐겁다. 바닥이 대리석이라 너무 차다고, 너무 딱딱하다고 다치면 어쩌냐고 하는 걱정을 뒤로하고 아이는 공을 차며 신이 났다. 엄마와 아빠의 근심과 걱정은 언제나 아이를 비껴간다.

그래, 즐기자.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금만 신경 쓰자. 그리곤 즐기자 우리도.

다행히 숙소 2층에는 따뜻한 스파가 있었다. 따뜻한 자쿠지 속에서 느끼는 차가운 비, 비가 내려 더욱 상쾌한 공기와 차디찬 맥주. 모래놀이를 하게 되면 쓰려고 가져온 장난감은 자쿠지 속으로 퐁당, 물놀이하려고 가져온 튜브도 자쿠지에 퐁당. 작은 곳에 셋이서 오독오독 모여 빗속에서 서로 꼭 안고 옹기종기 놀았다. 꽤 괜찮았다. 아니 이보다 더 특별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행복은 뭐든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했다.

따뜻하고, 시원하고, 나른하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마음을 바꾸고 나니 모든 것이 완벽했다.

우리가 계획한 여행, 2박 3일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우리가 돌아오는 그 순간에도 비는 멈출 줄을 몰랐다. ‘비’ 덕분에 우리는, 비 구경 실컷 하고, 빗소리 실컷 듣고, 이틀 연속 자쿠지에서 옹기종기 뜨뜻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날 밤엔 잠깐 비가 멈춘 사이에 바닷가 산책도 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충분하다.

어떤 날씨도 완벽할 수 없으며 나쁜 날씨는 없다. 중요한 건 날씨가 아니라 날씨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즐길 준비가 되었다면 어떤 날씨든 즐기면 그만인 것을. 언제나 ‘즐거울 준비’가 되어있는 아이처럼 분명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자잘하게 반짝이는 행복을, 그 끝에 찾아오는 감사를.

우리의 여행도 날씨가 다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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